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barri NationalPark
서호주 퍼스에서 하루를 꼬박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칼바리 국립공원은 로드트립을 처음 떠나는 입문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이다. 달리는 중에 문제가 생기면 어렵지 않게 지나는 차량을 만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멀지 않은 곳에 대도시가 있어 숙소와 식량 조달을 쉽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칼바리 국립공원은 첫 여행 이후 한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만큼 다녀왔지만 갈 때마다,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곳이었다. 오프로드에 울퉁불퉁한 흙먼지 길 뿐이었던 곳이 이젠 말끔한 도로와 인도가 되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지만 오래지 않아 마침내 만나게 되는 그 농염한 장소의 유혹은 누구든 쉽게 헤어나올 수 없다.
칼바리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금의 오프로드를 달려야 했다. 우기 혹은 폭우 이후에는 일시적으로 국립공원 방문이 통제 되기도 하는데 호주라는 나라에서는 그 모든 선택의 책임은 본인에게 달려있다. 자연의 훼손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으로 해둔 안전장치는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면 우스울 정도이지만 이 곳 호주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런 작은 부분들을 통해 본인의 책임과 자유에 대한 경각심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국가가 지켜주어야 하는 자유와 안전 그리고 본인이 지켜야하는 권리와 책임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지는 순간들이었다.
백미러로 우리가 지나며 만들어낸 흙먼지들을 바라본다. 내가 만들어 낸 소음이나 장면들이 행여나 뒤따르는 누군가에게 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꾸만 뒤를 바라보게 된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그 누구도 길 위에 없다.
시간의 흐름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협곡의 나이테를 바라보다보면 과연 이 한 겹의 역사가 쌓이는 동안 나라는 존재는 무슨 일을 해내고 또 이름을 남기게 되는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고작 이 한 겹의 세월도 채 못 살고 흩어지는 삶의 이유에 대해 자꾸만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 밖에 없었다. 몇 천 번 아니 그 이상의 건기와 우기를 견디며 아주 강하고 단단한 부분만이 남아 그 시간의 흔적을 우리에게 내보이고 있는데 그 것은 아주 뜨거운 무엇이어서 그 시간 앞에서는 아무도 크게 웃을 수 없었다. 황량하게 말라 붙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강가와 상상을 초월한 뜨거움에 작동을 멈춰버린 핸드폰 그리고 한 방울의 물기까지 얻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드는 수만마리의 파리는 여행을 힘들게 하는 무엇이었지만 서호주의 여행은 그 무엇도 공짜로 얻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듯 했다.
'자연이 만들어낸 창문' 이라는 칼바리의 주요 명소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길이 말끔히 닦인 이후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곤 하는데 시간의 지층 사이로 내려다보는 협곡의 모습이 장관이다. 그래서 이 뷰포인트에서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서는 눈치 싸움이 필요하다. 몇 해 전만해도 꽤나 조용했던 장소였는데 어느 순간 늘어난 중국인 관광객들로 깊은 여행의 정서를 느끼는 일은 조금 어려워졌다.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나홀로 로드트리퍼들만 군중의 흐름에서 벗어나 '진짜 마주해야 할 것'들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 중의 외로움은 여행자의 배낭 주머니 한켠에 담겨 작은 틈마다 여행자의 곁을 지키곤 했지만 난 그 외로움이 언제까지고 나의 또 그의 곁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모습이 바뀌어 가는 이 네이처스 윈도우도 아마 조금씩 닳아 없어져 가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 곳을 그리워하는동안에는 흩어져 없어지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다시 몇 십분을 달려 도착한 혹스헤드는 독수리 머리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끝없이 늘어진 지평선 사이에서 어디부터인지 모르게 생겨난 U자형 강물을 따라 오다보면 붉은 협곡 한 켠에 채 풍화되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는 바위가 바로 혹스헤드인데 이 역시도 다른 존재들에 비해 단단하다는 이유로 몇 천년동안 같은 자리에서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들에게 또 오늘 날의 우리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아마 인간의 단단해지고 싶은 욕망이 이 곳에서 반영되어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먼 길을 달려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닌 그래서 특별한 것들을 보기 위해 떠나고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 나는 그 단단한 바위에 한참을 앉아 나의 말랑말랑한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또 아무리 노력해도 단단해지지 않는 이 마음이 너무 빨리 풍화되어 사라지지 않게 해달라고 그 단단한 바위에 대고 작은 기도를 했다.
그는 이따금 먼 데를 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도 아득해서 그를 빤히 보고 있으면서도 혼자라는 기분이 들곤 했다.
'눈물이 마려워' 중에서 / 문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