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눈 혹은 눈 말고도

by 열무샘

<우리 모두의 눈 혹은 눈 말고도>

빨간 셀로판지 밑에서 검은색으로 보이는 글자가 뭐야?

파랑, 보라, 난 없는데, 초록, 없어, 없어.

앗 싸하다 이런 감각이 오면 주의해야 한다. 이 느낌은 내가 허둥지둥할 수 있다는 예보다. 아무것도 안 변했다는 아이한테 좀 더 어두운 곳으로 이동하라고, 그래도 안 변했다고 해서 내가 아이 상자를 보았다. 눈을 요렇게 가까이해서. 변했는데 분명히 변했는데. 아이는 아니라고 한다.

우리 실험은 이럴 때가 많다. 쿠킹포일이 구겨지지 않았을 때 내 얼굴이 보이는 간단한 사실도 복잡하다. 구겨져서 안 보였네. 봐 여기 보이잖아, 어디 어디 나는 안 보이는데, 시끄럽다.

나는 안다. 실험을 하기 전에 결과를 알고, 그 실험의 원리를 알고 있다. 그러니 대부분 현상은 말끔히 정리된다. 초록이 검정으로 변했잖아, 쿠킹포일이 구겨지면 안 보이잖아.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우선은 변수를 줄여야 한다. 가능한 실험 조건에 맞추어야 한다. 상자 속에 검정 종이를 꼼꼼히 붙이고, 적당한 굵기로 그림을 그린다.

그래도 그렇게 해도

눈이 다르다.

아버지는 색맹이었다고 한다. 신호등 색을 다른 사람과 다르게 인식했던 아버지가 횡단보도 앞에서 매번 어떤 느낌이었을까? 내가 길렀던 강아지들을 떠올린다. 이제는 하늘나라로 떠난 두 강아지는 세계를 흑백으로만 보았다. 산책을 나가면 킁킁대고 좋아하던 풀이 강아지에게는 초록색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이는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보인 다하더라도, 아버지와 강아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같은 사물을 똑 같이 바라보지 않는다.
시각뿐일까? 청각도 후각도 무엇보다 촉각은 당신과 내가 철저하게 다르고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당연한데 왜 자꾸 까먹는 걸까?

실험을 마치고 할 일이 많았다. 아이들은 보는 것뿐 아니라, 다른 것도 다 다르다. 다른 아이들을 하나씩 둘씩 불러서 잔소리를 하거나 반사가 어쩌고 이야기를 했다.

우리 모두의 눈과 눈 말고도 다른 모든 것을 떠올린다. 어쩌면 이 다름이 살아감의 한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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