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들 이야기
3. 역시 방법은 중요해.
별별 방법을 썼다는 게 자랑은 아니다. 자랑을 하려면 ‘그 방법 중에 이런 방법이 최고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불행히도 나는 ‘역시 이게 딱!’이라고 말할 게 없다. 그러니까 ‘자랑’이라기보다는 그냥 ‘소개’ 정도로만 읽어주면 좋겠다.
① ‘한글 공부=쓰기와 읽기’라는 공식 깨기.
이름 쓰기도 중요하고 받아쓰기도 중요하지만, 쓰기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아이를 쓸 수는 있는 데 자기가 뭘 쓰는지 모르는 문맹 상태로 만들기 쉽다. 게다가 쓰기는 팔, 손목, 어깨를 쓰는 지겹고 고된 노동이다. 읽기를 무리하게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띄엄띄엄 읽어도, 자기가 읽은 글자가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아이는 생각보다 많다.
한글 교실에 오는 아이 중 많은 아이들은 기초 언어 환경, 곧 말하기와 듣기가 적절하지 못한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초등학교 1학년이라면 이 정도는 읽고, 이 정도 받아쓰기 등급을 받아야 한다는 기준을 깨야 한다. 듣기와 말하기를 훈련할 수 있도록,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들어주고, 따뜻하게 대답해야 한다.
그림책 듣기, 순서대로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 이야기하기를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 행하는 의례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한 한글 수업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② 모든 감각을 활용하기
적고 보니 무슨 ‘신기한 한글 **’ 광고 문구 같다. 한글 **은 싫지만, 모든 감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건 중요하다. 몸을 구부려서 글자가 되어 보고 찰흙과 과자로 글자를 만드는 건 재미있기도 하지만, 기억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글자를 기억할 때 제일 효과가 높은 방법은 쓰기이다. 다섯 손가락을 이용해 글자를 쓰면서 입으로 글자를 말하는 건 고전적이며, 고전적이기에 적절한 방법이다. 문제는 쓰기가 손가락에 힘도 없는 아이들에게 괴롭다는 사실이다.
연필 대신에 크레파스나 색연필을, 가끔은 매직을 사용하는 게 좋다. 공책도 안 쓰는 게 좋다. 스케치북에, 칠판에, 커다란 전지에 제 마음대로 써 보아야 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 무릇 1학년이라면 칸 공책에 라는 기준은 잊어야 한다. 당신이 마주한 아이가 첫 번째 기준이며 마지막 기준이 되어야 한다.
③ 자신을 자랑할 수 있는 평가
무조건 100점 받아쓰기, 참 잘했어요 도장, 하이파이브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자랑할 수 있도록 고안한 방법이다. 자존감 높이기 같은 어려운 말은 모르겠고,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아이들이 으스댈 수 있으니까 사용한다. 한글 교실 아이들은 이미 자기 네 반에서 밑바닥 받아쓰기 점수에 더듬 더듬 읽기에 창피를 당했다. 한글 교실에 와서까지 자기를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건 수업 실패다.
난 상장도 남발한다. 일 년에 두 번 이상 모든 아이들에게 상장을 준다. 사실 우리 아이들은 상장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지겹고 지겨운 한글 공부를 정규 수업이 아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한 시간 이상 한다는 걸로도, 그 많은 편견과 무시를 견딘다는 이유만으로도 아이들은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④ 실용적인 쓰기와 읽기
글자를 쓰고 읽는 이유는 백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지만 글자 공부가 평생의 벗 책을 가깝게 하기 위해서, 시민의 교양 습득을 위해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문장을 아이들에게 적용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냥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책을 읽고, 기분 좋은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글자를 알아야 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짧은 편지를 써주거나, 서로서로 편지를 쓰게 하는 건 그래서다. 굉장히 실용적인 글자 공부라고, 나는 자부한다. 연애편지를 못 쓰면 안 되니까, 사랑 고백을 읽지 못하면 안 되니까.
적어 놓고 보니 방법이 방법 같지도 않지만, 그래도 방법은 중요하다. 방법 안에 당신과 나의 가치와 태도가 숨어 있으니까, 우리가 어떤 눈으로 인간을 바라보는지 알 수 있으니까.
4. 생각, 생각, 생각!
아이를 만나는 어른이라면 무조건 글을 썼으면 좋겠다. 글은 참 신기하게도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편안한 성찰도 가능하게 한다. 누가 내 문제를 지적하면 무척 기분 나쁘지만, 글을 쓰면서 바라본 자신을 반성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만 그런가?
아무튼 글을 쓰는 게 제일 좋고, 가까운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도 좋고, 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 떠들고 쓴다면 더 좋다. 계속 생각해야 한다. 생각하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니 나는 잘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쉽게 지치고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생각, 생각, 또 생각해야 한다. 누구도 아닌 당신을 위해서.
5. 다시 아이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하지만 세상은 냉정하고, 아이들은 내가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우리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 아이 역시 내가 아닌 타인이라, 내 의도와 무관하게 상처를 받곤 한다. 자기가 너무 힘드니까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전에 아이가 운동회 때 얼마나 서러웠는지 이야기를 들었기에 고민, 고민하다 집까지 같이 같다. 딱 한 번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딱 한 번으로 성이 차지 않았고, 급기야는 한글 교실에 나오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처음부터 원칙대로 데려다주는 게 아니었다.
당신과 나는 유독 인격이 고매한 성인이 아니다. 우리 역시 그냥 사람이라, 마음속 깊은 곳에 각종 상처와 편견을 감추고 있다. 똑똑하고, 말을 잘 듣는, 귀여운 아이가 더 좋다. 어떤 아이는 내 어두운 상처를 건드려서 갈기, 갈기 찢어놓곤 한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특별한 답은 없다. 삶의 다른 일이 그렇듯,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그냥 하는 거다. 그러다 도저히 못 견디면 깨끗하게 포기를 선언해야 한다. 포기했다고 해서 당신이 의지박약이거나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다. 아이도, 당신도, 나도 그냥 사람일 뿐이다.
잔소리 비슷한, 잘난 척 비슷한, 수다는 이제 그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아이를 만나는 일, 지금 바로 내 앞에 마주한 아이와 함께, 저마다 다른 아이와 함께 하는 일. 얼른 빨리 한글 교실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