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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Sep 21. 2021

귀여워서 고마워.

어린이 작가의 일 5 -  엉성하지만 열심히, 약하지만 상냥하게

아이들은 귀여운 뭔가를 좋아한다. 늙고 커다란 고양이를 보고도 "귀여워!", 흔하디 흔한 돌멩이를 보고도 " 귀여워!" 솜뭉치가 들어 있는 종이봉투를 보고도 "귀여워!"를 외친다. 가끔 이상할 때도 있다. 저게 왜 귀엽지, 뭐가 귀엽다는 거지. 또 어떤 경우에는 의심을 한다. 어른들이 아이를 대할 때 흔히 하는 칭찬 '귀엽다'가 학습된 거야. 귀엽다는 말에 담긴 의미를 아이들과 이야기해봐야겠군 그런 적도 있었다. 물론 귀엽다의 허상이 어쩌고 하는 대화를 하지는 않았다. 의심과 대화 이전에 나부터 귀여운 걸 무지 좋아하는 사람이라, 곧바로 '너무 나갔군'하고 자각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귀여운 뭔가는 무궁무진하다. 붕어빵, 딱정벌레, 끈적끈적한 슬라임, 눈알 스티커, 사마귀,  동그란 잎, 제비꽃, 치타, 종류를 다 셀 수 없을 정도다. 작고 동그란 존재를 귀여워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사마귀를 귀여워하는 아이들을 처음 접했을 때는 으악!이었다. (지금 나는 사마귀를 귀여워한다. 자세히 보면 굉장히 사랑스럽다. 특히 앞다리의 선은 오호라 하는 감탄사를 자아내는 귀여움이 가득하다.) 그림 속의 존재만 귀여워하는 게 아니다. 살아 있는 물고기를 보고도 귀엽다고 한다.(아직도 나는 횟집 수족관 속의 물고기가 왜 귀여운지 잘 모르겠다) 

귀여움을 사랑하는 작가의 존재적 특성 때문일까. 어린이 작가의 작품에도 귀여운 뭔가가 가득하다. 귀여운 토끼, 귀여운 고양이, 귀여운 뱀, 귀여운 졸라맨, 귀여운 펭귄, 귀여운 여자 아이, 귀여운 젤리, 귀여움 귀여움, 귀여움이 꽉 찬 세계라고나 할까, 어린이 작가들의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나도 저 귀여운 세계의 귀여운 존재가 된 것 같다. 


방과후 동생들에게 인기 있었던 어린이 작가의 작품  몇 권이 떠오른다.  강아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와, 콩이가 밥으로 되는 과정을 알려주는 이야기다. 두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른인 나는 약간 고민을 했다. 작품의 완성도에 아쉬움이 느껴져서, 좀 더 좀 더가 마음을 간질였다. 저 강아지 팔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는데, 저 집은 색이 더 정확하면 좋겠는데, 쌀과 콩이 차이가 없는데, 이야기가 늘어지는 게 아닐까, 너무 단순한데 하는 좀 더를 꾹꾹 누르고, 완성도를 좀 더 높이려고 했다. 꾹 꾹 누른 이유는 명확했다. 작가들이 얼마나 열심히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완성도를 높이고 싶었던 이유도 명확하다. 어른인 내 기준에 엉성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나는 좀 더를 잘 누르고, 작가들은 열심히 자기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책으로 만들어진 두 작품은 동생들의 인기작이 되었다. 동생들은 강아지와 콩이 앞에서 감탄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아! 귀여워!"


아, 그랬구나, 그런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뒤늦게 도착했다. 내 눈에 팔이 조금 더 길고, 얼굴 표정이 더 다양해졌으면 하던 강아지와 콩이 아이들의 눈에는 귀여움 그 자체였다. 팔이 짧아서, 표정이 단순해서, 그래서 귀여운 강아지, 귀여운 콩이었다. 맞다. 귀여운 존재는 어딘가 엉성하다. 돌멩이와 젤리와 강아지풀과 연두 잎 모두 작고 약하고 단순하고 그래서 어딘가 엉성하다. 그림은 당연하다. 코끼리든, 공룡이든, 치타든 그림 속의 존재는 완벽하지 않고 자세하지 않다. 그래서 귀엽다.  늙은 고양이도, 곤충도 귀엽다. 그들은 사람처럼 말하지 않고 사람처럼 옷을 입지 않는다. 아이들 눈에는 이 엉성한 존재들이 금방 다가갈 수 있는, 긴장하지 않아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는 귀여움의 존재로 보인다.     

       

곰 젤리 하리보와 노란 캔디가 주인공인 작품이 있다. 하리보와 캔디가 영화관에도 가고, 바닷가에 놀러 가기도 한다. 이 책을 만드는 작가는 처음 어떻게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 몰라서 힘들어했다. 잘 모르겠어, 생각이 안 난다고 하던 작가 옆에 언니와 친구와 동생과 매니저인 어른이 있었다. 캔디가 주인공이 돼서 놀이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만들면 어떨까, 마피아 게임부터 알려주는 게 어때, 캔디 옆에 하리보를 그려봐, 붓펜이랑 수성 펜을 써거 그리면 되지, 어린이 작가는 옆 사람들의 조언을 하나 둘 모아서 열심히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열심히 열심히 이야기를 쓰고 있다. 

어른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한다면 조금 더 어떤 걸 요구해야 할지 모른다. 놀이할 때처럼 팔과 다리를 이렇게 그리는 건 어때, 책방에서 어떤 모습으로 책을 보는지 상상해 보자 등등.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안 한다. 좀 더를 꾹꾹 누르지도 않는다. 좀 더가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 작가가 얼마나 열심히 하리보와 캔디를 그리는지, 하리보와 캔디가 놀고 있는 모습을 얼마나 열심히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또 알고 있다. 저 하리보와 캔디의 이야기가 어른의 기준과 다르게 환호성 한가운데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최고의 찬사인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를 받게 될 거라는 사실을.


또 알고 있다. 아이들은 작가들이 만든 책에서 자신과 비슷한 존재를 발견하고 싶어 한다는 걸. 완벽하고 똑똑하고 뭐든 잘하는 존재보다 작고 약한 존재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안다. 그 존재들은 작고 약하고 모자라는 게 있기 때문에 쉽고 편안하게 친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가가기 어려운 구석은 하나도 없고 그저 상냥하고 다정하게 느껴질 거라는 사실을. 어린이들은 그렇게 약하지만 상냥한 존재를 보고 외친다. 


"귀여워!"


귀여운 것들로 가득 찬 세계에서 귀여워를 외치는 아이들, 엉성하고 작고 약해서 친근하고 상냥하고 다정한 작품을 열심히 열심히 만드는 어린이 작가들,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귀여움으로 화답하는 어린이들, 모두에게 감사를 전해야지. 


고마워. 

고마워. 

귀여워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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