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진은영
너무 삶은 시금치, 빨다 버린 막대사탕, 나는 촌충으로 둘둘 말린 집, 부러진 가위, 가짜 석유를 파는 주유소, 도마 위에 흩어진 생선비늘, 계속 회전하는 나침반, 나는 썩은 과일 도둑, 오래도록 오지 않는 잠, 밀가루 포대 속에 집어넣은 젖은 손, 외다리 남자의 부러진 목발, 노란 풍선 꼭지, 어느 입술이 닿던 날 너무 부풀어올랐다 찢어진
강의를 들으러 간다고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나는 대충 두 정거장 가는 동안 세 페이지를 읽는다. 아홉 페이지 너머를 손가락으로 미리 잡아놓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치니까. 그런데 오늘따라 책 내용이 뜬구름 같아서 짜증이 난다. 말도 어렵고.
너는 참 예민한 사람인 것 같아. 하고 체가 말했을 때 나는 놀라 자빠질 뻔 했다. 그 정반대였다. 나는 내가 무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히 예민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아냐. 너는 예민한 사람이 맞아. 체는 연필로 꾹꾹 눌러 쓰듯 다시 말했다. 그래. 니가 그렇다니 그런거겠지.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심술보가 치미는 것이 웃겼다.
한없이 의젓하기만 한 것 같았던 사람이 집 앞 횡단보도 앞에서 나를 끌어안았을 때 나는 내가 실존한다는 실감을 했다. 그 손바닥이 닿았던 등이나 팔이 닿았던 팔뚝에서 체의 체온뿐 아니라 나의 체온을 함께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나는 체와 같은 인간이었고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선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무척 겁이 났다.
누군가 너는 파랑이야 하면 빨강 같고 그래 주황이야 하면 녹색 같은. 나는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끝없이 나 자신을 증명하기를 요구당한다. 그리고 그 요구 앞에서 어버버버, 조금이라도 나를 표현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은 아마도 체와 함께일 때가 아닐까. 니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가장 궁금해지는 때.
서로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 지나치게 부글부글거려서 나 같은 양은냄비는 계속계속 흔들거린다. 나는 이해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는 몇개월 동안을 멀미를 하면서 보낸다. 그러고서 영문도 모르는 채 찬물에 확 담가진다. 그러면 어안이 벙벙한 나는 밑바닥에 거멓게 내려앉은 그을음을 지워야 하는 일 앞에 놓인다.
그런 식의 패턴이 반복되면서 내가 발견하게 되는 거라곤 내가 가진 정신병의 목록 정도다. 그리고 도저히 멀쩡하다고는 봐줄 수 없는 고름 투성이의 내 얼굴. 다시 또 부글부글이 찾아올 때까지 제대로 짜낼 자신도 없는.
나는 파리의 머리통, 오래 쓰지 않는 욕조 어쩌고 하는 시가 있다. 진은영 시 [나는]의 짝퉁 버전. 어찌됐든 만져지고 설명되는 것 너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을 때는 이런 때다. 보라를 기대했던 체에게 노랑을 보이고 지하철을 탈 때. 신도림은 이미 지나치고 손가락으로 미리 잡아놓은 페이지는 다 읽지도 못한 때. 괜찮다는 말보다 못생겼다는 말이 듣고싶은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