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 #외로움
외로움
명사.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요즘의 나는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할 만큼 건조하게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렇게 건조한 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퇴근 길엔 언제나 창가에 바싹 붙어 창 밖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너무 빠르지도 그렇다고 너무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한강 위를 매끄럽게 달리는 지하철은 가난한 주머니를 가진 이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정을 선물했다. 특히나 그것이 붉은 지평선을 볼 수 있게 되는 시간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운 좋게도 해 질 녘 조금 이른 퇴근을 하게 될 때면 남산 타워 언저리가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아무리 힘들고 지치는 날이라도 그 풍경 앞에서 나는 언제나 아이처럼 마음 한편이 설레곤 했다. 그 풍경은 아무리 건조해진 나라고 하더라도 꼭 잊고 있던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기 때문이었다.
외로움이라는 말로 비로소 표현되는 것
오랫동안 내가 그리워하던 곳은 바로 호주의 넓은 광야 어딘가. 그 황량한 곳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거대하거나 혼자이거나 혹은 둘 다 였다. 그들은 대부분 20억 년의 무수한 시간을 견디며 살거나, 40도를 웃도는 온도를 견디거나 혹은 뼛속까지 시리는 추위를 수 백, 수 천 번 이겨내며 생명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작고 부드러운 존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끝내 견뎌야 하는 것, 나는 그것을 ‘외롭다’는 말로 겨우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외롭다는 말이 아니고서는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거라고 말이다.
언제가 아프리카와 붙어있던 대륙이 흐르고 흘러 호주라는 섬이 되었을 때 그리고 그들의 흔적을 쉽게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는 외로운 존재를 통해서야 비로소 아프리카와 호주가 같은 대륙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와 닮은 무덥고 뜨거운 호주의 북서쪽에서는 비로소 바오밥 나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낡은 대륙의 한 켠에 자리한 채로 잊혀가고 있는 호주의 원주민들에게야 겨우 이름 하나씩을 얻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외로움을 간직한 존재들은 서로를 누구보다도 빨리 알아차리는 법이니까.
잘난 척을 한 죄로 마녀의 마법에 걸려 뿌리째 뽑혀 거꾸로 심겼다는 바오밥 나무의 전설은 그들과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들은 대게 인간의 수명보다 더 긴 시간을 뿌리내려 살기에 우리가 흔히 뱉어내던 ‘외롭다’는 말의 깊이를 우습게 했다. 내가 외롭다는 말을 동경하게 된 것은 아마 그 맘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호주의 북서쪽을 여행하며 마주했던 몇 백 년 된 바오밥 나무를 바라보며 그들이 얼마나 단단하고 아름다운지를 깨달았을 때. 눈 앞에 놓인 거대하고 단단한 그들을 오래 닮아가고 싶어 진 그 날 이후로 나는 몇 번이고 외로운 이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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