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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Jul 02. 2024

한 해의 절반은 7월 1일에 지나가는 거라서


제20대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매년 얘기하는 것 같긴 하지만, 2024년 상반기도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한가득이었지만 지금은 세세하게는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아니면 너무 한가득이라서 더 기억이 안 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래서 짧은 글 발표나 강연을 했던 내역을 여기에 정리해 적어본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의무방어전' 느낌으로 북토크나 영화제에 참여한 것은 굳이 셈하지 않았다.)





2월

쪽프레스와 함께 하는 만화비평모임의 세번째 프로그램으로 <쓰게의 뒷모습>을 기획 및 진행했다. 전후 일본의 전설적인 만화가 쓰게 요시하루의 작품들을 함께 읽고 논하는 작가 스터디로, 모임은 1월 30일부터 3월 5일까지로 평소보다 약간 길게 이어졌는데, 이는 참여한 멤버들의 호응과 총명함에 끝을 내기가 아쉬워져 내가 진행자로서 직권을 사용해 한 회차를 연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굉장히 보람차고 즐거운 자리였으며, 만화비평모임을 더욱 장기적인 기획으로 밀고 나갈 의지를 얻어갈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멤버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리고, 여기서 발표한 글이나 번역문은 아마도 내년에 다른 자리에서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다.



데이빗 이스틸, <평평한 삶(The Plains)>

3월 18일

다큐멘터리 웹진 《DOCKING》의 2024년 봄호 '다큐 Episteme' 코너에 문화평론가 손희정, KOFA 프로그래머 최영진 등과 함께 참여해, 최근 1~2년 사이 스트리밍 서비스나 영화제를 통해 국내 소개된 것 중 제일 재밌게 본 3편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해보았다. 내가 꼽은 영화는 각각 에롤 모리스의 <존 르 카레: 첩보 소설 제왕의 회고록>, 카말 알자파리의 <파라디소, XXXI, 108>, 데이빗 이스틸의 <평평한 삶>이었다. 자세한 소개는 다음의 링크를 확인하시라.




5월

쪽프레스와 함께 하는 만화비평모임의 네번째 프로그램으로 <하기오의 뒷모습 PART.1>을 기획 및 진행했다. 일본 순정만화의 대모라고 (잘못) 일컬어지는 만화가 하기오 모토의 단편들을 함께 읽고 논하는 작가 스터디로, 하기오는 워낙 오랫동안 --심지어 지금까지도-- 정력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한 번의 스터디에서 그의 작가적 지평을 더듬어보는 것은 역시 무리인지라, 부득이하게 1부와 2부로 나누어 스터디를 기획했다. 모임은 4월 30일부터 5월 28일까지 이어졌으며, 역대 최다 인원인 16명이 멤버로 참여해 아주 북적거리는 모임이 되었다. (놀랍게도 이 인원은 이틀만에 채워졌고, 추가로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지난 모임들에서 만났던 익숙하고 정겨운 멤버들, 그리고 새롭게 참여해 열정적으로 의견을 나눠주시거나 귀한 자료를 공유해주신 멤버들 덕분에 더더욱 보람차고 즐거운 자리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얻어간 의지 덕분에, 한 달 뒤인 6월 25일부터 포의 일족을 다루는 PART.2를 곧바로 시작했다. 이 스터디에서 기조발제를 위해 쓴 리뷰 한편을 여기에도 게재했었으니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시라.




5월 31일

작년 여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주관한 '2024년 한국영화 100선'의 설문에 참여해 지금까지 발표된 한국'장편'영화 중 가장 굉장하다고 생각되는 10편의 영화를 꼽아보았으며, --늘 그렇듯 나는 '매니아적' 리스트의 관행에 맞추어 감독당 한 편씩만 골랐다-- 그 개별 리스트와 종합 리스트가 이 날 발표되었다. 소개는 《씨네21》의 기사를 퍼왔다.


"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2024년 한국영화 100선’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학계·저널·창작·산업 관계자를 두루 포함한 선정위원 240명이 조사에 참여했다. 선정 대상 작품은 한국의 가장 오래된 극영화인 <청춘의 십자로>가 제작된 1934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개봉한 국내 장편영화(극영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예술영화, 실험영화, 애니메이션 등 포함)였다. 영상자료원은 설문조사를 통해 최종 선정된 100편의 작품 중 상위 10편은 득표수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나머지 90편은 제작연도순으로 나열했다. ‘2024년 한국영화 100선’ 전체 목록을 비롯한 선정위원 명단, 영화별 코멘트 등은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의 리스트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출처)


내가 꼽은 10편은 다음과 같다.


마음의 고향(윤용규, 1949)

지옥화(신상옥, 1958)

물레방아(이만희, 1966)

이어도(김기영, 1977)

장마(유현목, 1979)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이장호, 1987)

개벽(임권택, 1991)

경마장 가는 길(장선우, 1991)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배용균, 1995)

소설가의 영화(홍상수, 2022)


이제와 돌아보면 스스로의 작품 선정에 좀 불만이 있긴 하나, 이제와 고쳐 제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겨야만 할 테다. 선정 코멘트는 다음의 링크를 확인하시라. (사실 큰 힘 안 들이고 앉은 자리에서 쓴 것들이라 별 영양가는 없다) 종합 리스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추후 (카페크리틱을 포함한) 다른 자리들을 통해 펼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기 바란다. 또한 영상자료원의 2014년 100선 리스트가 그러했듯 이번에도 100편 각각의 소개와 리뷰를 담은 단행본이 기획 중이라고 하니, 이 역시 기다려주시라.



6월 1일

부산의 전시공간인 오픈 스페이스 배에서 만화가 선우 훈의 개인전 〈Read Game Book: 게임북을 읽어라〉가 이날 막 개최되었다. 나는 이 전시의 연계행사로 진행된 집담회 "만화, 전시라는 매체로 무엇을 하나"에 (선우훈, 조나경, 란탄, 정원교 등과 함께) 패널로 참여했으며, 만화가 미술전시를 통해 무얼 할 수 있는지, 혹은 만화가 미술전시로써 나타나야 할 필요성이 대체 무엇인지를 함께 논해보았다. 사실 이 전시와 집담회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그것이 창작이든 학술이든 비평이든 상관 없이) 기존의 만화적 담론의 장에 있어 외부자에 가까운 이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만화의 현재에 대한 얘기를 상대적으로 편하게 나(누고 나아가 상호간의 '불화'를 나)눌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감동이 있던 것 같다. (가령 본 집담회의 제목에서 미술전시를 "매체"로 호명하고 있긴 하나, 나는 미술전시의 성질에 대해선 좀 더 엄격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는 쪽이다) 이후 제작될 개인전 도록에 본 집담회의 녹취록이 수록될 예정이니 혹 당신께서 관심이 있다면 조금만 끈기를 갖고서 기다려주시기 바란다. 아래는 〈Read Game Book: 게임북을 읽어라〉에 대한 나의 리뷰이다.




Photo by 리타(이연숙)

6월 26일

이 날엔 2024 서울국제도서전이 막 개최되었다. 그동안은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국고보조금 지원을 받아 개최되었으나, 문체부와 대한출판문화협회 사이의 충돌로 인해 올해는 기부금, 회비, 참가비 등 출협 자체의 예산과 비용만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번에 민음사에선 (나의 첫 비평집인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이 포함되기도 한) '탐구' 시리즈의 외전격으로 '일기들'이란 기획을 선보였는데, 나는 이 중 영이의 『호르몬 일지』에 추천사를 썼다. 민음사 측의 소개에 따르면 "500여일 간의 호르몬 대체요법 과정을 기록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일기인 이 책은, 아마도 당신이 누그든 상관 없이 당신의 머리 속을 뒤집어버릴 것이다.


"모욕감은 우리의 무기다. 적어도 여기서 ‘우리’가 퀴어라는 범주에 속하는 너와 나라면 말이다. 그런데 대체 모욕감은 무엇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무기가 되는가? 또 우리는 그렇게 쉽게 하나로 호명될 수 있는 집단인가? 영이는 지속적으로 예리하게 반문한다. 중간이라곤 없는 듯이 적나라하고 산만한 표현으로 가득 찬 이 일기에서, 당신은 한 트랜스젠더 여성이 바로 그런 표현으로써 세계를 뒤집어 바라보는 것을 쭉 읽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함부로 신기함이나 놀라움을 표하지는 마시라. 그 순간 영이가 당신의 뒤통수를 내리칠 터이니."




6월 29일

<발굴, 복원 그리고 KOFA 50주년 Part 1> 기획전의 일환으로 <은하전설 테라> 상영 후 추혜진 인디애니페스트 프로그래머님과 대담을 진행했다. 이 작품은 보통 '표절과 낮은 퀄리티로 가득 찬 가난한 20세기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독자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작품'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여기서 나는 이와 좀 많이 다른 맵핑을 제시했다. 독자적인 한국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한 그 의지로 인해 오히려 한국 애니메이션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닮아갔다면? 달리 말해 독립의 의지가 '선진문물'의 성격을 사후적으로 바꾼 것이라면? 사정상 이 얘기를 현장에서 길게 풀어놓지는 못했으나, 프로그래머님의 매끄러운 진행 그리고 대담에 함께 해주신 관객분들의 열띤 반응 덕분에 충분히 즐거운 자리가 되었던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역시 <은하전설 테라>의 감독인 홍상만을 현장에 모실 수 없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한국영상자료원도 (<은하전설 테라>의 저작권을 갖고 있는) 대원미디어도 홍상만의 연락처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우리 중 누구도 홍상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또 살아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한편으론 아직도 한국영화사에서 인력의 단절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한편으론 '옛날 영화를 요즘 젊은 평론가들의 시점으로 보기'라는 비공식적인 기획 자체의 한계가 묘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나는 이중의 아쉬움을 느꼈다.


"김청기 감독님을 비롯한 4~50년대생 애니메이터들에 대해, 일본 애니의 아류를 만들었으면서 독자적인 한국 애니를 만들었다는 '구라'를 쳤다, 라고 당시 한국 애니 제작자들을 욕할 수 있습니다. 그게 7~80년대생 '논객'들에겐 상식적인 반응이었죠. 그런데 이 자리에선 약간 달리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한국 애니를 만들고자 한 그 독립의 의지의 소산이 바로 일본 애니의 한 분파가 되도록 만들었다고 말입니다. 즉 이미 보편적인 것이 된 일본 애니의 요소들을 한국에 이식하려는 시도였다면? "


"물론 이를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며 비판하실 분도 계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단지 <은하전설 테라>에 나타나고 소화된 일본 애니메이션적 클리셰들을 보다 정치하게 맥락화해보자고 제안하려는 것입니다. 가령,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일찍이 일본 서브컬쳐가 보편화된 것은 일본이 '일제'로서 20세기 초반에 제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했고 그럼으로서 서브컬쳐가 생상되고 유통될 초석을 미리 닦아놓았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 그리고 남은 절반에는 한동안 이어질 채널예스 연재 기획 <써야지 뭐 어떡해>, 또 다른 만화비평모임, 소설 해설, 회화전 리뷰, 작가 연구서에 실을 작가론, 또 다른 장편 연재, 그리고 아직은 말할 수 없는 '큰' 기획  두 가지에 몰두해야 한다. (당연히 여기에 또 다른 일이 추가될 수도 있다...) 솔직히 진짜 힘들고 지치고 그냥 눕고만 싶다. 하지만 죽지 못해 살아있으니, 살아있는 김에 열심히 한 번 해보려고 한다... 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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