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민이, 경태, 그리고 모든 이들의 이야기
영민이는 “깡은 ㄱ 몇 개?”라는 질문을 받자마자 깔깔거렸다. 영민이한테는 그게 놀이였다. ㄱ이 두 개라 했다, 네 개라 했다 반복해서 답하더니, 계속 큰 소리로 웃었다. 영민이는 똑똑한 아이였다. 놀이를 할 때면 규칙을 금방 이해하고, 어느 새 변형을 하곤 했다. 똑똑한 아이들이 그러듯, 지는 걸 싫어해서 아이들과 싸우기도 했다. 깡으로는 최고인 여장부 민희도 영민이한테는 항복을 하곤 했다.
저렇게 똑똑한 아이가 왜 한글 교실에 들어왔나 싶었다. 영민이는 공부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한글 교실에서도 놀 때만 눈이 반짝거렸다. 하루는 수업 도중에 벌떡 일어나더니 교실 바닥에 누워버렸다. 자기 잠바를 얼굴에 덮어쓴 채로. 왜 그러냐고 물어도, 일어나라고 해도 꼼짝없이 누워만 있었다. 삼 분이 지났을까. 아이가 잠을 자나 싶어서 잠바를 거뒀더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도대체 왜 우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왜 우냐고 물어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정말 똑똑한 아이였다. 도통 공부할 생각을 안 하는 데도, 영민이는 조금씩 글자를 읽고, 글자를 썼다.
한 번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민희와 은희는 자기들은 엄마가 없다며, 할머니께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민희와 은희는 일부러 슬픈 척을 했다. 엉엉 소리를 냈지만, 눈은 활짝 웃었다. 민희와 은희에게 엄마가 같이 살지 않는 건 창피하거나 슬픈 일이 아니었다. 그냥 그건 당연한 사실이었다.
영민이는 쭈뼛쭈뼛 연필만 만지작거렸다.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그냥 내버려뒀더니, 한 참 있다 뭔가를 끄적댔다.
‘나는 엄마가 싫어. 엄마가 착했으면 좋겠어.’
영민이는 지금도 엄마를 싫어할까?
아이가, 아니 아이를 포함한 어떤 사람이 ‘나는 엄마가 싫어.’라고 말한다면 누구나 당혹스러울 테다. 그러면 안 된다고 훈계를 하는 이도 있고, 말을 한 사람이 무슨 정신적, 윤리적 문제가 있을 거라고 단정 내리는 이도 있을 테다. 나도 놀랬다. 영민이 엄마가 집을 나갔나, 영민이가 맞고 사나,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을 버려도, 자신을 때려도 쉽게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인이 잘못해서 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영민이와 영민이 엄마, 영민이네 집, 영민이 마음속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민이는 자존심도 세고 파워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걸 지니고 있는 아이였다. 그래서 엄마가 싫다고, 착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수도 있다.
아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엄마를, 부모를 미워하면 안 된다는, 엄마를, 부모를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는 명제는 자연적 사실을 넘어서 이데올로기가 된 게 아닐까. 아이들은, 우리는 엄마가 싫다고, 엄마가 착해졌으면 좋겠다고 당당히 말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3학년 경태는 2학년 경태보다 더 심각했다. 받침 글자를 반 정도는 쓰고, 더듬더듬 글자를 읽던 2학년 겨울 방학 경태는 곧잘 웃고, 아이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다. 그런데 3학년 겨울방학 경태는 받침 글자는 다 틀리고, 글자를 읽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시켜도 대답을 하지 않고, 수업 시간 뒷자리에서 혼자 그림을 그렸다.
경태 담임선생님은 다정하고 따뜻했다. 3학년 경태를 한글 교실에 보낸 사람도 담임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경태가 어떻게 지냈는지, 상담 검사 결과가 어땠는지 이야기했다. 무슨 방법을 찾고 싶다고, 경태가 안쓰럽다고,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리고 경태 엄마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방학 특강 전날 경태 엄마에게 전화했다.
“내일부터 특강이에요. 경태 아침에 시간 맞춰서 보내주셨으면 해서요.”
“소용없지 않나요?”
“예?”
“아무리 해도 안 돼요. 걔는 그냥 포기하는 게 나아요.”
“어머님, 경태가 글자를 아예 모르거나 하는 게 아니니까,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요.”
“걔 형은 안 그러는 데 걔는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긴 통화.
경태는 상대방의 눈을 쉽게 마주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눈을 바라보고 곧잘 웃기도 한다. 경태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편안해지면 형이 자꾸 때려서 속상하다고 이야기한다. 경태는 긴 팔 소매를 밑으로 죽죽 내려 입는다. 하지만 아이들과 놀 때는 소매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어머님, 그러니까 겨울 방학 동안 제가 지켜볼게요.”
“그럼, 선생님 내일 보낼게요.”
수업 첫날, 경태 엄마는 경태 손에 아이들 간식거리를 챙겨서 보냈다. 간식거리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나는 경태 엄마가 안쓰러웠다. 어떻게 하다 자기 아들을 포기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걸까, 그 사연을 난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경태 엄마는 결코 좋은 엄마가 아니다. 아이를 방치하고, 아이를 형과 비교하고, 어쩌면 폭력을 행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경태 엄마를 비난하기에, 그이는 너무 지쳐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경태는…….
경태 엄마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엄마가 그럴 수가 있네요. 상상이 안 되네요.”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부모 자격이 없는 사람은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경태 엄마는 경태 엄마가 되었고, 한글을 모르는 경태에게 글자 가르치는 걸 포기하겠다. 다른 이가 믿을 수 없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내가 알고 있는 사례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과 함께 한 이들이 전하는 사례는 더 심각하고, 더 절망적이다. 그 아이들의 부모는 이해할 수 없는 예외적 인간이 아니라, 숨 쉬고, 말하고 잠을 자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이를 방치하고, 학대하는 부모를 이해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의 짐작보다 훨씬 많은 부모가 부모 노릇을 하지 않는다고, 그건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하는 거다.
우리가 자꾸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며, 학대받은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 것이다. ‘이야기해도 소용없어, 세상은 내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아, 나는 이상한 부모가 낳은 괴물이야’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혼자, 가슴 깊은 곳에서 꽁꽁 숨겨놓은 채로 그렇게 살아갈지 모른다.
어떤 구조와 법제가 필요한지, 사회적 인식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이미 많은 시도와 노력이
있고, 또 내가 전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다. 다만 나는 어떤 순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도 내 기억에 오롯이 자리 잡은, 내 안으로 들어왔던 몇 개의 순간들 말이다.
찬빈이가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수업에 안 왔다. 찬빈이는 유난히 창백한 낯빛을 지닌 작은 아이였다. 그날은 유난히 아이들이 서로를 챙기던 날이었다. 지우개도 빌려주고, 누구 예쁘지 하고 칭찬도 하는 날이었다. 햇빛이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겨울이었다.
누군가 찬빈이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옆에서 나도, 나도 그러더니 아이들 모두가 편지를 썼다.
찬빈아, 아프지 마, 얼른 나아, 네가 보고 싶어, 내일 같이 놀자.
다음 날 찬빈이가 아이들 편지를 받고 어떤 표정이었는지 떠오른다. 찬빈이는 활짝 웃었다.
그러니까 우리끼리, 아이들끼리, 약한 이들끼리,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그렇게 챙겨주고 그렇게 위해주고 그렇게 위로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아이들은 알려주었다. 국가가, 어른이, 사회가, 부모가 포기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끼리 살아갈 수 있다.
얘들아, 아프지 마, 얼른 나아, 네가 보고 싶어, 내일 같이 놀자.
<덧붙이는 이야기>
버스 정류장 앞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내 구명조끼 입어.”
2014년 4월 16일 죽어 간 아이들이 나에게 알려주는 말, 내 구명조끼 입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