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57. 그곳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들

나의 유일한 애증의 나라에 대하여

by Jessie
Broome, Western Australia


여행을 했던 곳은 많았지만 일상을 살았던 나라는 없었기에 나에게 호주는 조금 특별한 곳이었다.

그저 특별하다는 표현에 한정 짓기보다는 그 공간에, 그 나라에, 그곳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에 집착을 하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호주의 끝없는 길 위에 처음 섰던 날을 기억한다. 표지판 위에 적힌 포트 헤들랜드, 와라쿠르나 같은 미지의 도시까지 800킬로미터 혹은 1200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하루를 보내고 있던 공간이 결코 호주의 전부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끝없는 길 위에서 가졌던 감정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고 여행을 직업으로 삼았던 나는 처음의 설렘이 채 증발하기도 전에 무려 124,600킬로미터를 여행했다. 나의 여정을 길게 늘여보면 지구라는 행성의 둘레를 세 바퀴만큼이나 여행한 셈이었다. 끝없이 지루하게 이어지는 길 위에 서면 지평선 끝의 소실점이 내일을 알 수 없는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때 길이 뿜어내는 냄새는 40도를 웃도는 태양에 바싹 구워진 붉은 흙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지만 뜨거움에 바랄 대로 바래버린 식물이 생명을 인증하는 냄새이기도 했다. 여행이 젖은 빨래처럼 늘어질 때면 그 냄새가 지루해 견딜 수 없어지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상으로 돌아와 글을 쓰다가도 그 냄새가 코 끝에 머무는 날이면 나는 여행을 떠나야 함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일상을 살지만 동시에 여행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호주를 언제까지나 동경할 수 있었던 모양이라고 한국으로 돌아오고서도 오랫동안 스스로를 위로하며 지내왔다. 얼마 전 뉴스에서 쉬지 않고 호주를 꺼내 보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장 많은 재해로 부시 파이어를 들어왔던 터였고 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이따금 그러한 광경을 마주하기도 했기에 처음에 나는 호주 산불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하루, 이틀 또 일주일 그리고 이주일 내내 뉴스를 통해 마주하게 된 호주의 고통스러운 모습은 매일 밤 안락한 곳에서 잠드는 내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했다. 인간의 힘으로 거대한 자연재해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인간의 나약함을 일깨워주는 계기이자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연이 내일이라도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남겼다. 이는 적도를 넘어 12시간의 거리에 살고 있던 나에게도 마찬가지여서 호주에 대한 마음이 그리움을 이미 넘어선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비현실적으로 파란 하늘을 뱉어내던 호주가 빠르게 소멸되고 있다는 것은 나에게 자꾸만 조바심을 가지게 했다.


뉴스를 보는 동안 잊고 있던 냄새가 코 끝을 스쳤다. 짙은 그리움의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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