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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Jul 14. 2016

이런 이별


이런 이별-1월의 저녁에서 12월의 저녁 사이 / 김선우


그렇게 되기로 정해진 것처럼 당신이 내 마음에 들어왔다.

오선지의 비탈을 한 칸씩 짚고 오르듯 후후 숨을 불며.

햇빛 달빛으로 욕조를 데워 부스러진 데를 씻긴 후

성탄 트리와 어린양이 프린트된 다홍빛 담요에 당신을 싸서

가만히 안고 잠들었다 깨어난 동안이라고 해야겠다.


1월이 시작되었으니 12월이 온다.

2월의 유리불씨와 3월의 진홍꽃잎과 4월 유록의 두근거림과 5월의 찔레가시와 6월의 푸른 뱀과 7월의 별과 꿀, 8월의 우주먼지와 9월의 청동거울과 억새가 타는 10월의 무인도와 11월의 애틋한 죽 한 그릇이 당신과 나에게 선물로 왔고

우리는 매달리다시피 함께 걸었다.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한 괜찮은 거야. 

마침내 당신과 내가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12월이 와서,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리고

우리는 천천히 햇살을 씹어 밥을 먹었다.


첫번째 기도는 당신을 위해

두번째 기도는 당신을 위해

세번째 기도는 당신을 위해

그리고 문 앞의 흰 자갈 위에 앉은 따스한 이슬을 위해


서로를 위해 기도한 우리는 함께 무덤을 만들고

서랍 속의 부스러기들을 마저 털어 봉분을 다졌다.

사랑의 무덤은 믿을 수 없이 따스하고

그 앞에 세운 가시나무 비목에선 금세 뿌리가 돋을 것 같았다.

최선을 다해 사랑했으므로 이미 가벼웠다.

고마워. 안녕히.

몸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1월이 시작되면 12월이 온다.


당신이 내 마음에 들락거린 10년 동안 나는 참 좋았어.

사랑의 무덤 앞에서 우리는 다행히 하고픈 말이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사당역에서 체를 만났다. 코카콜라병을 내밀고 싶어지는 통통한 볼과 감았는지 떴는지 잘 모르겠는 눈을 하고서 빙그레 웃는 얼굴을 보니 맘이 좋았다. 브런치 카페에 들어가 이것저것 먹을 것을 시켜놓고 체는 막 만나기 시작한 애인 이야기를 했다.

  체는 지금의 그 애인과 결혼을 할 거라고 했다.

  나는 체의 달라진 옷 스타일과 화장과 머리색을 찬찬히 훑으며 얘기를 들었다. 그런 내 태도가 무언가 의심을 하는 것 같았는지 체는 자꾸만 변명 같은 이유들을 널어놓았다. 이런 점이 그 전의 남자들과는 달랐어. 이런 점도 이런 점도. 나는 그 모든 면을 다 본 뒤 이같은 확신에 이르렀지. 난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 것 같아.

  

  나는 이제 막 사랑의 여러 모습을 보기 시작하고 있다. 여러 색깔과 여러 형태, 그리고 여러 표정들. 나는 이제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버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는 반면 그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네가 나를 사랑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아직 완전히 받아들였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노력 중이다.

  이 수행의 장점을 얘기하자면 세상 사는 게 훨씬 편해진다는 거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을 때 나는 한 연애를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우리 사이가 예전같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나는 상대방이 나를 떠나게 될 날을 사형선고 기다리듯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는 너에게 보여서는 안 될 추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어. 너는 내 추함을 안아줄 수는 없겠지. 곧 나를 떠날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게 언제일까? 내일, 어쩌면 오늘.

  그 때 나는 내가 서툴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게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연애가 '진짜 사랑'은 아니었다는 것. 우리는 진짜 사랑을 한 것이 아니었고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진짜 사랑을 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덕목들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부정(父情)에 대한 판타지를 버린 것은 칠 년 전쯤. 그전까지 그 유명한 소설 [가시고기]를 통해 만들어 놓은 부정의 판타지는 내 마음 속에 꽤나 견고했었는데. 모정(母情)에 대한 판타지를 버린 것은 불과 몇 달 전이다.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이 여자의 DNA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아주 오래 전 있었던 사건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사건을 떠올리면서 더이상 아프거나 힘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그 때 내가 에리히 프롬을 읽지 않았더라면. 그러는 대신에 록산 게이의 책을 읽었거나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책을 읽었더라면. 우리는 달랐을까. 아니 나는 달랐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체의 들뜬 두 광대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체는 나에게 그 어떤 변명도 할 필요가 없었다. 체는 체 자신에게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떤 사랑이든 이런 이별을 맞는다. 이마저도 어떤 판타지를 짓는 일이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는 함께 무덤을 만들고 서로를 위하여 함께 기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우리는 하고픈 말이 같다는 점에 감사하게 된다. 하고픈 말이 다른 이별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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