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가 나팔꽃을 피워볼래 라고 이야기한다. 나팔꽃. 지우는 꽃을 좋아했다. 아니 지우 덕분에 나는 꽃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100일이 되지 않았던 아이는 많이 울고 잠을 좀처럼 자지 않는 아기였다. 그때 우리 집은 반 지하였다. 초여름 해가 저물고 아이를 씻긴 후 밖으로 나갔다. 내 가슴에 안긴 아이는 놀이터나 골목에 핀 꽃을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고,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예쁘지, 엄마는 이 꽃이 예뻐,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하고 말을 건네면 아이는 나를 보고 방긋 웃는 것 같기도 했고, 세상의 비의를 알아차린 얼굴을 하다 잠이 들었다.
# 조그만 아이 손을 잡고 걸을 때쯤이었다. 봄이 왔다는 걸 알려주는 건 바닥에 핀 작은 꽃이었다. 아이가 꽃을 골몰히 쳐다보는 걸 보면서, 나도 꽃을 보았다. 민들레와 제비꽃과 노란 양지꽃과 또 작은 흰 꽃을.
# 나의 엄마, 아이의 바다 할머니는 아이가 “할머니, 우리 오솔길로 산책 가자.”는 말에 감동해서 행복해했다.
# 아파트 1층이었다. 베란다 바로 밑의 화단 덕분에 아이와 나는 즐거웠다. 나팔꽃과 강낭콩 씨앗을 화단에 심었다. 나팔꽃과 강낭콩은 화분이 아닌 화단의 흙 힘으로 무럭무럭 자랐고, 줄기는 우리 집 베란다 위를 감으며 올라왔다. 아침이면 나팔꽃을 보면서 손뼉을 치고, 강낭콩 콩깍지를 따다 종종 하게 자리 잡은 콩을 함께 보았다. 콩을 밀가루에 섞어서 찜기에 넣고 빵을 만들었다. 공동육아를 하겠다며 안산으로 이사 왔을 때, 우리 집은 꽃을 심을 수 없는 낡은 빌라였다. 아이는 속상하다고 울면서, 원래 집으로 가고 싶다면서, 발로 벽을 탕탕 쳤다.
# 아이의 바다 할머니인 나의 엄마는 꽃을 좋아한다. 나와 달리 화분에다가도 꽃을 잘 키우셨다. 아이가 일곱 살 때 선물한 작은 선인장은 아이처럼 무럭무럭 자라서 몇 번의 분갈이를 걸쳐 지금도 씩씩한 모습을 하고 있다.
# 누구나 그러하듯이 아이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나와 소원해졌고, 그 소원해짐은 아이의 아빠인 나의 남편과 내 사이의 불화에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다. 아이는 자신이 어릴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스물다섯이라는 놀라운 나이가 되었다. 신기하다. 이제 아이가 아닌 청년이 된 지우는 연애를 할 때마다, 자신의 어린 모습을 기억하고, 툭툭 말을 꺼낸다. 그때 사진 없어, 그때 내가 그랬어라고 묻는다.
# 아이는 1997년 생, 7년 전 4월 16일의 그 아이들과 동갑이다. 한 달을 사이에 두고 아이는 그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었다.
# 마실 옆에 가득한 노란 수선화. 화분을 가져갈까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만약 내가 거 수선화를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면, 나는 못 견딜 것 같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란 수선화만큼은 죽이거나 병에 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 노모가 전화를 했다. 나는 a가 말한 나팔꽃 씨앗을 사러 동네 꽃 집 앞에 있었다. 향이 좋고 잘 큰다는 치자 꽃 모종을 사고, 몇 년을 그대로 둔 화분 몇 개를 분갈이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노모가 전화로 말했다. 그래, 꽃도 젊을 때 볼 수 있더라, 실컷 보고 좋아하고 키워라 하고.
# 꽃은 언제나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