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36. 한 끼의 위로

그가 베풀었던 건 끼니만이 아니었나 봅니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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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었니?"라는 인사를 꽤나 좋아하는 편이야. 그 밥 한끼를 나누는 시간과 밥이 나오기까지의 기다림동안 나누게 되는 대화, 한 쪽이 밥을 씹는동안 다른 쪽이 우수수 뱉어내는 이야기들 그리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주고 받는 시선들이 얼마나 따뜻하고도 정겨운지를 너무나도 잘 아니까 말이지. 특이하게도 오랫동안 외지 생활을 했던 나에게는 외로움이 곧 배고픔처럼 느껴지던 시간들이 무척이나 길었어. 그래서였을까, 나에겐 밥 먹었냐는 인사가 세상 그 어떤 위로보다 따뜻하게 느껴지곤 하더라고. 섣부른 백 개의 위로보다도 말이야. 처음으로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해외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어. 주머니에 변변찮은 여유도 없던 우리가 그럴 수 있었던 건 몇 년간 모아둔 곗돈이 있었고 결혼을 앞둔 친구의 마지막 자유 여행이라는 명목이 있었기 때문이었지. 한국에서 떠나는 너희들과 호주에서 떠나는 나의 비행편은 달랐어. 3박 5일의 길지 않은 시간동안 주머니가 가벼웠던 나는 가장 저렴한 항공사를 이용해 쿠알라룸푸르에서 경유를 할 예정이었고 다음 비행편을 기다리는 10시간동안 나는 공항의 작은 벤치에 기대 어설픈 잠을 잠시 청해보리라 생각하고 있었지. 퍼스에서 쿠알라룸푸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값조차 아끼려던 나는 옆 좌석의 아저씨가 풍기는 음식 냄새를 잊으려 가방 한 켠에 준비해둔 비스켓을 입 안 가득 밀어넣고 있었어. 물 한 모금 없이 비스켓을 우물거리며 여행이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갈 친구들에게 보낼 편지를 한가득 써내려가면서 말이지. 문득 코 끝이 찡해지던 건 목이 메여서 였는지 혹은 여행에 대한 믿기지 않음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 창 밖의 칠흙같은 어둠을 보기 위해 문득 옆자리로 시선을 옮기면서부터 나는 아빠 나이 즈음 되어보이는 신사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 아직 끝나지 않은 호주로의 여정과 그 여정 속에서 잠시 가지게 된 또 다른 여정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내 경유 시간을 묻고선 함께 시내로 나가 잠시라도 당신의 집에서 쉬길 권했지. 나는 정중히 거절했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따라가는 일에는 언제나 알 수 없는 위험이 있는 법이니 말이야. 그러나 그는 다시 나에게 따뜻한 저녁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어. 이번에도 거절할 수 없었던 건 친절을 베푸는 사람의 마음을 민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첫번째 였고, 나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그의 깊은 눈이 진심을 말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 그는 공항에 당신을 마중나온 부인과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했어. 그리고 나는 그와 함께 공항의 일식집에 들어가 따뜻한 우동을 한 그릇씩 나눴지. 아마 당신은 배가 고프지 않았을테지만 비행을 하는 내내 비스켓으로 배를 채우던 나의 옆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을 거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 오랜 시간 비어있던 배에 따뜻한 음식이 채워지던 기분은, 낯선이와 끼니를 나누던 그 시간의 묘한 온기는 오래고 잊을 수 없는 무엇이 되었지.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고 하던 나에게 그는 우동을 계산하고 스타벅스 커피 한잔정도는 마실 수 있는 돈이라며 태어나서 처음 보는 화폐와 동전들을 두 손에 쥐어주고 떠났어.


언젠가 나도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여행을 하며 조금은 지쳐 있을 여행자에게 따뜻한 끼니를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낯선 나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그의 마음이 공항을 갈 때 탈 때마다 잊지 않고 생각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언젠가 당신의 아이가 긴 여정을 떠나고 그 길 위에서 우연히 나를 만나 따뜻한 한끼의 식사를 나누게 된다면, 그리고 아이의 여정이 끝나고 나와 끼니를 나눈 이야기를 당신에게 전한다면 그때 즈음 당신은 얼마나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지 나는 가끔 상상하곤 해. 당신이 나에게 나눠주었던 것은 한 끼의 식사가 아니라 나비효과나 카르마로 불러도 좋은 무엇이었다고 나는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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