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야기
바다, 푸른 바다, 햇빛과 함께 부서지는 바다, 따뜻한 바다, 차가운 바다, 일렁이는 바다, 부서지고 깨지는 바다, 무서운 바다, 검은 바다, 하늘빛 바다, 가만가만 그대로인 바다.
집으로 가는 꿈을 꾼다. 집에 가는 길에는 언제나 바다가 있다. 나는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서 자랐다. 기억 속 바다를 적어보았다. 짐작보다 많지 않았다.
“한글을 모르는 건 물론이고요”
담임선생님이 바다를 노려보며 말했다.
“화를 참지 못해요. 때리고 할퀴고 물고 소리를 질러요.”
담임선생님은 비슷한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만하시라고 할 수 없었다. 산만하고 폭력적이고 한글을 모르는 아이와 하루 네 시간 이상을 함께 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짐작하니까.
바다를 보았다. 하얗고 동그란 볼,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어릴 때 가지고 있던 양배추 인형과 닮았다. 저렇게 귀여운 아이가 왜 문제아가 됐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궁금한 만큼 나는 담임선생님과 다를 거라고 착각하면서.
하지만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첫 시간부터.
바다가 계속 말했다. “싫어요.” “안 할래요.”
내가 계속 말했다. “안 돼.” “해야 해.”
소용없었다. 구슬려도 달래도 상도 소용없었다. .
다른 아이들도 계속 말했다.
“바다, 원래 저래요.”
“담임선생님한테 매일 혼나요.”
아이들은 이르는 걸 좋아한다. 이르고 나면 제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니까. 하지만 이르지 않는 게 좋은데, 바다 앞에서는 가만히 있는 게 좋은데, 아이들은 계속 이른다.
싸움은 늘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주먹이 날아가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꼬집고.
나는 계속 잔소리를 하고, 아이들은 계속 싸우고, 바다는 계속, 계속 말했다.
사실 제일 힘들었던 것 바다였다. 나와 다른 아이들, 우리는 다수였고, 바다는 혼자였다. 내가 팔을 꽉 죄고 있을 동안, 바다는 부르르 떨었다. 눈물이 금방 떨어질 것 같은 붉은 눈으로 씩씩댔다. 억울하다고, 속상하다고.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아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바다가 하고 싶은 대로, 공부가 싫으면 하지 말고, 바닥에 눕고 싶으면 누우라고 했다. 다른 아이들도 공평이니 불공평이니 문제를 따지지 않았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바다를 놔두는 게 편하다는 사실을.
그런데 바다가 변했다. 어느 날 갑자기,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혼자 책상에 앉아서 글자를 썼다. 우연히 찾아온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온갖 찬사를 퍼부자, 아이들도 거들었다.
“바다가 얌전해졌어요.” “바다 착해졌네요.”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해.”
바다가 변한 건 왜였을까?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포기하고 그냥 내버려두었을 뿐이다. 그건 불손한 의도가 깔린 무시였다. 그렇다면 엄마가 친절해졌을까? 담임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던 걸까? 아니, 갑자기 공부가 좋아졌을까? 그림책을 읽고 글씨를 쓰고 싶어 졌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다. 바다가 왜 변했는지는, 바다만 알 수 있는 문제였다.
바다가 고맙다. 내 무시와 소외를 무시와 소외로 끝맺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 나는 바다 덕분에 자격 없는 선생님을 피해 갈 수 있었다. 그건 행운이고, 선물이다.
복지사가 바다의 가정이 어떤지 이야기했다. 나는 또 자신 있게 말했다.
“바다는 억울한 거예요. 친구들과 부딪힐 때마다 바다가 잘 못했다고 하니까 어른을 못 믿는 거예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였나? 바다의 가족과 바다의 학교생활과 겨우 일주일에 한 번 함께 지낸 시간으로 바다가 억울하다고, 나는 아이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을까?
바다가 속한 한글 교실은 딱 6개월 진행되었다. 가끔씩 짜증을 내고 싸웠지만, 바다는 확실히 처음 바다와 달라졌다. 쓰는 걸 그렇게 싫어하더니, 크리스마스 전에는 ‘산타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라고 편지를 섰다.
그 해 겨울, 나는 바다 때문에 어깨가 으슥했다.
바보 같으니라고. 한 것도 없으면서, 내가 으슥하면 좋은 결말이라고 믿다니, 정말 바보였다. 나는. 바다가 왜 내 말을 듣지 않았는지, 왜 소리를 질러대는지, 어느날 갑자기 왜 스스로 책상에 앉았는지 몰랐다. 바다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다가올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짐작도 못했다. 나는.
3년이 흘렀다. 4학년 한 반이 모두 참여하고, 아이들 이름을 부를 시간도 없는 박무관 프로그램 시간이었다. 보조 교사가 유독 한 아이를 제지하는 게 보였다. 아이는 계속 투덜거렸고 몸을 흔들고 있었다. 보조 교사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한 마디 거들었다.
“왜 그러는 거야? 지금은 수업 시간이야.”
맨 앞자리에 아이가 내 말을 받았다.
“바다, 쟤 원래 그래요. 내버려두는 게 좋아요.”
바다였다.
몸집이 커지고 젖살이 빠져서 한눈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하얀 얼굴에 곱슬머리는 여전했다. 반가웠지만 꾹 참고, 수업을 계속 진행했다. 반가운 만큼 눈은 자꾸 바다에게 갔다.
바다는 심드렁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 같으면 자기를 이르는 아이를 혼내 줬을 텐데, 다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그림 그리기도 만들기도 안 하고 책상에 고개를 박고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바다는 맨 끝자리 구석에 앉아 있었다.
바다는 쉬는 시간에도 똑같았다. 그냥 혼자 앉아서 의자를 들썩이며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바다에게 다가갔다.
“바다야, 나 깔깔마녀야. 기억나?”
바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관심도 반가움도 호기심도 없었다.
“아뇨. 누구세요?”
슬펐다.
바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서 슬픈 게 아니라, 내가 멍청해서 슬펐다.
힘든 아이를 알면 알수록 이게 뭔가 싶을 때가 많다.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문제는 계속 드러나고, 이거다 싶었는데 아니고 아니다 싶었는데 이거인 과정이 되풀이된다. 어른들 대부분은 혼란을 참지 못한다. 난 특히 심하다. 아이의 문제와 원인을 빨리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처방을 내리고 싶어 한다.
타인을 이해하는 건, 타인의 세계에 발을 딛는 건 어렵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를 이해하는 건 아이의 세상에 속하는 건 쉽다고 착각한다. 긴 시간을 보내지도 않으면서, 아이 마음에 가보지도 않으면서, 가정환경이 어떻고 학교가 어떻고 떠들어대다가 아이가 좋아졌다고 믿는다.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는 세계가 가짜 세계라는 걸 모르면서, 아이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착각하면서. 나도 그랬다.
그때 한글 교실에 들어왔던 1학년 바다가 얼마나 외롭고 억울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도 모르고 아이들도 모르고 우리도 몰랐으니까. 바다를.
문제아 바다, 원래 그런 바다, 가만히 놔두는 게 최고인 바다, 이상한 바다, 장난꾸러기 바다, 웃고 있는 바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바다, 양배추 인형 같던 바다, 선물을 좋아하던 바다.
사진이 있다. 바다가 내게 준 편지다. ‘이바다가’라고 적힌 편지 위로 동그랗고 까만 게 보인다. 감 씨다. 감 씨를 쪼개면 숟가락이 있다고 하자, 아이들이 진짜냐고 그랬다. 이빨로 감 씨를 쪼개자, 하얀 숟가락이 나타났다. 모두들 신기해하며 나머지 감 씨도 다 쪼개 달라고 했다. 이빨이 얼얼할 정도로 감 씨를 쪼개고 숟가락을 보았다.
늦가을이었다. 바다가 내게 선물을 준다면서 감 씨를 내밀었다. 소중히 간직했다가 봄이 되면 심으라고, 그러면 감나무가 자라고 감이 열릴 거라고. 그 순간만큼 바다와 나는 함께 있었다.
바다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