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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저냥 ㅏ랑 Jun 12. 2024

만화비평모임 "하기오의 뒷모습 pt.2" 시작합니다


하기오 모토(1949- )는 현대 일본 만화는 물론 서브컬처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입니다. 순정만화·BL 등 현대 일본 여성향 문화의 기틀을 닦고 발전시켰으며, SF나 심리스릴러가 여성적인 장르일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만화를 잇달아 내놓았지요. 그리하여 일본 만화의 역사를 알고자 할 때 하기오의 이름은 절대 빠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보통은 이런 식으로 하기오 모토를 소개하곤 하지만, 이 모임에선 그의 작품들을 직접 읽고 그 안으로 들어가보면서 훨씬 본격적으로 그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기오가 어떤 만화를 만든 작가인지, 또 그의 만화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비교적 구체적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가령 반복되는 모티프들, 과도한 장식주의, 노골적인 반역사성 같은 것들 말이죠.


지난 번 모임에서 저희는 하기오 모토(1949~)의 여러 단편을 함께 읽었습니다. 참여자들의 열정 덕분에 흥미진진한 자리가 계속 이어졌고, 그만큼 서로에게 고무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던 것 같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에는 하기오의 초기 대표작 『포의 일족』을 여러분과 함께 읽어보려 합니다. 보통 ‘영원히 아이로 살아가는 뱀파이어들의 이야기’ 정도로 간단히 소개되곤 하지만, 『포의 일족』은 그렇게 설명될 수 없는 상이한돌출부로 가득 찬 작품이죠. 하여 이 모임에선 (세미콜론의 3권짜리 완전판을 통해) 그런 돌출부들을 직접 살펴보고, 어루만져보고, 심지어는 그 안으로 들어가볼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기오가 일본만화에 있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또 『포의 일족』이 현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 작품인지를 좀 더 알 수 있게될 것입니다. 또한 6월 25일의 인트로덕션에선 시각예술기획자이자 만화연구자인 한윤아 선생님께서 하기오 모토에 대한 특강(인스타그램 링크)을 해주십니다. 현재 하기오 연구에 대한 번역을 준비하고 계신 만큼 해주실 말씀이 많을 것 같아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전 pt.1을 함께 하지 않은 분들도 큰 무리 없이 모임에 참여하실 수 있을 터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걱정 말고 신청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시간표


1회차 (6월 25일) 들어가며+(feat.한윤아)

2회차 (7월 2일) 『포의 일족』 1권

3회차 (7월 9일) 『포의 일족』 2권

4회차 (7월 16일) 『포의 일족』 3권

5회차 (7월 23일) 나오며


참여방법


(1) 매주 화요일 저녁 8시부터 10시 반까지 진행되는 스터디입니다. 자리하기 어려울 경우 미리 요청한 분에 한해 줌으로 접속할 수 있습니다.

(2) 진행자는 참여자들이 본 스터디에서 다룰 만화나 글을 볼 수 있는 노션 페이지를 한시적으로 공유합니다.

(3) 1회차와 5회차를 제외한 나머지 모임에서 참여자들은 각 회차마다 정해진 작품을 미리 읽고 리뷰를 작성해주셔야 합니다.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가는 밤 12시까지 리뷰를 작성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4) 진행자는 매 회차마다 선정한 작품의 배경이나 맥락에 대해 20분 내외로 발제합니다.

(5) 참여자들은 매주 모임에 참여하기 전까지 서로의 리뷰를 읽고 그 내용을 숙지하셔야 합니다.

(6) 참여자 중 한 명이 자신의 리뷰를 2분 이내에 짧게 소개하면, 다른 참여자들은 이 리뷰에 대한 서로의 피드백을 나눕니다.




아래는 지난 "하기오의 뒷모습 pt.1"에서 한 회차의 기조발제문으로 쓴 리뷰입니다. 제가 집착하는 주제인 '만남'에 따라 세 단편을 논해보았는데요, 대강 어떤 얘기를 나지 이해하실 수 있도록 여기에 공유합니다.






불가능한 만남 -  <꽃과 빛 속>, <가여운 엄마>, <가을 여행>


이번엔 약간 짧게 얘기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하기오 모토의 만화에서 캐릭터들이 한 칸 안에서 서로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장면을 얼마나 보셨나요? 물론 많이 있습니다. <꽃과 빛 속>에도 <가여운 엄마>에도 <가을 여행>에도요. 그런데 저는 처음에 이런 순간들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지곤 했거든요. 물론 이 작품들은 각각의 방식으로 아주 불편하고 잔혹하긴 한데, 그것만으론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더 있다고 느꼈었어요. 왜 그럴까 하고 몇 번씩 다시 읽다보니까, 저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하기오 모토의 캐릭터들이 하나의 칸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일은 대부분 아주 외설적인 상황을 내포한다고 말이에요.



<꽃과 빛 속>을 한 번 다시 읽어볼까요? 화기애애하게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던 루이와 이자벨은 곧 이자벨의 추락으로 인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됩니다. (여담이지만, 하기오에게 있어 '뒤집어지면서 추락하는 몸' 역시 아주 중요한 모티프입니다) 이후 '다른' 이자벨을 들판에서 만나는 장면의 구도를 유심히 보면, 기이하게도 루이와 '다른' 이자벨은 각각 단독적인 컷으로만 제시돼요. 이 두 사람이 같은 컷 안에 들어가는 순간은 오직 루이가 폭력을 가하는 때 뿐이죠. 이후 루이가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이 또 언제인가요? 머시에게 이자벨이기를 강요하는 때이거나, 머시가 이자벨이 아니라며 버리는 때죠. 어느 쪽이든 연인에게 할 수 있는 최악의 행동들입니다. (여기서 히치콕의 <현기증>을 떠올리는 게 비단 저만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루이는 마침내 이자벨을 만납니다만, 이 초현실적인 순간은 한 페이지에만 묘사가 되고 그 다음 마지막 페이지에선 아예 두 사람이 (혹은 이 모든 걸 두려움의 표정으로 지켜보는 듯한 머시까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죠.



혹은 다른 두 작품은 어떤가요? <가여운 엄마>에선 아들인 팀과 엄마인 에스타가 제대로 마주하는 장면이 하나도 없어요. 작품의 시작부터 두 사람은 삶과 죽음으로 나뉘어졌고, 팀은 시프레이크를 압박하는 말을 할 때마다 뒤를 돌아보거나 얼굴을 들이미는 식으로 그와 일부러 눈을 마주칩니다. 한편 <가을 여행>에선 요한과 루이제가 아주 부단하게 시선을 마주하며 대화를 하지만, 이 대화는 뒤로 가면 갈수록 비혈연근친이라는 외설적인 뉘앙스를 띄게 됩니다. 어쩌면 요한이 마지막에 열차에 오를 때 눈을 질끈 감고, 또 아버지 클라인의 품을 향해 뛰어들지 않은 건, 기차가 운행 중이라서도 아니고 클라인과 함께 할 순 없다고 확신해서도 아니라, 그와 제대로 눈을 마주할 것이 너무나 겁이 나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보면 요한이 눈을 질끈 감은 컷이 몹시 의미심장해집니다) 이런 생각마저 들 만큼 하기오는 시선의 불일치, 혹은 불가능한 만남에 쭉 몰두해왔습니다.


이쯤에서, 지난 회차에 고**님이 질문해주셨던 게 기억납니다. "귀환을 가능케 하는 게 항상 여자들이라는 점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당시에 정확히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지금의 저는 대강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요; 하기오에게 있어 남자들은 주어진 시간 속에서 고통 받고, 철저히 그 시간 안에서만 머무르며, 오히려 그런 식으로 자기 안정을 되찾는 '매저키즘적' 존재들인 반면 여자들은 주어진 시간 밖으로 나가 그 시간이 인간 주변에서 우글거린다는 걸 알 수 있고, 또 그 시간을 구부릴 수 있는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자신의 고통을 계속 음미하는 것 같고요. 달리 말하자면, 하기오에게 있어 남자들의 귀환은 세상의 이질성을 직시하는 행위가 아니라 반대로 세상을 단지 자기의 주관 속에서 재확인하려는 행위에 그치는 것 같습니다. 이 세 편의 단편이 유독 기괴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이 때문이 아닐까요. 여기서의 '성인 남자'들은 바로 그런 행위로써 불가능한 만남을 자꾸 일으키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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