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무척 바빴다.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주는 수원으로 오는 버스가 파업을 해서 고생을 무척 했다.
그냥 파업도 아니고 게릴라 파업이라 언제 어디서 파업할지 모르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출근길이었고 어떤 날은 퇴근길이었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다니라는 안내문이 어찌나 얄궂던지.
뚜벅이가 다른 수단이 뭐가 있다고.
다들 힘들겠지만 그저 하루살이로 사는 차 없는 소시민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이번 이사는 급하게 결정한 이사였다.
집을 구해두고 서울 집이 나갈 때까지 최대한 입주 일을 늦추려고 했다. 근데 금요일 아침이었나 그날은 버스가 또 출근길에 파업을 한다기에 일찍 나왔다. 수원 가는 버스가 없을 줄 알고 안양으로 돌아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데 기사님이 세상 여유롭게 운전을 하시는 것이었다.
버스에서 정말 오래간만에 울어봤다.
그냥 요새 괜찮은 척 정신승리하고 있었는데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기껏 나왔더니 지각할 기세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택시라도 탈 걸 후회하는데 찾아보니 사당역에서 수원 가는 버스가 운행하고 있었다. 그걸 지금 타면 안 늦을 텐데.
어쩐지 느릿느릿 사람들 다 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출발하는 300번 아저씨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빨리 가야 겨우 아홉 시다. 사실 그 기사님은 할 일 잘하신 건데도 애가 타니 그냥 눈물이 났다.
이 먼 길을 다니는 게 마냥 좋은 길도 아니고 가서도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하는 데.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한 걸까. 그리고 다 말 못 할 개인사도.
참던 게 터진 모양이었다. 근데 진짜 열받게 버스에서 틀어주는 한 연예인의 인터뷰 속 말이 가관도 아니었다. 본인은 힘들었던 시기도 길었지만 지나고 보니 괜찮고 오히려 즐거웠다고 했다. 조달환이란 배우였나? 그럴 것이다. 누군 버스에서 쳐우는데 즐겁다고? 니미럴 하면서 좀 울다가 몰래 눈물 닦고 내렸다. 출근은 해야 하니까.
겁나게 달렸으나 아홉 시 하고도 이십 초 정도 지나 도착했다. 아홉 시 넘어서 지문을 찍으면 무조건 지각이란다. 시부럴.
옆자리 사람은 착한 분인데 나에게 그날은 지각을 했냐며 대놓고 눈치를 주었다. 가뜩이나 서러운데.
아침부터 일하고 싶지 않아서 카톡 방을 들어갔다. 역시나 힘든 일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는 친구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다가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 주는 지하철도 파업이란다.
버스도 파업 지하철 파업 그럼 난 어떻게 출근하니.
화가 막 나다가 그냥 내가 집이 없냐 돈이 없냐 서러워 못 살겠다 싶어서 이사를 당장 하기로 결심했다.
곧바로 부동산에 연락해서 내일 이사가 가능한지 물으니 집주인분도 오케이 하셨단다.
이후로 용달 기사님을 섭외하고 인터넷 티브이 설치도 이삿날로 앞당겼다. kt에서 주말 수수료가 있다고 했으나 그까짓 거 몇만 원 더 내고 인터넷 팡팡하겠다며 알겠다고 했다.
분노로 앞이 차 들끓어 오른 이른바 ㅅㅂ 비용.
하여튼 당장 이사 갈 준비에 머리가 어질 했으나 다음 주에 파업 때문에 속 끓이며 오기도 싫은 직장 출근하는 내가 불쌍해서 조금만 힘을 내보기로 했다.
퇴근하고 집 가면 여덟 시인데 곧바로 인근 다이소에 들러 짐을 쌀 것들을 샀다. 어쩐지 전날에 잠이 안 와서 반의반 정도 짐을 싸둔 게 다행이었다.
새벽 한 시까지 짐을 싸고 나 죽겠다 드러누웠다.
다음날 아침 여덟 시에 용달 기사님이 오시기로 했었다. 웬걸 일곱 시에 전화가 왔는데 이미 와있으니 일어났으면 내려오라고 하신다. 짐을 싸두긴 했는데 이상하게 싸두었는데 다행히 베테랑 분이셔서 내가 이럴 줄 아시고 포장이사 박스를 가져와주셨다. 짐이 많아서 어이가 없어하시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을 거라고 하셨다.
쭈구리로 있는데 갑자기 동네 친구 하던 친구가 와주었다. 한줄기 빛이었다.
이사 갈 시간을 물어보더니 오려고 했나 보다. 진짜 그 친구가 빡친 용달 기사님도 달래주고 똑 부러지게 짐도 같이 싸주었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기사님과 수원으로 향했다.
기사님은 알고 보니 예술광이셨다. 여행광이기도 했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고 음악이나 영화도 좋아하니 기사님과 유퀴즈온 더블록 만치 인터뷰를 하며 수원으로 향했다. 기사님이 추천해 준 박정운이라는 가수의 먼 훗날에 라는 노래도 무척 좋았다. 기사님이 추천해 주신 노래들을 들으며 수원에 도착했다.
수원 집은 엘베가 없는데 미리 다 기사님과 합의를 봐서 이야기드리고 가격을 더 드리기로 했으니 그나마 덜 죄송했다. 나도 열심히 힘썼다. 나중에는 나에게 웬만한 남자보다 낫다며 운동했었냐고도 물어보셨다. 기사님이 베테랑답게 진두지휘하셔서 다행히 금방 옮겼다. 기사님과 식사라도 하려 했는데 부동산도 가야 하고 할게 산더미였다. 다행히 근처 사시는 분이라 바로 가셨는데 어차피 근처 사니까 나중에 이사할 때 짐 늘리지 말고 본인에게 연락 달라고 하셨다. 이후에 문자도 주셨는데 돈 많이 벌어서 다음에 이사할 땐 더 편하게 하라는 덕담도 해주셨다. 나는 적게 일하고 돈 많이 버시라고 정말 덕분에 이사했다고 감사 인사를 보냈다.
아… 그게 불과 어제였다니.
봉지가 거의 저장강박증이 있는 집처럼 엄청났는데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도와준다고 한 사람들 여럿 있었는데 괜히 마다했네 또 눈물을 흘릴 뻔. 의외로 잘 안 우는데 이번엔 짜증의 눈물이랄까.
하여튼 머릿속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 와중에 아침에 도우러 온 친구가 치킨을 보내주니 너도 밥 먹으라며 배민 쿠폰까지 보내주었다. 고마운 친구야 사랑한다.
그걸로 탕짜면을 시켜 먹고 나니 인터넷 설치기사님이 오셨다. 매트리스 위치가 마음에 안 들어서 혼자 옮기는데 기사님이 대단하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그러더니 자기 아내는 혼자 못해서 자신이 다 해줬단다. 아내 생각이 난다면서 소파 옮기는 걸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다. 사실 혼자 해도 괜찮았는데 도와주시니 감사했다. 원래 서러울 땐 사소한 친절로도 정말 많이 기쁘다.
기사님이 가신 뒤에 사부작 움직이다가 자체 파업을 선언하고 부동산에 가기 전에 한숨 자기로 했다. 부동산에서 일을 다 보고 다이소에 들러 없거나 버린 물건들을 사 왔다. 대충 방 정리를 하다 보니 사야 할 게 아직도 남아있었다. 너무 힘들고 귀찮으며 용달 기사님이 더 이상 짐 늘리지 말라고 한 당부가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이사할 때 너무 힘들었던지라 최대한 있는 가구 활용해서 안 사기로 했다. 친구들이 사준 전자레인지는 그냥 냉장고 위에 올려두었다. 서랍장도 그냥 행거를 샀고 책장은 안 살 수 없어서 접이식으로 나중에 옮기기 편한 걸 샀다.
그 와중에 보일러가 고장 나서 뽁뽁이와 방한 텐트도 샀다. 집주인분이 일요일에 고쳐준다고 하셨는데 오늘 아침에 갑자기 아내분과 수리기사님과 오셨다. 집주인 분과 사모님 두 분은 꼭 같이 오셔서 이방 저 방을 보신다. 어제오늘만 해도 다섯 번은 오신 듯. 뭔가 챙겨주시려고 하시는 것 같은데 조금 부담스러웠달까.
결론은 보일러 펌프가 나갔는데 하도 오래된 기종이라 부품이 안 나와서 새 걸로 교체하기로 했다. 근데 집주인 분과 아내분이 다시 십분 있다가 오셔서 내가 보일러 가게에 연락해서 그 사람과 가격 이야기를 했냐고 대뜸 물어보셨다. 본인은 부른 적이 없다 시는 것이다. 나는 너무 당황해서 집주인분이 어제 전화해서 수리기사님 불러주신다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고 심지어 아침에 기사님과 같이 오시지 않았냐고 하니 그렇지 하신다. 명함도 받으셨으니 그쪽에 연락해 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대로 가셨다. 어쩐지 어르신들을 많이 본 입장에서 아무래도 치매 증상이 좀 보이시는 것 같아서 뭔가 걱정이 되었다. 사모님한테 슬쩍 말씀드려야 하나.
하여튼 보일러 고친다고 집에 누가 올 생각하니 싫었지만 그래도 고치는 게 낫지 싶었다. 오늘 그냥 파업하려다가 집구석에 누워있으니 또 정리할게 생각나고 마음만 싱숭생숭해져서 그냥 앓느니 움직였다.
온라인으로나마 예배를 드렸다. 말씀 주제는 감사하라였다. 범사에 감사하라. 어렵다.
아침도 먹고 출퇴근용으로 산 자전거도 조립하러 가고 아직 청소를 못한 세탁기 때문에 세탁방에 가서 세탁도 하고 쓰레기봉투도 사고 배가 고파서 밥도 사고 집으로 왔다. 밥도 먹고 나머지 행거와 텐트가 와서 설치하고 작은방과 부엌 정리와 화장실까지 정리를 마쳤다. 아직도 할 일이 많지만 얼추 사람 사는 아늑한 집이 되어 뿌듯했다.
그러고 나니 지금 머리가 다 아프다. 날도 추운데 이 난리 저 난리 펴다가 그런 것이다. 하여튼 이 모든 게 삼일 만에 일어난 것이라 너무 힘들었으나 혼자서 해낸 나 자신과 그 와중에 많이 도와준 여러 사람들이 감사하였으며 역시 돈을 쓰면 몸이 편하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정착지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최소 일 년은 버텨봐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이사를 다 하고 보니 혹여나 직장은 옮기더라도 이사는 안 가는 쪽으로 가야겠다 생각했다.
혼자 해내야 하는 게 서럽다가도 혼자서 해내는 게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고.
청소를 하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은 또 다른 타지에서 성공이든 실패든 도전하여 경험한 모든 것들은 무슨 방법이든 남을 거라는 것. 그게 분명 나에게 도움이 될 일들이라는 것.
사실 더 나은 미래는 딱히 기대가 되진 않는다. 다만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상황에 의연할 줄 알며 덜 가지더라도 더 많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해 본다. 그럼 그게 더 나은 미래겠지.
고생했다!!!!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