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만큼이나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이 사는 곳
광활한 크기의 호주는 한 대륙 안에서도 다양한 기후와 자연 그리고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내가 지냈던 서호주의 주요 도시인 퍼스는 호주의 대표 도시들 중 가장 고립되어 있는 도시이지만(실제로 사람들은 'isolated:고립된' 이라는 표현을 종종 쓰기도 했다) 영국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도 꼽힌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곳의 맑고 화창한 날씨 때문인데 안개가 자주 끼는 영국의 날씨와는 달리 1년 중 약 260일 정도가 맑고 온화하다. 겨울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기 때문에 겨울을 제외한 날들은 푸릇한 잔디와 길게 뻗은 나무들 그리고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다.
맑은 날씨는 이 도시 사람들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야외에서 활동하는 걸 즐겼고 많은 카페와 음식점이 테라스에서 햇살을 즐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점심시간이면 회사 앞 잔디밭에서 햇살을 즐기며 샌드위치나 챙겨온 도시락을 먹고 퇴근 후에는 석양을 보며 동료들과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기울이거나 강변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에서 운동을 한다. 하루 중에도 짬짬이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사람들에게 타인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오후 4시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퇴근을 한다. 아이들은 엄마아빠의 퇴근길에 유치원에서 돌아와 함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는다. 식당이나 상점들도 오후 9시 이후에는 대부분 문을 닫기 때문에 가족들끼리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문화이다. 가족 친화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깨닫는다. 그렇게 어른이 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타인에게 나누거나 배려할 줄 알았고 그런 마음은 호주에 머물렀던 나에게도 자주 와 닿았다.
물론 높은 1인당 GDP(철광석, 금, 다이아몬드, 천연가스 등 다양한 자원 개발로 인해 호주에서도 가장 많은 부를 축적했다. 중국의 철광석 수입이 중단되면서 경제가 많이 어려워졌지만 몇 해전까지만 해도 가장 잘 사는 도시로 꼽혔다)와 그에 따른 높은 수준의 인프라도 사람들의 여유로운 마음에 많은 영향을 미친 터였다.
서글픈 일이 있어 집 앞 공원에서 꺼이꺼이 울던 내 곁을 지켜주던 이름 모를 아주머니, 자전거를 타고 가다너무 힘들어 멈춰 선 내 옆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던 청년,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700킬로미터의 사막을 자전거로 횡단하며 모금 운동을 하던 사람들, 아프리카 아이들을 후원하기 위해 자전거 횡단을 하다 사고가 났던 나에게 아무도 모르게 붕대와 소독약을 챙겨주던 인턴 의사 선생님까지 내가 호주를 여전히 따뜻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매일 늦은 밤까지 회색 건물에서 시간을 보내고 지하철 손잡이에 기대어 하루를 마감하는 우리의 삶이 타인에게 조금은 무딘 이유는 가족들의 안부조차 채 묻지 못한 채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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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일기 @jessie_evenfo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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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철들지 않은 30대.
걷고 마시고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손으로 써 내려가는 것들은 모두 따뜻한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
그래서 여전히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