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들 이야기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열 명 넘는 아이들과 함께 체조를 했다, 윽박을 질렀다, 싸우는 아이들을 말렸다, 소리를 질렀다, 한숨을 쉬었다. 다른 교사가 하듯이 받아쓰기, 글자 쓰기 연습 같은 건 하지 않겠다며,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럼 아이들이 저절로 한글을 깨칠 거라고 믿고, 믿고, 또 믿었다. 그러다 받아쓰기와 글자 똑 같이 베껴 쓰기를 하라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해댔다. 그림책으로 글자를 공부하는 교사를 마구 욕해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들 보고 그림책에 적힌 글자를 한 줄 한 따라 읽으라고 했다. 자석 글자판, 과자로 글자 만들기, 찰흙으로 글자 쓰기, 스티커로 편지 쓰기, 몸으로 글자 되기……. 아는 방법은 다 쓰고, 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을 만들었다.
방법에 심하게 집착했다.
본래 나는 어정쩡한 상태, 불투명한 미래, 불확실한 상황을 못 견뎌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한글 교실은 어정쩡하고, 불투명하고, 불확실했다. 아이들은 수시로 바뀌었고, 앞으로 글자를 익힐 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무엇보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검증해 줄 사람도, 지침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쓴 썼다. 1970년대 주입식 교육부터 미래 문화예술교육까지, 내가 경험하고 알고 상상하는 모든 방법을.
아무래도 처음 한글 선생님이 되었을 때 우리 반 아이들에게 사과를 해야겠다.
‘얘들아, 너희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지. 선생님은 그때 진짜 초짜였어. 완전 미안해. 하지만 너희들은 날 용서해줄 거야. 일부러 그런 거 아니라는 거 알지?’
지금도 어정쩡, 불투명, 불확실은 바뀌지 않았다. 변한 게 있다면 베짱이 생겼다고나 할까, ‘아이들은 다 달라, 아이들이 바뀌는 건 당연한 거야, 앞으로 어떻게 되든 난 지금만 살래’라고. 방법에 대한 검증도 무시한다. ‘몰라, 틀리면 바꾸면 돼지. 아이들을 지금 상태에서 후퇴만 시키지 않으면 되는 거야.’라고.
어쩌다 보니 한글 수업을 진행해야 할 초짜 선생님에게 조언을 해야 할 때가 있었다. 왔다 갔다 하기는 조언도 마찬가지. 모든 방법을 다 알려주었다가, 관점이 중요하지요 식으로 심드렁했다가 갈팡질팡했다. 돌아보면 진짜 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못했던 같고, 어쩌면 조언이라는 게 꼭 필요한 건지 의심스럽다. 그러면서도 학교 안 비문해 아이들을 만나야 할 선생님에게 ‘이것만은 말하고 싶어요.’가 있으니, 내 마음은 나도 모르겠다. 내가 잘 나서라기보다는, 동지를 찾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말하지 못해서 나를 드러내지 못해서 안달을 내는 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만약 당신이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을 만난다면.
1.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거해요, 재미없어요, 재미나서 좋았어요. 재미, 재미, 재미. 아이들은 늘 ‘재미’에 목말라한다. 한글 교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니,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재미를 원할지 모른다. 난 가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까짓 거 재미있게 해주겠어.’라고 결심하곤 한다.
글자를 모른다는 사실은 아주 심각하며, 한글 공부는 반복이 최고이기 때문에, 재미는커녕 질서 정연하고 금욕적인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신념은 현실에서 금방 깨진다. 아이들은 제 스스로 “한글을 알아야 해.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할 거야.”라고 결심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한글을 알아야 한다니까, 한글을 모르면 바보가 된다니까, 담임선생님과 보호자가 가라고 했으니까, 한글 교실 책상 앞에 있다. 하루 종일 꼼짝없이 교실에 앉아 있는 것도 지겨운데, 방과 후 수업을 또 해야 하는 거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협박(나중에 식당 가서 엉터리로 음식 주문할 거니?)을 하거나, 벌을 세우거나(다 못 쓰면 노는 시간 없어.), 달래거나(공부 열심히 하면 아주 똑똑해질 걸) 식으로 아이들의 의지를 불태우려고 했다. 교육(education)은 ‘이끌어내다’나 ‘끌어내다’를 뜻하는 라틴어 어근 에두케레(e-ducere)라고 굳게 믿으면서.
물론 교육이 주입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가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일이라는 믿음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자고, 글자를 모르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어 낼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동기를 어떻게 부여해야 하는지, 비전을 어떻게 수립해야 하는지 도대체 알 수도 없고, 아이들은 귀여운 얼굴로 “재미난 거해요.”라고 요구할 뿐이다.
그냥 재미나게 해야겠다 싶었다. 본래 재미난 사람이 아닌데, 내 속에 있는 재미라는 요소는 다 계발하기로 했다.
내 이름이 깔깔마녀고, 빗자루를 타고 학교에 왔고, 나이는 400살이 넘는다고 뻥을 쳤다. 교실 이름은 한글 교실이 아니고 별별 교실이라고, ‘조선사람 중국사람 웃음 내기’로 수업을 시작하고, 짹짹고래 노래를 가르쳤다. 경음을 가르쳐 줄 때는 부러, ‘똥’과 ‘뽕’ 이야기를 했고, ‘칠판 똑바로 보기 상’ 같은 이상한 상장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른보다 재미난 게 많다. “수리수리 마수리 책이 등장합니다.”라는 말에도 깔깔거리고, 글자 자석을 칠판에 붙이는 걸 재미있어한다. 즐겁고 편안하고, 새롭고 신나면 아이들은 그냥 ‘재미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재미’은 좋은 기분 모두를 표현하는 낱말 일지 모른다.
무엇보다 교사가 자신의 일을 재미있어해야 한다. 지치고 힘들 때가 있지만, 절반 넘게는 자기 일에 재미를 느껴야 한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우리 아이들은 반응에 인색하지 않다. 좋아하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당신은 재미있을 거다. 만약 그래도 재미없다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나을지도.
2. 아이는 누구? 교사는 누구?
“어떻게 글자를 모를 수가 있나요. 너무 불쌍해요. 정말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칠 거예요.”라며 연민과 동정을 가득 담아 말하는 선생님을 잘 믿지 않는다. 선의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실망도 클 확률이 높으니까.
폭력적인, 산만한, 답답한 건 물론이고, 가끔은 약아빠질 대로 약아빠져서 얄미운 게 아이다. 공부는 못해도 아이답게 순진하고 착했으면 좋겠는데, 눈앞의 아이는 결코 그렇지 않다.
‘아이답다.’는 말은 현실에서 없는 낱말 일지 모른다. 아이가 어른과 다른 점은, 나이를 덜 먹고, 경험을 적게 했다는 정도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잘 숨기지 못하고, 유연하고, 변화의 가능성이 높다. 이것 말고는 어른과 다른 게 없다. 게으른 아이, 부지런한 아이, 우울한 아이, 낙천적인 아이, 활발한 아이, 느린 아이, 싹수없는 아이, 화를 못 참는 아이, 뻔뻔한 아이, 잘난 척하는 아이 다 있다.
그러니 제발 아이가 아이답지 못하다고 실망하고, 욕하고 그러지 말자.
그러지 말아야 할 건 참 많다. 그 많은 걸 다 이야기하면 잔소리 대마왕이 될 테니까 딱 한 가지만 더!
어른도 마찬가지고, 아이도 마찬가지고 모든 행동과 성격과 태도에는 이유가 있다. 글자를 모르는 데도, 산만한데도, 난폭한 데도 이유가 있다. 내가 마주한 사람이 성인이 아니라 아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리면 어릴수록 사람은 바뀔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 이유를 생각하면서 희망을 잃지 말자……로 결론을 내리고 싶은데, 이것도 아니다. 사람은 복잡하다. 매우. 아이도 마찬가지다. 행동과 태도와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는 전문가가 비싼 검사를 해도 쉽게 알 수 없다. 그러니 이유가 무엇인지 판정 내리는 대신에,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재밌게 지낼 수 있는지 궁리하는 게 나을 것 같다. 특히 아이의 모든 문제를 ‘가정’의 문제로 규정하고, ‘나 몰라라.’ 식의 태도는 아주 위험하다. 가정 문제니까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건지, 내 책임은 아니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두고 ‘가정’, ‘가정’ 했다가는 당신 스스로가 아무 재미를 못 느낄 거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 있는 가정의 아이가 안 바뀔 텐데 무슨 재미가 생길 수 있을까, 그냥 시간, 시간 때우는 거지 뭐.
아이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하다 보면 아마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당신도, 나도 아이였다. 당신과 나는 어떤 아이였고, 어떤 모습이었는지, 당신과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무엇인지. 얼마나 좋은가? 공짜로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