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보니 괜찮았어요

사직서가 2주의 휴가가 되어 돌아왔을 때

by Jessie


사직서가 2주의 휴가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내 사직서를 휴가로 대범하게 바꿔주신 부장님은 내가 휴가를 가 있는 동안 사표를 내셨고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도 모두 회사를 떠나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KakaoTalk_20190208_095959362.jpg


하고 싶은 일의 실체를 찾아 호주에 다녀왔다. 그저 막연한 동경이나 그리움 같은 것이 아니라 사실은 트라우마에 쌓여 계속 나락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누군가를 위로해주기 위함이 더 컸지만 말이다. 이따금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그 누군가를 나는 오랫동안 미워했다. 폭언을 하거나 이따금 와인이 얼굴 위로 쏟아질 때 그리고 그보다 더한 일들이 나 역시도 상처로 남아 호주에 다시 가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야 했다. 호주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또 그와 관련된 단어들을 멀리 하기 위해 눈을 감고 귀를 닫았으며 이내 호주와 관련된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트라우마와 싸우며 결혼식장에 들어온 그 누군가를 보았을 때 그리고 그가 덤덤하게 누군가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일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어 돌아오게 될지 몰랐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나보다 한참 더 나이를 먹은 어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말았다. 사실 나에게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본 일이 전무했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어리다는 이유로 들어가 보지 못했고 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비행기 삯이 없어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런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그저 '함께 있어주는 일'뿐이었다. 함께 그 사막을 횡단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아주 작은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 같은 것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말도 안 되는 장비들로 시작했던 로드트립이 이제는 얼추 그럴싸한 모습이 되기까지 함께 고생했던 추억이 우리에겐 존재했으니 말이다. 한참 동안이나 망설이던 나의 등을 밀어주던 건 남편이었다.









IMG_9414.JPG Fremantle, Western Australia


"다녀와.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호주였잖아."



그의 한 마디가 나에게 나비효과가 되어 사막으로 가는 티켓과 용기 그리고 생존에 필요한 짐을 꾸리게 만든 것처럼 나도 그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배낭 한편에 집어넣었다. 캐리어를 끌며 호주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제야 내가 그때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이 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창 여름이 저물어가는 한국과는 180도 다른 늦겨울의 바람을 뺨으로 맞고 있으니 습관처럼 주문하던 따뜻한 카푸치노가 그리워졌다. 시나몬 파우더가 아닌 초코 파우더가 올라가는 호주의 카푸치노는 내가 호주에서 지내던 4년 동안 가장 큰 위로가 되어준 존재였으니 말이다. 맛있고 예쁜 카페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좋아하던 나는 개인적인 인연으로 아는 사람의 카페 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그 시절의 반갑고 소중한 추억들을 따라 퍼스와 프리멘틀을 여행하는 일은 나에게는 무척이나 설레고 또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일이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는 잔디밭에 앉아 온통 행복하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 너무나도 좋아하던 카페에서 언제나처럼 먹던 초코칩 머핀과 카푸치노를 먹으며 그저 그렇게 오래오래 시간을 보내는 일. 그것만으로도 호주에 돌아와야 할 이유의 5할은 충족되었노라고 나는 굳이 펜을 꺼내들고 메모지에 작은 일기를 남겼다.









IMG_9408.JPG Fremantle, Western Australia

카페에서 오래오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자리를 옮겨 프리멘틀의 잔디밭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쏟아져나 나온 알록달록한 청춘들이 프리멘틀 곳곳에서 젊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침 브런치 이후 점심은 머핀과 커피로 대신했지만 이상하게도 늦은 오후가 되기까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감정의 허기가 채워진 덕분일 것이다. 나를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을 그에게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낸 공간들을 하나하나 담아 사진을 보냈다. 우리가 함께 왔던 카페, 우리가 함께 앉아있던 잔디밭, 언젠가 같은 시야에 들어왔던 노포크 나무들.


우리에겐 너무 많은 추억이 남아있는 호주의 서쪽, 영국인들이 정착을 시작했던 프리멘틀 항구도시에서 나는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렸다. 이젠 떠나갔거나 혹은 잊혀진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나만큼이나 이 곳을 그리워할 사람들을 대신해 가끔 미칠 듯이 그리워지는 곳이라면 눈 꼭 감고 당신을 위해 떠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밤의 공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