이직한 지는 28일이 지났으며, 수원에 와서 살게 된 지는 일주일 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최근 나는 이직을 한 이후 기분이 다소 가라앉은 편이었다. 이사를 급하게 결정한 이유는 거리가 멀어서도 있지만, 새로운 곳에 빨리 정착하기 위함도 있었다. 새로운 곳에 마음을 잘 두어야, 앞으로가 조금 편할 것 같았다.
처음 독립을 했던 동네는 서울 은평구였다. 은평구는 서울 중에서도 다소 집값이 싼 편이기도 하고, 다행히 직장과도 가까웠다. 내가 살 집을 구하러 직장을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 동네를 다녔었다. 그때는 인천에서 살며, 집을 보러 다녀야 해서 주말에도 서울에 가야 하는 것과 더불어 모아둔 자금이 한 푼도 없다는 서러움이 컸다.
서울살이 2년도 지나지 않아서, 1년 만에 나는 탈서울을 꿈꿨었다. 나 같은 자연인 감성의 사람들은 리틀 포레스트 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을 것이다. 탈서울에 대한 계획으로 나 홀로 지방 투어 여행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춘천, 세종, 수원, 공주, 영월 등등 내가 가보고 싶었던 도시를 정해 다닌 추억은 여전한 즐거움이다.
그중 수원은 친구들과 함께 당일치기로 여행을 떠나온 곳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이었는데, 나는 이곳 수원에 정착해 나가고 있다.
이사를 하고 나서 아직 하지 않았던 게 두 가지였다. 냉장고 청소와 세탁기 청소. 지난 주말에 냉장고 청소를 드디어 했다. 냉장고 청소를 해야 집에서 밥을 해 먹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말 내내 잠만 자다가 그나마 했던 일이 냉장고 청소와, 만들어 둔 밥을 냉동시켰다. 그리곤 금요일에 도착한 티비를 올려둘 티비 거치대를 사서 조립했다. 아직도 남은 일들이 있으니, 이사는 참 길고도 어렵다.
어제 퇴근길은 비가 오는 날이었다. 수원에 와서는 출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걸어서도, 버스로도 40분인데 이상하게 자전거로는 15분이다. 그럼 당연히 자전거이다. 교통비를 아껴 지금의 월세를 더 낸다고 생각하면 사실 서울 생활과 비슷한 수준의 집이다. 근데 투룸이니 나쁘지 않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킨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원룸에 있다간 우울증 걸릴 것 같았으니, 정신건강 값이라고 치지 뭐.
하여튼 퇴근길에, 슈퍼에 가느라, 새로운 길로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렸다. 수원은 저녁 6시만 되어도 도로가 컴컴하다. 퇴근하고 나서는 어딜 가고 싶어도 그다지 위험해 보이는 길을 나가고 싶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서울살이할 때는 처음 이사할 때 나름대로 동네 탐방을 한답시고,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는데. 그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그 언젠가 지방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생각났다. 그땐 분명 어두운 밤거리를 억지로 밝히는 서울 사람들이라고 했건만.
생각 많은 나로서는, 최근의 변화들에 대해 쉽게 적응하는 듯하지만, 이면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함이 잔존한다. 그러니 괜스레 안 읽던 철학책이라든가, 내려놓음에 대한 책들을 읽고 있다.
사실 별다른 생각도 들지 않고, 이럴 땐 오히려 내려놓는 편이 좋기 때문에 깊이 생각하진 않고 있다.
어제 자전거를 타다가 역시 그건 맞았어.라고 확신한 사실이 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지, 결국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마치 불교 서적에 나올 법한 소리긴 하지만, 이건 자명하게 확신하는 바이다. 내가 돈을 많이 벌 거나, 가고 싶던 어떠한 곳에 있거나, 여러 가지가 변하더라도 결국엔 내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원하던 탈서울도 했고, 이전 직장보다는 많이는 아니어도 조금은 더 나은 환경임은 맞다. 원룸에서 투룸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나아졌다면 나아진 일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이 그렇게 기쁘지 않았던 것은, 결국 내 마음이 어떠했느냐, 어떠할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황과 관계없이 지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고 결국 내가 선택할 몫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이곳에 잘 적응해 보기로 했다. 마음을 좀 더 내보기로 했다. 지난 한 달여간의 시간은 혼란스럽고, 정신없이 보냈다. 자신 없기도 하고, 자신 없기도 하다. 그래도 친구들의 말마따나 나는 뭘 해도 잘할 거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뭘 하더라도 잘 지내보기로 했다. 사실 자신 없다. 그렇지만 척을 하다 보면 사실이 된다고 하니까.
오늘부터 '토지'를 읽기로 결심했다. 한 작가가 '토지'를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다기에, 당근으로 토지 전권을 구입한 적이 있다. 하필이면 그 책들 사이에 개미들이 들끓고 있어 버렸지만 말이다. 도서관에서 찾아보곤,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삶을 잇는 서러움’이라고 말한 박경리 작가의 삶은 토지의 초록만 보더라도 무겁다. 나는 무겁게 살고 싶진 않은데, 삶을 잇는 서러움은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가 좋아하는 원지의 하루 유튜브 언니는 종종 ‘지구 종말이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 또한 지구 종말이나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좋았다가, 나빴다가 한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잘 적응하고 있고, 여긴 좋은 사람들도 많으니 다행이다. 내 퇴근 시간을 물어봐주고, 늦게 와서 걱정했다고 말해주는 집주인 사모님도 계신다. 새롭게 적응하고, 배워야 하는 것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되지만, 배워두면 결국 익숙해질 일이다. 한 친구의 말마따나 적당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삶도 나아간다. 그냥 잘 적응하지 말고, 적당히 지내야겠다. 적당히 생각하고, 평온함을 유지해야지. 일단 그게 결론이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