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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Jan 19. 2021

타인을 오롯이 이해하는 경험

결혼 그 후 



 사람이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데는 언제나 큰 변화가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결혼이 그럴 테고,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들이는 일이, 아이를 낳는 일이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들이 그럴 것이다. 혼자의 선택으로 자기 자신만을 책임지면서 살던 삶에서 다른 누군가를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삶으로 옮겨갈 때는 분명 그동안 바라보던 세상과는 조금 다른 세계가 열리는데 나는 그 순간을 '성장'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결혼, 


 자유롭게 살던 시절 나는 그 누구보다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며 지냈다. 부모님 몰래 야반도주를 해 떠나간 호주에서 가족도 친구의 도움도 없이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자유를 온몸으로 만끽하던 시절이었다. 덕분에 가난은 옵션이었지만 청춘에게 가난쯤은 하나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기에 부끄럽기보다는 잘하고 싶다는 야망이 가득했다. 서호주에서 일을 하면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혼에 닿기까지 우리는 냉정한 현실보단 스스로의 온기에 의지해 서로를 지탱해왔다. 기왕이면 조금 더 넉넉한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수도 없이 들었던 터였지만 이미 정들어버린 사람을 냉정하게 뿌리치기에는 나는 냉정하지 못한 사람이었기에 말이다.



 오래 연애를 하고도 결혼 후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우리도 역시 부족한 주머니 사정으로 인해 동거를 먼저 시작했지만 흔히 들어온 것처럼 결혼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오롯이 둘만 생각하던 시간들에서 서로의 가족을 배려하는 노력이 더해져야 했는데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낳아주신 부모님과 형제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넘쳐나고 거기다 경제적인 문제가 더해지면 결국 그것은 다툼의 불씨가 되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와 함께 사는 삶 외에도 혼자 계시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삶까지 돌봐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었기에 그와의 결혼은 나에겐 더 고민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집에 처음 인사를 갔을 때도 우리 집과는 다른 모습에 돌아와서도 몇 번이나 헤어짐을 고민했다는 것을 아마 그는 모를 것이다. 그가 살아왔던 삶의 고단함이 나에게도 고스란히 찾아올 것만 같아서였다. 자면서 우는 일도 많았고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 선택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고민 끝에 나는 그를 선택했다. 나는 그보다 더 괜찮은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그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가 지는 것이었기에 나는 결혼 후의 삶에 나름 만족하면서 지낸다. 인스타그램 속에 보이는 다른 이들의 넓은 집이나 예쁜 인테리어 혹은 수없이 여행을 하는 삶이 결코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거니와 내가 선택한 삶의 앵글에서 소소하게 만족하며 살아가는 법을 조금씩 익혀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유독 고단 해지는 날이면 처음으로 대출을 받고 12평짜리 전셋집을 계약하던 일을 가끔 떠올리곤 한다. 가진 돈이 얼마 없어 95%를 대출받아야 했던 상황. 둘이서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은 지를 깨닫던 순간이었고 회사와 은행의 도움으로 영혼까지 털어 넣은 집에 하나 둘 가구를 채워 넣으면서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의미를 찾아가는 경험이었다. 그래도 넓은 서울 땅 아래 우리 두 사람 뉘일 따뜻한 장소가 있다는 것은 살면서 가장 큰 위로였고 내일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동력이었다.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내일은 조금 더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해 더 악착같이 야근과 술에 찌들어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삶의 고단함을 자주 엿보곤 했다. 이따금 "나 회사 그만두면 어떻게 먹고살지?"라고 힘없이 묻는 그를 보면서 나는 "내가 먹여 살릴게 걱정 마"라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그의 질문엔 자주 진심이 담겨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평생 살아오면서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나 가지고 싶은 것들은 자주 가져보지 못한 그의 삶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나는 자주 안쓰러운 마음이 된다. 그는 호주에서 밝았던 얼굴이 서울에 돌아온 뒤로는 어두워져 잠든 나를 보며 운 적도 있다는 이야기를 술에 취해 한 적이 있다. 우리 사이엔 사랑만큼이나 서로에 대한 측은함이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중요한 감정이기 하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온전히 나만 생각하며 살던 이기적인 나라는 사람이 오롯이 이타적인 사람이 되는 경험. 내가 아닌 누군가를 아주 가까이서 바라보고 이해하고 보듬어주게 되는 소중한 경험이 바로 결혼이 아닐까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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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그림일기 @jessie_evenfolio

http://www.instagram.com/jessie_evenfolio/


아직 철들지 않은 30대.

걷고 마시고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손으로 써 내려가는 것들은 모두 따뜻한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

그래서 여전히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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