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저냥 ㅏ랑 Jun 03. 2024

〈아지랑이좌(陽炎座)〉, 1981


(아래는 영화 팟캐스트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의 <아지랑이좌> 특집을 위해 작성한 짤막한 리뷰이다.)





최근 한국에서 스즈키 세이준의 <아지랑이좌>가 재발견된 것은 물론 기쁜 일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는 건지 많은 분들한테 납득이나 이해가 안 된 것 같아요. 영화에 있어 이야기를 자세히 파악하는 게 '정확한' 독해라고 주장하려는 건 전혀 아닙니다만, 그에 대한 파악이나 설명을 일체 포기하고 넘어가는 게 꼭 좋은 독해는 아니지 않나 싶어요. 개인적으로 이런 지점에 대해 마치 알러지 같은 가려움증을 느끼는 편이라, 오늘은 <아지랑이좌>를 제 식으로 풀어나가는 데 집중하는 대신 <아지랑이좌>에서 끌어들여진 기호들의 맥락을 간단히 설명하는 데에 집중해 볼까 합니다.


단연코 여기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인 심중(心中) 즉 동반자살은, 에도 시대 이래 일본에서 서로 맺어질 수 없는 연인들이 맺어지기 위해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하는 자살 방법이었습니다. 원래는 유곽의 유녀들이 손님으로부터 사랑의 징표로서 받는 신체의 일부를 일컫는 말이었는데, 이게 유행하니까 이 징표가 더 중대한 걸로 바뀌고, 그러면서 오히려 더 유행하고 또 소네자키 심중이라고 (나중에 인형극을 비롯해 연극과 문학과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등) 당시에 엄청난 스캔들이었던 사건이 터지니까 아예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사랑을 맹세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어요. 그 결과 심중=동반자살이 돼버린 거죠. 말하자면 여기서 동반자살은 연인끼리 할 수 있는 최대의 '낭만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참고로 연인이 아닌 부모자식 간의 동반자살인 ‘친자심중’은 타이쇼 말기인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갑자기 등장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아지랑이좌>에서 마츠자키와 시나코 사이에 줄곧 갈등이 일어났듯, 동반자살이 과연 자살자들 사이에 제대로 된 합의로써 이루어는가에 대해선 지난한 논쟁의 역사가 있죠. (이런 점에서, 자살 연구자들에게 일본의 자살-특히 동반자살은 문화적 맥락의 영향력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대표 사례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영화 안에서 혼이라고 불리는 꽈리(호오즈키)는, 약초로도 쓰이고 아이들을 위한 간식이나 놀잇감으로도 많이 팔렸지만 잎과 뿌리에는 독성이 있고 특히 뿌리에 자궁을 긴장 및 수축시키는 성분이 있어서, 에도 시대에는 임신중절용 독초로 쓰였다고 해요. 해서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꽈리를 먹는 여성들이 많이 있었죠. 그리고 동시에, 꽈리 열매가 망자의 가는 길을 안내하는 등불과 닮았다고 해서 '꽈리를 집안에 심으면 환자나 죽는 사람이 생긴다'는 관념이 자리 잡아 집안에는 꽈리를 심지 않는 전통이 있었으며, 대신 조상을 기리는 일본의 명절인 오봉(양력 8월 15일)에 많이 장식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 속에 꽈리 모양의 등불이나 편지가 등장하는 거라고 이해하시면 될 거예요. 즉 <아지랑이좌>에서 세이준은 기호로서 꽈리에 얽힌 상이한 문화적 맥락을 한 데 과감히 접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영화는 일본 환상문학의 대가 이즈미 쿄카의 단편소설 「아지랑이좌」를 각색했다고 흔히 알려져 있습니다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캐릭터들을 제외한다면 원작 아지랑이좌를 직접적으로 따라가는 건 마지막 30분, 즉 어린이 극단 '아지랑이좌'가 등장하는 후반부뿐이죠. 영화는 이 소설을 기반으로 이즈미의 다른 단편들, 「연애편지」, 「춘주」, 「춘주 이후」, 「별의 가부키」, 「산장」* 등의 작품들에서 발췌한 대목을 많이 끌어들이고 조합했으며, 또 하카타 인형 에피소드(인형을 뒤집어 속을 보면 음란한 조형이 나타나는 이야기)의 경우는 우리에게 <나라야마부시코>의 원작자로 유명한 후카자와 시치로의 단편  「비희」에서 따온 겁니다. 게다가 이 이외에도 여러 소설이나 일화들이 (소품으로라도) 오마주 되었다고도 해요. 저는 과문해서 잘 모릅니다만.


*여기서의 "산장"은 꽈리의 전초(全草)를 이릅니다.



하여 이런 오마주의 사례 하나를 잠깐 얘기해 볼까 합니다. 원작에서 타마와키는 법학자이고 이네도 그냥 일본인인데, 영화에선 굳이 꼬아서 타마와키는 백작 작위를 지닌 의사, 이네는 본명이 이리네(Irene)인 귀화 독일인으로 바꾸었어요. 독일에 유학을 가서 현지 애인을 만들고 그녀와 함께 귀국한다는 모티프, 이건 근대 일문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알 수밖에 없는 어떤 사건에 기초한 것 같습니다. 바로 모리 오가이의 「무희」 사건입니다. 여러분께는 미조구치 켄지의 <산쇼 다유>의 원작자로 유명할 모리는 당시 일본 육군 군의관 신분으로 독일에서 1884년에서 1888년까지 약 4년 정도 유학을 다녀왔는데요, 거기서 엘리제라는 독일인 여성과 깊이 교제를 했어요. 그리고 유학이 끝나서 얼마 안 가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귀국을 했는데, 그로부터 얼마 후 엘리제가 남몰래 모리를 쫓아와서는 결혼을 하자고 한 거예요. 모리는 이 국제결혼을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했(다지만 이건 나중에 모리 스스로 밝힌 거라서 의심의 여지가 없진 않)지만 모리의 가족을 포함한 주변인들이 '그러면 출세는 모두 없던 일이 된다'라며 반대하고 나섰고, 결국 설득당한 엘리제는 한 달 만에 독일로 귀국했습니다. 서양인에 대한 공포가 엄청났던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이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았죠.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약 2년 후인 1890년에, 원래 시인으로 활동했던 모리 오가이가 이 경험을 재구성한 구슬픈 연애소설 「무희」를 발표한 거예요. (한국에도 번역본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소설을 통해 모리는 메이지 일본이 개방적인 척 하나 실은 얼마나 수구적이며 모순적인지를 폭로했고, 당시 일본의 연애 관념에 있어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하나 오히려 이 때문에 모리 오가이는 인기를 얻어 문호의 위상을 얻게 되었죠. 아이러니하고 기괴하지 않나요? 떠나간/죽은 여자를 애도함으로써 명성을 얻은 남자라니. 이 사건이 <아지랑이좌>에 모티프로서 차용된 건 틀림없는 것 같아요. 한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국제결혼에 실패한 <무희>의 주인공이든 성공한 <아지랑이좌>의 타마와키든 둘 다 결국엔 사랑에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전자는 연인을 둘러싼 세상의 흐름 때문이고, 후자는 타마와키의 잔인한 면모 때문이지만요. 앞서 "오마주"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이 점에서 세이준은 존경을 표하는 데에 어떤 관심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체호프나 고다르처럼 심술궂게 의심을 표하는 쪽에 가깝죠. '근데 과연 엘리제와 결혼했어도 해피 엔딩이 있었을까?' 하는 식으로요.


하여튼 이렇게 여러 작품 일화를 뒤섞으면서도 대사나 상황은 나름 충실하게 재현하거나 살리고 있어서, <아지랑이좌>는 이즈미 쿄카를 비롯한 여러 일본 문학에서 받은 영감을 독자적인 미적 감각 속에 하나로 과감하게 묶어본 영화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세이준은 한 인터뷰에서 '이즈미 쿄카는 읽어본 적이 없고, 그냥 각본이 넘어왔길래 거기에 충실하게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이준이 현장에서 각본을 맘대로 고치 했다는 비화를 떠올리면 마냥 믿을 만한 말은 아니지 않을까요? 참고로 이 영화의 '공식적인' 각본가는 <살인의 낙인>과 <지고이네르바이젠> 그리고 <유메지>를 함께 한 타나카 요조입니다)



하나 유념할 것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소위 '일본적인' 기호들이 범람하고 있다고 해서 이 영화를 '일본적인' 영화로 봐선 안 된다는 거예요. 바로 그 점에서 스즈키 세이준이 굉장한 영화작가라 할 수 있을 건데요. 예를 들어 얼마 전 굳이 재개봉하기도 했던 추악한 <남은 인생 10년>처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감상적이고 탐미적인 풍경의 영화가 있습니다. 이런 풍경을 영화적으로 규범화된 '일본적' 풍경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에 대한 여러 비판과 대안적 시도들이 일본 영화에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아다치 마사오 이후 풍경론("우리들이 기분 좋게 드라이브를 즐겼을 때 바로 그 순간 풍경은 우리를 속박하고 권력은 우리를 옭아매고 말 것이다.")일 테고요. 그런데 세이준은 담론이 된 풍경론에 참예하지 않으면서도 규범화된 '일본적' 풍경에 대해, 또 그에 대한 대안적 시도들에 대해 아주 흥미롭고 중요한 교정점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니까 세이준은, 가령 '탐미적이지 않은 더럽고 추한 것들 역시 일본의 풍경이다'라는 식의 핍진한 재현론을 추구하는 대신, 애초에 영화적 재현으로서 '일본적' 풍경이랄 것 자체가 이런저런 기호들을 조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걸 간파하고 그쪽으로 자기 영화의 방향을 밀고 나간 거예요.


달리 말해 '일본적' 풍경이 (그리고 그에 대한 영화적 재현이) 항상 사후적으로 또 구성적으로 주어진다는 인식 아래, 거기에 동원되는 모든 기호들을 모종의 '형식'으로 간주하고 그 인공성 내지 허구성을 극대화시킨 것입니다. (인물들 사이의 거리나 공간의 연속성 같은 물리법칙이 완전히 무시되는 '환상적인' 몽타주의 순간들을 떠올려봅시다) 그러면서 그의 영화 속에선, 그리고 특히나 <지고이네르바이젠>과 <아지랑이좌>에선 '일본적' 풍경 자체가 완전히 부자연스러운 희극으로 변모해 가죠. 혹은 거꾸로, 스즈키 세이준 영화의 형식미는 이런 정치적 맥락에서(도)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 세이준은 일본적인 작가라고도 반-일본적인 작가라고도 할 수 없는 기묘한 지대에 스스로를 위치시키죠. 굳이 먹물다운 표현을 쓰자면 반-보드리야르주의자이자 비-제임슨주의자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또다시 첨언을 하자면, 혹여라도 이 "부자연스러운 희극"이 허구성에의 폭로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앞서 인공성 내지 허구성을 극대화시킨다고는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형식'에 대한 강력한 믿음을 기반 삼은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아지랑이좌>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거의 마지막에 시나코가 통 안에서 무수히 많은 꽈리를 내뱉는 장면을 떠올려볼까요? 이는 흔히 시나코의 자살을 은유한 장면으로 거론되곤 합니다만, 사태는 정반대예요.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실은, (마치 『프라이스 킹!!!』의 김홍처럼) 이 영화 속 세계관에서 자살이란 오직 이렇게만 이루어진다고 세이준이 강하게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허구적이면서 감각적인 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즉 '영화적 판타지'로서 <아지랑이좌>는 그럴듯한 상징과 은유를 밀어붙인 영화가 아니라, 자살이나 연애 같은 행위가 우리네 세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걸 착실하게 보여주고 들리게 하는 영화인 거예요. '일본적' 풍경을 탈자연화하면서 그것을 이루던 '형식'을 마땅한 영화적 세계에 재배치한달까요? 우리는 이 영화가 절절한 신파극이라는 세이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야 합니다. 탈-신파적인 세계와 방법 속에서 재구성된 신파, 말하자면 이 세계의 것이 아닌 다른 세계의 신파죠.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자유로운 파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