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54. 나의 Pam할머니께

그녀는 나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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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잘 계시죠?


매주 아이스크림 가게에 와주시던 할머니를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리워 하고 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에 가기 위해 일주일 내내 일을 하던 제가 할머니와 얼굴을 조금씩 익히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어요. 매번 똑같이 전화로 초콜릿칩 쿠키도우 3통, 쿠키앤 크림 3통, 그린티 1통, 스트로베리 치즈 케이크 1통을 주문 하시고 몇 시간 후에 아이스크림을 들러 오시던 할머니께 “아이스크림을 정말 좋아하시나봐요” 제가 물었던 게 우리의 처음 이었죠. 매주 사가시던 그 아이스크림들은 할머니의 것이 아니라 마음도 몸도 모두 아팠던 할머니의 딸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씀 하셨을 때 저는 어떤 위로를 드려야 할 지 몰라 아주 많이 망설였던 것 같아요. 시력이 약해진 이유로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서 할머니가 사다 주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하던 할머니의 딸을 위해 아이스크림 뚜껑 위에 편지를 써서 보내던 몇 개월동안 우리는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조금씩 가까운 친구가 되어 갔었죠.


병명이 무엇이냐 여쭤 보았을 때 할머니가 전해주신 쪽지 위에 쓰여진 단어들은 제가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지만 저는 그 쪽지를 건내 받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어요. 그것이 할머니를 위로할 수 있는 나의 노력이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제가 이해하지 못한 줄 알고 계셨던 것만 같아요. 낯선 영어 단어 아래로 삐뚤빼뚤하게 적힌 어설픈 한국어는 할머니의 딸이 남겨둔 단어라고 했어요. “폭식증과 거식증”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이름과 그에 덧붙여진 우울증과 시력 약화 같은 단어들은 각자로서도 너무나 무거운 의미를 지닌 것이었지만 함께 모이면 한 사람의 삶을 망가뜨리고 만다는 것을 깨달으며 저는 제가 마주한 일상이 큰 감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 앞에 놓여진 분에 넘치는 감사를 그녀에게 어떻게든 나눠주는 것이 제 임무이자 역할이라고 저는 오래 생각했어요. 아이스크림 뚜껑에 써내려간 어설픈 편지들을 모으면 아마 꽤 많은 문장들이 되고 그것은 작게나마 웃을 수 있는 순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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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가 끝나갈 무렵, 떠남과 안녕을 앞두고 저는 당신의 집에 초대 받아 점심을 함께 할 예정이었죠. 저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목소리로나마 앞으로도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하겠다고 인사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포기 하지 않으면 제가 언젠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디즈니월드와 호주에서 일을 하게 된 것처럼 그녀 역시 기적같은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거라고 말이예요.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꽃다발을 사서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세수를 마치고 나오던 중이었어요. 그러나 집 앞으로 찾아온 당신의 아들 Dave이 저에게 전해준 이야기에는 물기가 가득 했어요. 할머니 당신이 쓰러지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저를 만나기 몇 시간 전 삶을 등졌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나는 할머니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또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그녀의 쾌유와 행복을 빌겠다는 인사를 전할 생각이었는데. 제 손에는 그녀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저에게 전해주고 싶어하던 아름다운 노래 가사와 할머니와 함께 고른 예쁜 목걸이, 몇 날 몇일을 고심하며 직접 만든 상자가 쥐어져 있었어요. 제가 버릇처럼 쓰던 Jessie라는 영어 이름 대신, 이분 이라는 본명을 또박또박 만들어가며 그녀는 생애 처음 만난 글자 앞에서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떠남을 앞두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할머니. 얼굴도 보지 못한 그녀가 아이스크림 통 뚜껑을 깨끗이 닦아 가위로 오려 스크랩 해두었다는 이야기가 자꾸만 생각나서 였던 것 같기도 하고 제가 그녀에게 전해줄 세상이 아직 많이 남아서 이기도 한 것 같아서요.



할머니, 잘 지내시죠?

다음에 우리가 퍼스에서 만나면 그땐 제가 꼭 아이스크림 사드리고 싶어요. 그 날까지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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