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준이 이야기
내 앞에 앉은 아이들 여섯 명. 아홉 살 두 명, 열 살 두 명, 열두 살 두 명. 내 손에 들린 그림책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도>, 한 페이지에 서 너 문장이 있는 짧은 그림 동화다.
'아이들은 페르디난도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까, 뻔한 이야기라 지루해할 수도 있어, 화면이 흑백이라 잘 안 보는 거 아닐까.'
머릿속 잡생각을 그대로 두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옛날 스페인에, 어린 황소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름이 페르디난드였어요. 페르디난드와 함께 살고 있던 다른 어린 황소들은 모두 다 달리고, 뛰어오르고, 서로 머리를 받으며 지냈지만, 페르디난드는 그렇지 않았어요. 페르디난드는 그저 조용히 앉아서 꽃향기 맡는 것을 좋아했지요.”
주위가 조용했다. 아이들이 그림책에 집중한다 싶어서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일주일 만에 달려졌어, 역시 그림책은…….'이라고 생각할 때쯤이었다.
“너 애미 애비 없냐?”
“웃기네, 니 애미 애비가 없지?”
“뭐라고! 너 오늘 죽었다. 너 애비 애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홉 살 아이와 열 살 아이와 열두 살 아이가 엉키는데 걸리는 시간은 딱 육십 초면 된다.
나는 고함을 빽 질렀다.
“그만해.”
하지만 아이들은 도통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만하라고. 당장 서로 떨어지라고.”
내 고함 소리는 굉장히 컸다. 남은 아홉 살 아이와 열 살 아이와 열두 살 아이 눈이 동그래졌다.
“빨리 떨어지고 제 자리에 서. 있는 그대로.”
세 아이가 겨우 떨어져서 날 쳐다보거나 땅바닥을 쳐다보거나 옆을 흘겼다. 얼굴은 빨갛고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입에서는 씩씩 소리가 났다.
“도대체 너희들 그런 욕을 어디서…….”
문장의 끝을 완성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다니, 집이나 학교나 옆집이나 모르겠다나 그중 하나겠지. 어디서 배웠는지가 뭐 중요하다고. 뭐가 됐던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애미 애비가 들어가는 욕을 실제로 들은 건 아무래도 태어나서 처음 같다. 잘난 척인가? 내가 그렇게 고고하게 자랐나? 아니, 들었는데 안 들었다고 착각하는 수도 있겠지, 기억이란 사실을 쉽게 왜곡하니까. 아무튼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을 혼내야 했다. 나는 어른이니까.
가끔 듣는 말.
“정말 이상해요. 아이들이 어떻게 저런 욕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젊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저소득 가정 아이들을 만나고 있거나 만나지 않았거나 구별 없이 말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애미, 애비라니! 나도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말도 있다.
“저러니 공부도 못하고, 뭐가 될지 뻔해요.”
놀랍게도 나이 지긋하신 학교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흔히들 이런 편견은 하나 쯤 가지고 있겠지만, 용납이 안 된다. 뭐가 될지 뻔하다니, 미래를 볼 수 있는 신통력이라도 갖고 있는 걸까.
나는 읽고 쓰는 게 힘들어 그림책으로 듣기 연습부터 하는, 애미와 애비를 들먹이는, 앞으로 뭐가 될지 뻔하다는 아홉 살에서 열두 살까지 아이들 셋을 마주하고 입을 열었다.
“무조건 하면 안 되는 욕이야. 나한테 왜냐고 물어보지 마.”
셋 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화가 나서 더 큰 벌을 내리고 싶어. 하지만 공부방은 잘못했을 때 반성문을 쓰기로 했으니까 반성문 쓰자.”
둘은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홉 살 아이가 가만히 있다. 맞다. 반성문을 쓸 정도로 글자를 쓰지 못한다. 내가 대신 써주든 해야겠다.
“길게 이야기 안 할게. 다시 한 번 말해. 절대, 절대 그런 욕은 하는 게 아니야.”
“예.”
셋이 같이 답했다.
차례, 차례 한 사람씩 이야기를 들어야 할 순서다.
먼저 열 살 아이에게 물었다.
“민호 가요. 자꾸 몸을 흔들어서 뭐라고 했더니 뭐라고 막 욕하잖아요.”
“그렇다고 애미 애비 욕을 하는 건 안 돼.”
“민호도 하는데…….”
말을 다 끝내지 않고 내 눈치를 보는 기색이다. 민호가 애비 애비 욕을 한다는 건 처음 공부방 수업 시작을 할 때부터 들었다. 1학년 아이가 어찌나 말을 거치게 하는지, 공부방 선생님들 모두 놀랐다고 한다.
“그래도 안 돼. 그리고 달이 넌 오빠가 네 편도 들어줬잖아. 달이 넌 참 좋겠다.”
열 살 아이가 배시시 웃었다. 웃으니까 참 예쁘다.
다음은 아홉 살 아이.
“욕은 안 돼.”
“나 안 했어요.”
“거짓말은 더 나빠.”
“형도 욕해요.”
“네 형은 깔깔마녀가 모르잖아.”
“형은 나 막 때려요. 욕하고.”
“그래? 다음에 만나면 혼내 줄까? 좋아. 그럼 아주 혼을 내줄께.”
눈을 반짝거리고 콧구멍을 벌룽거리는 걸 보니, 내 기분도 좋아졌다.
“그럼요. 우리 엄마, 아빠도 혼내 줘요. 욕하고 때려요.”
“어떻게 혼내 주지? 큰 주머니에 엄마, 아빠 넣어서 이렇게 흔들고 저렇게 흔들까?”
아홉 살 아이가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혼내 달라고 하면 큰일이지만, 말로야 뭘 못하리. 누가 비교육적이라고 해도 난 모르겠다.
마지막 열두 살.
“애들 나가라고 해줘요.”
뭔가 심각하.
“그래. 애들아. 나가 있어.”
아이가 부르르 떨었다.
“그게요. 제가요.”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제가요. 저랑 달이랑 같이 살잖아요. 우리 엄마, 아빠 이혼해서 아빠랑 안 산다 말이에요. 진짜 나 아빠 없다고요. 그런데 민호가 애비 없다고 하니까 참을 수가 없었다고요.”
아이는 이야기를 다 마친 후에도, 계속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문득 내가 아이만할 때 생각이 났다. 안경을 낀 하얗고 마른 남자아이가 길거리에서 놀려댔다.
“아빠 없데요. 아빠 죽었데요.”
그 남자아이 얼굴이 생생하다. 그 때 아주 혼을 내줬어야 하는데. 물어뜯고 할퀴고 소리를 질렀어야 하는데, 울기만 했으니. 아! 원통하다.
그러니까 열두 살 아이는 애비가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욕과 육체적 응징을 가한 셈이다.
“그런데 혁준아. 민호는 너 아빠 없는 거 모르지?”
“아마 그럴 거예요.”
“있지. 나도 아빠가 없어 봐서 아는데, 너 정말 화날 거야. 그래 혼내 줘야 해. 하지만 민호 엄마나 아빠 중에 한 사람이 없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나와 아이는 오분 가량 더 이야기를 했다. 주로 내가 했다. 설교 비슷한 잔소리였다. 잔소리하는 내내 나는 아이한테 미안해서 더 길게 지루한 잔소리를 널어놓았다.
읽던 책을 마저 읽지 못했다.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도는 스페인의 다른 소들처럼 투우장에 끌려간다. 하지만 투우장에서도 페르디난도는 싸우지 않는다. 구경 온 아가씨가 들고 있는 꽃향기에 취해서, 싸움이든 뭐든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이 좋아하는 코르크나무에서 혼자 꽃향기를 맡고 있다.
난 아이들에게 페르디난도처럼 싸우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너희들이 가만있으면 된다고. 상대방이 욕을 하든, 형과 부모가 널 때리든, 누군가 내 깊은 상처를 도려내든 평화롭게 가만히 있으라고.
물론 난 어른이니까 아이들에게 애비, 애비가 들어가는 욕은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욕을 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조금이라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마흔여덟, 아이들은 아홉 살과 열두 살까지. 나는 교사, 아이들은 제자. 나는 어른, 너희는 아이. 그래서 나는 아이들 마음을 잘 모른다. 시간이 가면 차이는 더 벌어지겠지. 그 어마어마한 차이 때문에 난 영원히 아이들 마음을 모를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교훈을 얻었으니 다행.
첫째, 누구나 엄마, 아빠가 다 있지 않다. 아이도 어른도.
둘째, 애미, 애비 욕을 들으면 화를 내기 전에 잠시 멈추자. 그리고 진짜 나 아빠 없어요라고 이야기하자. 아이든 어른이든 누가 그랬든.
셋째, 무슨 일이 있어도 앞날이 뻔하다는 황당무계한 점을 치지는 말자. 난 아빠 없이도 잘 자랐다. 흠흠.
아이들 역시 모르겠지? 애비 애비 욕 사건 이후 이런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는 내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