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은 더할 나위 없이 귀했다.
길의 끝은 작은 소실점이 되어 아득하게 멀어지고 우리는 아무리 달려도 그 끝을 잡을 수가 없었다. 끝없는 길의 매력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 곳을 빠져나올 수 없음을 삶을 통해 증명하는 중이었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을 때 시동을 건 차는 꼬박 7시간을 쉼없이 달렸고 어느새 800km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도심을 벗어나며 발갛게 드러난 수풀은 황량한 도로를 달릴 수록 점점 더 키가 낮아지고 있었고 이따금 붉은 살갛이 듬성듬성 드러났다. 같은 듯 보이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조금씩 다른 풍경을 담고 있는 길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은 이 곳에서야 비로소 가능할 거라고, 그런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던 몇몇 지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이 지루해 질 때 즈음 만나게 되는 맞은 편 도로의 또 다른 차량과 손을 들어 안부를 주고 받는 일은 무척이나 생소하고도 신나는 일이었는데 때론 나만큼이나 즐거워 보이는 장거리 여행자와 손을 흔들고선 오랫동안 콧노래를 부르곤 했다. 몇 번의 반복되는 노래와 같은 생각, 손을 흔드는 일 등이 귀찮아질 무렵 마주하게 되는 로드하우스는 장거리 여행자들에겐 없어서는 안될 장소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휴게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300km, 500km를 달려야 비로소 등장하는 작은 로드하우스는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그런 곳이었다. 계기판 위로 빨간 경고등을 보내는 성난 주유 표시등을 위로하기에도, 급한 볼일을 처리하기 위한 여행자에게도 그리고 출출한 배를 채워주기에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 도착한 오버랜더 로드하우스의 석양은 배고픔과 추위를 잊게하기에 충분했다. 급한 볼일을 끝낸 후 로드하우스 한 켠에 차를 세워 컵라면이 익길 기다리는동안 외로이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보며 외로운 존재는 모두 다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몇 번을 생각했다. 뉘엇뉘엇 저물어가는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외로워진 길을 바라보며 내가 달려온 길과 앞으로 다시 나아가야할 길을 몇 번이나 고개를 돌리며 바라보았다. 잠시 멈춰서야만 내가 달려온 길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은 인생과도 무척이나 닮았다. 때론 그 외로움의 시간을 걸어 이 곳까지 온 내 자신에 대한 연민이 코 끝을 뜨겁게 만들었다. 야생동물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밤 시간에는 커다란 덤프트럭만이 이따금 이 도로를 지날 것이다. 고요한 시간으로 접어들어가는 그 길목에서 그들의 외로움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 그 것은 여행자만이 가능한 것일거라고 몇 번이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안이 없어지는 것보다 감미로운 불안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신이 깨어 있을수록 긴장의 칼은 날카로워질 테고요. 불안이 커지면 감정의 깊이도 커질테니, 불안을 완전히 버리지도 못할 겁니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는 불안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불안의 축복으로 감성의 깊이를 얻었으니까요
'당신이라는 안정제' 중에서 / 김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