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유령이 아니다

한글 교실 모든 아이들 이야기

by 열무샘

누군가 그랬다. “아이들 이야기도 좋은데, 더 전문적인 내용, 정책적 대안 같은 걸 썼으면 좋겠어요.”

나는 “응.”이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딴생각을 했다.

‘싫어. 전문적이고, 정책이고, 대안이고, 다 싫어. 싫다고.’

만으로 오 년 전, 학교 안 비문해 아이들을 만난 후 일, 이 년 동안 여러 기관의 여러 사람을 만났다. 교육청, 시민단체, 초등학교, 성인문해교육기관, 도의회, 모금단체.

그때 나는 십 년 정도 시민단체와 지역 도서관에서 일을 하다가 교육 강사로 직업을 막 바꾼 후였다. 그러니 이런저런 기관이 낯설지 않았고, 아이들 문제를 의논할 사람도 많은 편이었다.



어쩌면 다음 문장부터 흥분할지 모른다. 흥분하지 말자고 다섯 번 말한다. 열 번까지 말할 정도로 흥분을 막아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딱 다섯 번까지.


1. 시민단체 선배가 말했다. 우선 실태 조사가 필요한다고. 내가 가진 자료는 나와 동료 강사가 수업을 진행한 학교 다섯 곳, 그것도 전체 학생 실태 조사가 아니라 수업에 참여한 아이들, 오십 명가량의 아이들 현황이었다.


2. 믿을만한 학교 교사에게 실태 조사가 가능할까요, 물어보았다. 교사는 솔직히 말했다. 아마 불가능할 거예요. 솔직히 말한다면 실태 조사도 그렇고 공론화도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교장도 교육청도 다 싫어할 게 뻔해요. 시민단체에서 문제를 삼으면 일선 교사들만 쪼을 걸요. 별도 예산이나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그리고 유야무야 또 묻힐 거예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냥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내게는 같이 책을 읽고 놀았던 우리 아이들 문제였다.


3. 교육청 교육복지팀 실무자들은 비문해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뭐라도 해보자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교육청의 중심이 아니라 특화 사업의 일부 직원일 뿐이다. 학교에서 복지사가 교사가 아닌 기타 직원인 것처럼. 내가 가진 현황과 자료를 총동원해서 열 개 남짓 학교 교육복지사와 간담회를 가졌다. 예상대로 학교마다 비문해 아이가 한 학년에 다섯 명에서 열 명까지 있었다. 일단 전면적인 실태 조사는 놔두고, 한글 교육을 가능한 많은 학교에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결론은 기존 진행 학교를 제외한 모든 학교에서 한글 교육은 하지 않는 다였다. 결정 주체는 복지사가 아닌 교장 선생님을 포함한 윗분들. 이유는 강사비가 세다. 자원봉사로 가능하다 등등, 가장 현실적이고 야비한 이유가 있었다. 소용도 없는 한글 교육 왜 해, 그 돈으로 효과가 높은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낫지.

한 달 후 교육청 교육복지팀 실무자가 말했다. 선생님, 교육청 지원 사업으로 한글 교육을 진행할 수가 없어요. 그건 공교육 현장 그러니까 개별 학교의 의무로 규정되어 있어서.

간담회 전으로 다시 원위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황은 더 나빠졌다. 이제까지 교육청 지원 사업으로 진행했던 수업을 각 학교 교육복지예산으로 진행해야 한다. 다행히 기존 다섯 개 학교는 모두 한글 수업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한 학교는 예산이 부족하다고, 우선 1학기만 진행하겠다고, 나는 어떻게든 2학기 예산을 마련해보자고 했다.


4. 지역 모금단체 실무자를 만났다. 한글 교육을 해야 하는데, 예산이 모자라니 기금을 마련해보자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이 대목은 짜증스럽다. 분노가 아닌 짜증이다. 짜증.

결론은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모금단체는 일개 강사인 나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그럴싸한 그림을 위해서 교육청, 지역 작은 도서관, 지역대학교, 모금단체 4자 구도를 만들었다. 누군가 기분 나쁘겠다고 말해서 아니라고 했다.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고, 덕분에 나는 사업 제안서를 다른 기관에게 따로따로 서 너 번 써주었다. 왜 아무것도 되지 않았는지 몰라서 짜증이 난다. 아니다. 자존심도 상했나 보다. 난 이제 무슨, 무슨 단체 실무자가 아니라 시간 강사니까 하고 생글거렸지만 아니었나 보다.


5. 평생교육센터를 운영하는 선배 언니가 말했다. 내가 이제까지 들었던 조언 중 가장 적절한 조언이었다. 네 힘으로는 안 돼. 만약 네가 이 문제를 풀려고 하면 지금처럼 살면 안 돼. 다시 시민단체에 들어가야 해. 너와 네 동료들이랑 수업을 열심히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정책은 다수에게 영향을 주는 경우 수립되는 거야. 현실이나 정의 니 어떻든 아동 비문해 문제는 예외적 상황으로 인식되잖아. 언니가 성인 비문해 교육 대표 연락처를 줬다. 뭐라도 도움을 받지 않겠냐고.


6.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한글 공부를 하는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다. 대표라는 직함이 선생님의 얼굴과 모습을 방해할 정도로. 선생님은 내게 선물 두 가지를 주셨다.

첫 번째 선물. 선생님이 말해주셨다. ** 비문해 교육협의회에서 중, 고등학교 비문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어요. ** 협의회는 규모나 실력이나 영향력도 대단해요. 실태 조사 자료도 꽤 확보했고. 토론회 자리에 관내 교장들을 다 불러냈는데, 그 자리에서는 교장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해결하다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토론회 뒤에 모든 학교가, 한 학교도 예외 없이 입을 닦았어요. 정책적 대안 따위는 포기하기로 했다.

두 번째 선물, 책을 주셨다. <학교 속의 문맹자들)(엄훈 지음, 우리 교육). 책을 읽고 나는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느꼈다. 여기만 이런 게 아니구나, 다 그렇구나 하는 절망. 뾰족한 대안도, 교육 방법도 없구나 하는 절망, 하지만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과 같이 하는 이들이 많구나 하는 희망. 이상하게 씁쓸한 희망.


7. <학교 속의 문맹자들>을 쓴 엄훈 선생님께 메일을 썼다. 선생님은 캐나다에 계셨다. 메일을 두 번 받았는데, 결론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자는 거였다. 교육 방법에 관한 연구 성과가 있다면,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자고.


8. 그리고 몇몇의 교사 단체에 메일을 보냈다. 답장을 받지 못했다. 그 단체 중 한 단체가 작년에 학교 안 비문해 아이를 주제로 스토리 펀딩을 했다. 잡지 한 곳에도 기획 기사가 실렸다. 뭔가 기대를 하기에는 지쳤고, 기대를 안 하기에는 우리 아이들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9. 마지막으로 난독증 아이를 위한 조례 제정을 발의한 도의회 의원을 만났다. 의원은 딱 부러지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난독증이 아닌 학교 안 문맹자 전체를 위한 조례 제정은 무리가 아니냐는 뉘앙스를 풍겼다. 한글 교육은 공교육이 전담해야 하니, 시나 도에서 지원하기에는 좀 그렇죠. 반박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하는 마음으로 그를 만났을 뿐이다.

헤어지면서 도의원이 날 보고 최용신 선생님 같은 분이라고, 희망을 가지라고 했다. 그날 저녁 펑펑 울었다.


흥분했을까, 흥분하지 않았을까, 흥분할 일일까, 흥분하는 게 맞는 거 아닐까.



작년, 우연히 한글 교육 강사를 뽑는 학교가 몇 군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사비도 터무니없이 작지 않았다. 채용된 교육 강사들이 수업을 너무 힘들어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아이들은 이미 글자를 모른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는 중이니까, 남들이 다 떼고 오는 한글을 모른다는 건 그 아이와 그 아이 가정에 상처가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니까. 강사들은 상처받은 아이들과 함께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들이 한글 공부를 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달라진 게 없기도 했다. 한 달 전에 오래전에 만났던 학교 교육 복지사에게 전화가 왔다. 한글 수업을 해야 하는데 교장이 허락을 할지 모르겠어요, 교육적 효과가 있겠냐고 하네요. 그래도 예산 올려보려고요.


우리 아이들이 유령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분명히 존재하는 비문해 아동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공식적으로 말한다. 우리 학교에는 비문해 아동이 없습니다. 있다면 비문해 아동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지능이 떨어지거나 난독증인 경우입니다.

있는데 없는 존재, 유령. 우리 아이들은 유령이 아니라 사람이다.


8반 담임 선생님은 좋은 분이다. 만날 때마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과제 조금만 내주세요. 아이 마음을 헤아려 주세요라고 부탁한다. 학기 말 선생님이 찾아왔다.

“어떻게 하죠? 한글 미 해독자라고 올려야 하나요?”

한글 미 해독자를 판별하는 문제지를 보았다. 받침 글자를 틀리지 맞춰야 한다. 한글 교실에는 이 정도 받침 글자를 틀리는 아이가 대다수다.

“한글 미 해독자라고 올리면 별도 지원이 있나요?”

선생님이 내 질문을 받더니 어색하게 웃는다.

“지원이라기보다는 담임선생님이 파악하는 거죠. 뭐.”

아이가 2학년이 되면 한글 수업 대상자가 아니다. 8반 선생님처럼 좋은 분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학교에는 업무에 치였거나, 지나치게 노회 하거나, 서투른 교사가 많다. 여러 가지 여건과 교육적 효과, 아이의 상처까지 감안할 때, 지원이 없는 파악에 어떤 장점이 있을까?

“다른 반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저한테 아무도 안 물어보셨는데.”

“대부분 해독했다고 올리나 봐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짐작이 된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선생님의 평가 점수만 낮아질 뿐이다. 나는 말했다.

“선생님, 그냥 해독했다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나 역시 우리 아이들을 유령 취급했을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지금도 같은 상황이라면 같은 결론을 내릴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유령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유령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제발 우리 아이들 하나, 하나를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 그런데 누구에게 부탁해야 하나. 우리 아이들은 유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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