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누피 May 02. 2024

3. 서울을 떠나온 이유

자우림의 오렌지 마말레이드라는 노래가 있다.


‘하고픈 일도 없는데, 되고픈 것도 없는데 뭔가 말해보라 해.

별다른 욕심도 없이, 남다른 포부도 없이 이대로 이면 안되는 걸까.’


어째서 서울을 떠나온 지금, 이 가사가 와닿는 것일까. 내가 서울을 떠나온 이유가 뭐였더라?



그언젠가 직장동료가 보내준 산책길 사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 것은 4년 가까운 시간이었다. 본가인 인천에서 서울까지 오가는 왕복 3시간의 출퇴근을 버티지 못하고 자취를 꿈꿨다. 사실 본가에 있으면 집안일을 나 포함 가족들까지 4배는 해야 했다. 서른이 넘으니 부모님께 짐이 되는 기분도 들었다. 이 정도면 집을 나가자 싶었다.


서울에서 살아보고도 싶었다. 우스갯소리로 ‘나도 서울 시민이야’라고 잠깐, 아주 잠깐 자랑한 적도 있다. 근데 왜 서울을 떠냐고 싶었냐면, 이렇게 살다간 남들과 똑같이 일하고 결혼해서 적당히 살다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 그래서 싫었다.


서울살이를 한 것은 22년 5월부터 23년 11월까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편하고자 간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사회복지사로서 복지관에서 근무를 했었는데, 야근과 당직을 반복하며 집—회사만 반복했다. 일이 많아서 치여살던 시기였으나 한편으로는 운이 좋게도 좋은 상사와 동료들을 만났고, 나를 친손녀처럼 아껴주신 주민분들과 행복했다. 그러나 퇴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아,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사건이 시발점이었다. ‘난데없는 교통사고’

그랬다. 그날도 야근을 하고 집에 가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면을 먹어야지 싶었다. 그때도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서, 생각이 복잡하면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퇴근했었다. 따릉이를 타고 자전거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는 중이었다. 우회전을 하려던 차량 한 대가 신호가 바뀌었음에도, 빨리 가겠다고 돌진해왔다. 초록불에 멀쩡히 건너던 나는 그렇게 우회전 차량에 치여서 난생처음 구급차라는 걸 타봤다.


구급차 안에서 내가 누워있던 장면이 아직도 사진처럼 선명하다.

그때 나는 ‘이렇게 갑자기 죽을 수도 있구나.’를 깨달았다.

죽는 게 두렵다곤 생각되지 않았다. 한 번뿐인 삶을 이렇게 주어진 대로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가치를 느끼고 보람을 느끼며 일을 하다가도, 일에 치여 스트레스를 받았다. 인정욕구가 강한 나는 상사나 직장동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것마저 나에겐 스트레스였다. 인정받아서 어쩔 건데. 죽어라 일하고 죽어라 몸과 마음이 상해있던 차였다.

서울 직장 퇴직후 마지막으로 간 나의 한강 힐링스팟


그러던 차에, 23년 초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계속해서 함께 활동하던 주민분들이 돌아가셨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많아서도 있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다. 헤어짐의 슬픔을 감당하려 노력했으나, 마땅치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사는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그러다가 생각 없이 틀어둔 자연 다큐멘터리 속 마지막 멘트에 마음이 꽂혔다.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던 사람이었으나, 허무함을 느끼고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로 음식을 해먹고, 전기가 없어도 전기를 만들어내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나는 이렇게도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라고.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원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개척해나가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중 하나는 여유로움을 갖는 삶이었다.

복잡하고,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이곳 서울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창문을 열면 또 다른 집과 도로변 사람들이 보이는 곳이 아니라

숲과 나무가 있는 곳 말이다. 그래서 제2의 고향을 찾아 여러 지역을 주말마다 다녔다. 지역살이를 위해 필요한 이직 준비도 열심히 했다. 현실에 불평하지 말고, 원하는 삶을 살아보려 노력했다.


수원 첫 자취방에서 자전거로 퇴근하던 그 어느날

서울을 떠나온 지 반년이 지나온 지금,

나는 얼마나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서울을 떠난 이유도 다시 생각해 보니, 겨우 생각이 났다.

남들과 다르게, 내가 쟁취한 삶을 살기에는

아직 용기가 부족한 걸까.

굳이 용기를 내지 않아도, 이 정도로도 만족스러운 것일까.

지금은 답을 낼수 없다. 그러니 그냥 살면서 찾으련다.

아직은 고민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이전 02화 2. 삶을 잇는 서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