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과 검정
a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 엄마가 보고 싶어. 너무 무서워. a는 누구보다 덩치가 크고, 누구보다 거친 아이다. a의 엄마는 살뜰한 사람이 아니다. 무심이 지나쳐서 답답할 때도 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하겠구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고 a를 배웅했다. a가 갑자기 나 배고파. 먹을 것 좀 사줘라고 말했다. 허겁지겁 옷을 입고 지갑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a가 먼 곳으로 이사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었다. 내 몫은 여기까지이므로, 가만히 있었다. 이성은 명료한 판단으로 작동했지만, 감정은 그러지 못했다. 종종 그러하듯이, 속이 들끓었다. 복잡하고 어지럽고 분주했다.
파랑은 그 많은 빛 중에서, 진동수가 가장 크다. 기체 분자와 충돌하면서 위아래로 격렬하게 흔들리는 파란빛을 상상해본다. 흔들리는 만큼, 빛은 다시 분출되고 뿔뿔이 흩어진다. 우리의 상상보다 더 큰 에너지가 발생하고 필요하다.
처음 빛에 관한 정보를 얻었던 고등학교 시기, 붉은빛보다 푸른빛의 에너지가 더 크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했다. 물리는 과학적 사실을 알려주었지만, 직관은 반대였다. 그때 나는 10대였다. 20대, 30대, 40대의 내게 빛과 색과 에너지는 생활과 일상과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으므로, 푸른빛의 진동수와 힘에 관해서 어떤 의식도 없었다. 다시 과학책을 뒤적이는 나는 또 놀란다. 푸른빛이 가장 힘이 세다고, 어떻게 하고.
균일하고 단일한 환경에서 푸른빛은 서로 상쇄되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의 상태가 된다. 제로는 없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의 힘과 마이너스의 힘이 같은 크기라 제로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지구의 대기를 벗어난 우주가 그렇다. 우주의 하늘은 파랑이 아니라 검정이 가깝다.
쪽빛을 만드는 염색 예술가들은 종종 파랑이 더 진하고 진해져서, 꽉 차 버려서 이제 파랑 아닌 것이 될 때까지를 갈망하곤 하는데, 그 갈망의 결과는 검정과 비슷하다고 한다. 빛과 색은 한 곳에서 출발했으니, 우주와 검정과 검정이 돼버린 푸른빛도 닮았나 보다.
a의 이사가 아니더라도, 종종 내 속은 들끓고 복잡하고 어지럽고 분주하다. 하지만 검정에 가까웠던 적은 없었다. 어쩐지 내 세계에 감사를 표시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하늘은 파란색일까? 고맙게도 지구의 대기가 균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에 존재하는 기체 분자는 저마다 제멋대로 움직인다. 결코 균일한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상태, 늘 불균형의 상태다.
아이들이랑 있다 보면 하늘을 자주 보게 된다. 아이의 눈은 어른보다 더 자주 위로 향한다. 나는 하늘을 사랑한다. 사랑 맞다. 그 푸른 하늘은 어지러움의 결과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부딪히고 깨지고 흩어지는 푸른빛을 다시 상상한다. 역시, 복잡한 속과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과 또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는 내 인생에 고마워해야 할 듯. 푸른 하늘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