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의 로드트립
마음 깊이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었다. 두 손에 남겨진 미움 덩어리를 어쩌지 못해 화상을 입고 오래오래 앓으면서 나는 결국 호주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는 나의 결정에 대해 대놓고 비난했고 고개를 젓기도 했다(물론 그 사람이 나와 가까웠다면 나는 그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였겠지만 나를 알지도 못하는 이들은 쉽게 손 끝으로 또 입으로 나에 대한 뒷말을 쏟아냈다.) 이런 상황들 속에서 내가 배운 것은 상처를 받을 사람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과 그 누군가의 결정에 대해 결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움은 한국에 돌아오고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법적인 분쟁을 고려할 만큼 나는 아주 많이 화가 나있었고 내가 직면하게 된 상황들을 용서하지 못했다. 온갖 가시가 돋친 문장들을 글에 실어 전달할 때의 나는 아마 지금까지 내가 마주하지 못했던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만큼 나는 모질고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감정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을 믿게 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미움이 서서히 증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호주를 잊고 살았다. 때론 보지 않으려 애썼고 호주를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점차 멀어졌으며 한국 생활에 적응하려고 매일 발버둥을 쳤다. 매일 바쁘게 살아가는 직장인이 되었지만 매일 침대에서 눈을 뜨며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는 동안에는 매일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이 지하철에 나와 함께 타고 있는 사람들은 매일 어떤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있는 걸까?'하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나는 그제야 애증의 감정이 남아있는 호주를 내가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남편과 함께 소주를 기울이면서 였을 것이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네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호주에 있는 시간이라는 걸 잘 알아. 네가 가진 감정이 무엇인지 다녀와. 내가 널 응원해줄 테니까"
바쁘게 노를 젓고 있지만 나의 배는 목적지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열심히 젓고 있던 노를 놓아 버리면 가라앉아버릴 것만 같아 나는 노 젓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남편의 냉정하고도 아픈 조언을 듣고 비로소 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부장님께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부장님은 호주에 다시 가야겠다는 나에게 나의 생각과 결정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조금 더 생각해보라는 답을 던지셨다. 이상하게도 부장님의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나에게 이상한 쾌감을 남겼다. 이제야 비로소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쾌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