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처럼/홍영철
어젯밤에는 녹음을 했습니다.
오래 전에 사두었던 낡은 판들을 꺼내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테이프에 담았습니다.
비틀즈보다 롤링 스톤스가 더 좋습니다.
아, 당신이 어두운 공기는 폐에 해롭다고 했는데
그럼 밝은 공기는 몸에 이롭습니까?
잠자리에 들려다 문득 일기장을 열어보았습니다.
벌써 3년이 흘렀군요.
벌써 5년이 흘렀군요.
어느새 10년이......
요즘은 별 볼일 없이 바쁘시다구요?
그럼 언제 한번 나와서 얼굴 봐요.
늘 그렇게 그림자처럼 벽 속에 앉아 있지만 마시구요.
지구 위에는 많은 것들이 허물어지고 있대요.
골짜기가 있으면 언덕도 있다는데,
무너지는 것이 있으면 일어서는 것도 있겠지요, 뭐.
당신에게는 하늘이 없다구요?
내게는 창문도 없습니다.
삶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고등학교 동창들을 출석 번호 순서대로 까던 누가 있다. 스스로를 까여야 더 발전하는 타입이라고 설명하면서. 나는 이십 몇 번이었던 것 같은데. 너는 내 앞이라고 내 번호는 어물쩡 넘어가 주는 거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로부터 영원히 등을 돌려버렸다. 이제 맘 편히 그 번호를 입에 댈 수 있기를.
삶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다림질을 하는 누가 있다. 아무도 내 영혼을 그딴식으로 구겨 던져버리지는 못한다고 말하면서. 다리미를 켜고 구겨진 영혼 위에 물을 뿌리고 살살 눌러 펴는 누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게 보다 더 건강한 방식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쨌든 여전히 그 삶은 불행할테니까.
며칠 전 생일을 앞둔 체를 만났다. 체는 나에게 언제고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좋아 보인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고등학교 때에도 들었고 대학교 때에도 들었고 이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듣고 있다. 그리고 그게 문제인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땐 옆 반 친구의 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담임의 도장을 훔쳐다가 조퇴증을 날조했다. 경비 아저씨를 따돌리고 학교를 빠져나와 공연을 봤다. 내 생애 최고의 공연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수의 F를 맞아가며 지금은 무엇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짓들을 하고 다녔다. 아마도 연애를 했거나 연애를 했거나 연애를 했겠지.
그래서 내 생이 늘상 행복했냐면 절대 결단코 아니었다. 후회하지 않았냐면 절대 결단코 정말이지 1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체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에 대해서 나열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불행을 초석 삼아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불행은 양치를 할 때 온다. 양치질을 하는 내가 유달리 못생겨 보일 때. 내 삶도 이처럼 못생기고 초라하다는 생각을 하면 죽고 싶어진다. 불행은 매너 없는 누가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가면서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을 때 온다. 저기요, 제가 안 보이세요? 하고 묻고 싶어진다. 불행은 단 한 켤레 남은 구두가 내 발에 맞지 않아 살 수 없을 때 오고, 불행은 친구와 신나게 수다를 떨고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온다. 두 번째 신호 역시 빨간불이야. 온 우주가 힘을 모아 내가 앞으로 갈 수 없게 막는군.
시시때때로 나는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고 믿어지는 상황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내 자신이 머저리 같아서 견딜 수 없고 우연히라도 어느 통유리에 얼굴이 비치면 그 꼴이 보기 싫은 때.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누구에게도 그런 찜찜한 구석은 늘 있는 것이다.
나에게 창문조차 없으니 당신에게 하늘이 없다고 슬퍼 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림자처럼 벽 속에 앉아 있지만 말고 이리 나오라고 말할 수는 더더욱 없다. 내가 양치를 하다 말고 불행에 못 이겨 죽고 싶을 때 어떤 식으로 그 시간을 빠져 나오는지 이야기해 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불행해하고만 있으니까.
그냥. 내 콧대가 너무 낮은 게 맘에 안 들면서도 어영부영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것들은 쉽게 잊으니까. 그런 식으로 쉽게 잊어가면서. 필요하다면, 세상 모든 인간에게는 불행이 배꼽처럼 달려 있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