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52. 사막 한켠에 묻어둔 마음

여전히 떠올리면 고마운 마음이 있습니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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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울룰루 사진을 볼때면 나를 언제나 반짝이던 눈으로 바라보던 한 아이가 어렵지 않게 떠오르곤 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꿈과 의지가 가득하던 그 친구를 볼 때면 언제나 기특한 마음이었고 고마웠지만 다른 한 켠으로는 미안한 마음이기도 했다. 산티아고를 걷고 호주에서 다시 새로운 시간들을 써내려가겠다는 다짐으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모두가 마다하던 마감을 밥 먹듯이 하던 어느 날부터 그 아이는 마감시간에 맞춰 아이스크림 가게로 찾아오곤 했다. 무거운 테이블을 혼자 옮기거나 대걸레로 바닥을 닦아야 할 때가 오면 팔을 걷어 붙이고 바닥을 닦거나 테이블을 옮겨주고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난 집으로 나를 데려다주기 위해 말이다. 자전거로 사막을 횡단하던 일이나 아웃백 어딘가에서 비박을 하며 올려다본 은하수 이야기를 듣고 눈을 반짝이던 그 아이의 시선 너머로 보이는 감정이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이미 나는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깨닫게 된 그 마음을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처음 시작하는 사랑에는 누구나 미열을 앓게 되는 거라고 어렴풋이 지난 시간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나는 그 그 감정이 어쩌면 그 아이를 많이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꾸만 다가오는 그 아이에게 네가 바라보는 모습은 단지 주사위의 보이는 면에 불과하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던 날, 너의 흔들리는 눈동자 너머로 상처받은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도 역시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아마 너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순백의 사람을 만나는 일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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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해하기 위해 내가 여행한 길을 혼자 떠나 보겠다는 그 아이에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었을까.

모아둔 돈으로 자전거와 텐트를 구매해 호주 남쪽으로 떠난 그 아이는 이따금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일기처럼 남기곤 했다. 뜨거운 사막을 홀로 횡단하면서 해가 지면 급격히 식어버린 사막 위에서 작은 몸을 뉘이고 잠을 자며 이따금은 내가 밉기도, 그립기도 또 보고 싶기도 했을 거라고 조심스레 생각하며 너의 횡단을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아이는 차마 알지 못했겠지만. 까맣고 단단해져 돌아온 그 아이는 굳은 결심을 한 듯 했다. 몇 달의 시간동안 사막을 횡단하면서도 채 지워지지 않는 마음을 꺼내 놓아야 겠다고 말이다. 그는 선명하게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고 내가 참여하는 호주 횡단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으며 나와 함께 동행할 누군가의 연락처를 얻어 차마 동행하지 못한 사막에서 내 생일을 축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한권과 그 간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건내면서. 내 생일 즈음에 닿게 될 지구의 배꼽에 혹시 너의 마음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것들을 모두 묻어달라고 말이다. 사막 어딘가에서 실수로 네가 선물한 책을 잃어버렸을 때, 나는 그 것이 어쩌면 내가 차마 받을 수 없는 마음인 것만 같아서 차를 돌려 그 것을 찾으러 가지 못했다. 결국 그 아이가 부탁했던 소중한 마음은 울룰루가 잘 보이는 언덕 한 켠에 아주 조심스레 묻혔고 나는 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네 마음이 묻히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따금 울룰루의 사진을 볼 때마다 잊은 듯 했던 그 아이의 눈빛을 떠올리곤 한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아 깨끗하다 못해 투명하던 눈빛을 말이다. 그 눈은 언제나 '당신은 한번이라도 뜨거운 적이 있었냐'고 물었다. 요즘 같은 날이면 자주 울룰루를 떠올리곤 한다. 내가 받았던 간절하고 진실했던 마음들이 여전히 나를 살아가게 만들고 있다고 오랜만에 안부를 전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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