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호주에 탐닉하는 이유

서호주에서 만날 수 있는 것들에 대하여

by Jessie


“이것이 오스트레일리아의 특징이다. 흥미로운 것으로 가득하지만 너무나 광활하고, 공허하고, 접근하기 어려워 엄청난 뜻밖의 행운이 없다면 그 흥미로운 것을 찾을 수 없다.”


/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중





호주에서 한국에 돌아간 지 3년의 시간이 흘렀고 거짓말처럼 나는 다시 호주의 단골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가 있는 존재를 청춘이라고 부른다면 아마 나는 청춘이라는 이름표를 아주 오랫동안 달고 생활하고 있는 부류의 사람인지도 몰랐다. 멀리 떨어져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는 혹자의 말이 지난 3년 동안 아주 절절하게 피부에 와 닿았다. 나는 오랫동안 호주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혼을 하고 안정적으로 정착해야 하는 삶을 모두가 상상했지만 오히려 곁에 있는 남편은 내가 더 용기를 내 떠날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격려를 해주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나는 호주행 비행기를 탔다. 아마 그의 많은 희생이 없었더라면 나는 다시 이곳에 올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라고 몇 번을 생각하면서 나는 호주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들을 글로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나처럼 아주 오랫동안 호주의 햇살을 그리워할 많은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1. 직업의 무게


내가 처음 호주에 왔을 때는 2012년 무렵이었다. 그 시절은 광산과 해양플랜트 작업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때였기에 어디에서든 형광색의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흔히 블루칼라라고 불리는 직업들에 대해서 내가 지내던 한국에서의 시선과 호주에서의 시선은 확연히 달랐다. 공부를 더 많이 하고 화이트칼라의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해 여전히 동경의 시선을 보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호주에서는 남들이 일하지 않는 시간에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한 시간에 약 $24의 일당을 받으며 정규 업무 시간이 지나서는 (보통 오후 4시까지 일을 한다) 1.5배의 임금을 받고 주말이면 2배의 임금을 받곤 한다. 남들보다 더 많은 체력과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






2. 맑은 날씨와 행복 지수가 높은 삶


내가 살았던 서호주, 퍼스는 특히 쾌적하고 맑은 날씨로 영국인들에게도 노후를 보내고 싶은 도시로 꼽히는 곳이다. 몇 년 전, 론리플래닛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 순위에도 올랐던 적이 있는 만큼 이 곳은 여유로우며 쾌적하고 도시 전체가 깨끗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1년 중 260일 이상이 맑은 덕분에 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친절하다. 날씨가 인간의 표정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이나 크다는 사실을 이 곳에서 살면서 깨달았다.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타인을 도울만큼 본인들의 마음에 여유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도 자전거를 탈 때 잠시 멈춰 서서 신발을 고쳐 신고 있기라도 하면 지나던 싸이클러들이 멈춰 서서 괜찮은지를 묻곤 했다. 그들의 친절함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날씨와 더불어 풍부한 자원으로 일자리가 많고 부를 축적하기 좋은 환경이 이 곳의 행복지수를 더불어 높였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이따금 말하곤 한다. 금광의 붐이 사그라든지는 오래지만 그 시절의 부는 여전히 남아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









3. 높은 퀄리티의 식재료들


호주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과자를 먹을 돈으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발언은 팩트라는 것!) 슈퍼마켓에서 떨이로 남은 두툼한 스테이크를 고르는 것과 비스킷을 사는 가격은 매우 비슷했다. 뿐만 아니라 맑고 쾌적한 날씨 덕분에 이 곳에서는 통통하고 예쁜 올리브와 향긋한 허브 그리고 유제품이 이 곳을 고급스럽고도 여유로운 풍경 속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했으며 서호주 남부의 비옥한 토양과 청명한 날씨는 호주를 유명한 와인 생산지로 자리매김하게 해 주었다. 바람이 불 때면 물고기 떼가 뛰노는 것처럼 은빛을 반짝이는 올리브나무가 바라보이고 반짝이는 햇살이 가득한 와이너리 정원을 보며 식사를 하는 일이 어렵지 않은 일이다.








4. 저녁이 보장되어있는 삶


호주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주말 아침, 가까운 공원에서 마주한 아빠와 아이의 모습이었다. 엄마의 부재에도 불안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이와 아빠의 모습은 서호주에서 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인데 주중에 육아로 고생한 부인의 작은 휴식을 위해 아빠들은 주말이면 엉성한 점심 도시락을 챙겨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덕분에 아이들은 아빠와 엄마에 대한 사랑을 고루 받으며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가족들과 함께 특별한 연휴를 보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특히나 이런 문화는 업무 시간이 8-4시로 운영되며 더욱 자연스러워졌는데 대부분의 가게들이 4시 이후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밤문화에 특화된 올빼미족들에게는 외로울 수 있겠지만 잔잔하고 느긋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곳의 삶에 만족을 넘어 탐닉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5. 자연과 공존하는 삶


호주에서 살다 보면 자연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존재를 자주 느끼게 된다. 그것은 태어나서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색의 석양을 볼 때라던지 지평선 위로 가득 흩뿌려진 별과 은하수 그리고 마젤란 성운을 아스팔트 위에 누워 올려다볼 때, 또 인류가 처음 생겨났을 때를 연구하는 사람들(NASA 과학자들)의 흔적을 뒤쫓을 때 채워지는 경건한 마음은 빌딩 숲 속에서는 결코 마주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사람들은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원래 호주에서 살아가고 있는 애보리진이라는 이름의 원주민에게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자연을 숭배하고 오래도록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이곳에서는 자주 생각하고 또 감사하게 된다. 특히 해가 질 무렵이면 언제나 삶에 대한 감사를 보내던 습관은 호주에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호주를 찾는 이유는 비자를 받기 어렵지 않은 환경이거니와 노력을 하는 만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호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일부는 비자를 받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호주에서 남은 삶을 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나와 DJ도 한 때 호주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제안받기도 했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부재는 나이를 먹고 언젠가 더 큰 갈증을 가지고 올 것이라 생각했기에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생을 선택했다.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리워할 마음의 고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마음을 먹으면 여행을 떠나올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청춘이 성숙해지는 4년이라는 시간을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보냈다는 사실은 아마 더 나이를 먹어서도 나에게는 호주를 탐닉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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