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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Dec 22. 2016

타오르는 노래


타오르는 노래/이이체




내 것이 아닌 이명이 내 귀를 환하게 밝힌다


들을 수 있으나 노래할 수는 없는 선율


계속 들리는 선율이 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단 한 번 들었다는 기억만 남아 울린다


들었다는 기억이 들려오는 선율보다도 선명한


혼자 타오르기만 하는 노래


귓속은 깊어지면서 나를 늙게 했고,


듣기만 할 뿐 노래할 수 없다는 죄책감을


닮은 무력감이 나를 죽지 못하게 한다


아름다워서 숨이 막힐 치사량의 음악에


내 호흡은 뒷걸음질 치며 서서히 미쳐가는 것이다


노래가 다 타버린다면 선율은


이석처럼 굳건한 사상으로 남을 것이다




  다른 여자들처럼 너도 사랑한단 말을 들어야 되냐? 고, 체가 말했다. 그리고 나선 곧바로 사랑해. 하고 말했다. 그 때 뭐라고 대답할 수 있었을까 하고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내가 엄청 좋은 일을 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환 열 알을 얻게 된다면 나는 그 환을 못다한 악담 퍼붓는 데 쓰러 다녀야지 하고 다짐하게 되는 오늘같은 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해야 할지 기발한 생각이 나질 않는다.

  사랑이 거래고 권력이고 계급이라면. 그러고 남는 것이 없다면. 나는 앞으로 사랑을 잘 해낼 자신이 없다. 나는 사랑을 운동으로 투쟁으로 해 낼 자신이 없다.

  그러므로 낭만적 사랑이라는 것이 고릿적 얌을 잇고 기사도 포장을 거처 자기계발 스펙 이상의 것일 수가 없다고 해도 나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반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체는 야비하게도 내가 수업을 듣는 틈을 타 헤어지자고 톡을 했다. 수업을 듣다가 말고 나는 울기 시작했는데 너 울기만 해 진짜. 라는 톡이 연이어 도착했다. 나는 얼른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벼 눈물을 닦아냈다. 살짝 머쓱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조금 억울하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건 착한 행동 착한 생각이 좋은 운을 가져올까 싶어서, 체의 말을 듣느라 그런 것이 아니라 좋은 운을 끌어오려고 나는 눈물을 꾹 참았다.

  말 한 마디 곱게 하는 법이 없던 인간이었다. 데이트는 치킨집에서 시작해서 일식 꼬치집을 거쳐 파전집까지 갔다가 당구장으로 끝이 났고 보통 당구장까지 가기 전에 나는 꽐라가 돼 집 앞에 버려졌다. 내가 버려질 시점엔 체의 친구들 대여섯이 이미 한 패거리가 된 뒤였고 체의 입에선 늘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여 났다.

  그 때, 술을 먹는 체의 옆에 앉아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나 하면. 시계까지 풀어놓고 대충도 아니고 제대로 먹고 있는 체를 보면서. 와 이 양반 지금 진짜 행복하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말 진짜 행복하구나. 그리고 그 행복한 공간과 시간 한 가운데에 내가 있구나.

  물론 한 가운데에 내가 있다고 생각한 대목은 착각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내가 있어서 너 참 행복했지? 라고는 말하지 않잖아.


  나는 빨리 헤어지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와 체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99를 이기는 절대 강인 딱 한가지. 

  며칠정도 체를 조르고 졸라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얼굴을 보고 헤어져야 한다고 우겨대면서. 그 날 나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야 했는데 끝나고 곧바로 체를 만날 일을 대비해서 평소 체가 예쁘다고 했던 블라우스를 입고 단디 화장을 한 상태였다.

  알바를 끝내고 나왔는데 예보에 없던 비가 오고 있었다. 사무실로 되돌아가 버려진 우산 중 그나마 멀쩡한 것을 골라들고 길을 나섰다. 걸으면서 맨첨에 뭐라고 할지 말을 골랐다. 우리가 헤어져선 안 되는 이유들을. 그리고 어떤 대답을 했을 때 또 어떤 대답을 할지. 나는 울지 않을 생각이었고 소리지르지 않을 생각이었고 체에게 말 할 여지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다다다 내가 할 말을 하고 그러고도 안 되면 그 다음은 뭐 육탄전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으려나.

  그 골목은 가로등 없이 깜깜했다. 아스팔트가 고르지 않아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 있었다.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고 슈퍼도 없었다. 우리는 마주 서 있었고 내가 코앞까지 가 서자 그제서야 체는 담배를 껐다. 코와 입을 통해 담배 연기가 끝도 없이 나와서 너무 신기했다. 눈이 마주쳤고 체가 내 우산과 자기 우산을 바꿨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이해했다. 완전히 받아들였거나.


  거래관계라는 것은 내가 1을 주면 다시 1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나는 1을 주면서 굳이 1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오만떼만 것들이 다 거래여도 사랑만은 거래여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고 그렇게 연애했다고 믿었다. 그러니까 정말 웃긴 생각인데 나는 그동안 받은 것 없이 주는 관계에 대해서 확신해 왔던 것이다. 

  사랑한단 말을 들어야 되냐? 고 말하는 체를 앞에 두고, 결국 사랑해. 라고 말하는 그 눈썹이랑 그 콧등을 보면서 나는 손톱 사이에 가시가 박히는 것 같이 아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먹으로 체의 인중을 치지도 않았고 정강이를 구두코로 차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체는 헤어지는 마당에 내가 들고 있는 살 부러진 우산에 마음을 쓰고 가로등 없이 캄캄한 아스팔트 군데군데 고인 웅덩이를 일부러 밟았으니까.

  나는 주는대로 받았고 받은만큼 다시 썼다. 우리는 거래를 했고 그 거래는 이마저마해서 대충이라도 수지타산이 맞는 거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연애가 타오르는 노래인 것은 거래라는 권력이라는 계급이라는 그 단어가 주는 어감과는 결이 다른 감각이 분명히 거기에 묻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모든 관계를 거래로 권력으로 계급으로 보자. 그러고 남는 관계는 없다고 하자. 다만 관념에는 감각이 꿀처럼 발려 있다. 그래서 사랑은 없어. 그래서 사랑은 무의미해. 라는 이야기로 치환되지 않는 까닭은 거기에서 오는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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