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깔깔마녀 Sep 12. 2021

설탕 듬뿍, 소금 듬뿍.

어린이 작가의 일 3 - 마음대로 그러나 바꿔보기

베이컨과 치즈가 두둑이 들어간 햄버거. 토마토 케첩과 머스터드 소스, 설탕이 가득한 핫도그, 생크림 범벅 케이크, 너무 매서워서 입이 얼얼한 양꼬치, 입이 쓸 만큼 달달한 달고나... 그리고 또 많다. 아이들의 책 속에 등장하는 음식을 보고 있노라면, 먹고 싶다 못해, 먹기 싫을 정도다. 방과후의 식단은 영양의 균형은 물론이고, 가능한 가공식품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지는 꽤 오래되었다. 간식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아이스크림이나 감자튀김이 등장하면 아이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런데 책 속에 등장하는 음식은 정반대다. 유기농은커녕, 트랜스지방과 자극적인 향신료와 설탕, 소금만 가득하다. 이 불량스러운 음식을 그리면서, 불량스러운 음식을 요리하고 나눠먹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아이들은 마냥 좋아한다. 얼마나 좋은지, 음식을 그리고 음식 이야기를 쓸 때는 딴짓이나 어려움은커녕 초집중 모드다.


처음 아이들과 책을 만들기 시작할 때는, 곳곳에서 등장하는 '불량' 소재와 '불량' 사건 때문에 괴로웠다. 내 눈에 제일 거슬렸던 건, 마냥 귀엽고 마냥 예쁘게 그리고 싶어 하는 여자 아이들과 아무리 봐도 게임 세상 같은 남자아이들의 작품이었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작년 아이들과 책을 만들려고 했던 동기 중에는 '이런 것'(가치라고 할까, 이데올로기라 할까, 신념이라 할까, 아니면 내 고집이라 해야 할까, 단어를 떠올리기 힘든, 암튼 '이런 것')도 있었다. 이면지, 수첩, 색종이 등등. 종이란 종이, 모든 종이에, 고학년 여자 아이들이 그리는 여자 아이돌을 떠올리게 하는 똑같은 그림이었다. 정말 지겹군, 기필코, 기필코, 기필코.

막상 책을 만들고 보니, 여자 아이돌풍의 그림은 큰 문제도 아니었다. 게임 월드에서 끊임없는 싸움과 진화 과정은 또 어떻게 하나. 누가 보면 방과후 교사들이 성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오해하겠군 싶었다. 기필코, 기필코, 기필코를 또 외쳐야 하나 난감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재벌이 되었다는 저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 우주까지 가서 보석을 캐고 부자고 되었다고 하네, 감옥을 탈출해서 경찰하고 간수한테 복수를 한다니 저 스토리를 그냥 놔둬야 하나, 예쁜 얼굴이 되어서 인기가 많은 아이가 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다니, 여기저기서 아이들은 '불량' 이야기를 신나게 만들고 있었다.  아이들의 환상 세계는 짐작보다 단순하고 짐작보다 별로였다. 올해라고 다르지 않다. 게임과 아이돌과 부자와 괴물과 좀비는 곳곳에서 등장한다. 


솔직히 말하기도 한다. "이건 안 되겠어. 미에 대한 고정관념은 편견이라고 전에 배웠잖아."

약간 거짓말을 섞어 설득하기도 한다. "게임이랑 똑같은 책을 누가 사겠니? 책이 안 팔릴 거야."

아주 아주 솔직할 때도 있다. "있지. 나는 이렇게 기괴한 괴물이 있는 그림은 유치하다고 생각해. 너는 유치원생이 아니잖아."


반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반은 마음대로 할 거라고 하다가 결국 작가의 신념을 꺾는다. 물론 내 쪽에서 많은 부분은 포기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든가, 예쁜 여자 아이만 등장하는 정도는 패스. 대부분 어른들도 돈을 벌고 싶고, 대부분 어른들도 매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니까, 이 정도는 패스. 간수한테 복수를 하는 감옥 탈출 스토리는 원래 주인공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온 것으로 살짝 수정하는 정도로. 물론 작가도 수긍했다. 괴물은 조금 더 다양한 모습을 요구하고, 좀비는 너무 무섭다고 살짝만 덜 무섭게(사실은 덜 징그럽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슬픈 작품도 있었다. 너무나 작고 힘없는 주인공이 시련과 시련을 거듭하다 천국으로 가는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엄마와 아빠가 그냥 사라지거나, 친구는 엄마와 행복하게 사는 데, 주인공은 혼자 외롭게 지낸다는 결론을 마주하는 일도 힘들었다. 불량식품은 아니지만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네가 만든 책은 어린이들이 살 거야. 어린이들은 해피엔딩을 좋아하거든, 우리 조금만 고치자"라고 했다. 이 슬픈 이야기를 만든 어린이 작가들은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모든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어린이 작가들은 자기 창조물 속에 욕구와 욕심, 욕망과 희망을 드러낸다.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일은 결국 그 욕구와 욕심, 욕망과 희망의 세계를 가상으로 만드는 일이니까. 

마음대로, 손 가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대로'와 '대로'를 존중해 줘야 한다. 그렇다고 '바꿔보자'는 제안이 그 '대로'를 무시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욕망이 하나이고 변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복잡하고 얼마나 다양하고 또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어른은 알고 있다. 그리고 어린이 작가다. 어린이의 변화무쌍함은 어린이가 지닌 축복이다. 


나도 유기농 간식은 별로다. 유기농 피자, 유기농 아이스크림은 심심하다. 배가 아프지만, 얼굴이 퉁퉁 붓겠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에 먹는 라면만큼 맛있는 음식은 없다. 


설탕 듬뿍, 소금 듬뿍, 듬뿍으로 가득한 햄버거와 케이크와 핫도그, 실컷 그려봐. 


여기가 아니라면 또 어디서 가능하겠니?  

    

               

매거진의 이전글 100퍼센트의 단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