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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Nov 08. 2021

네가 처음 우리에게 온 날

샛별처럼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되길


 우리의 시작은 머나먼 호주 땅에서부터였다. 면접관이었던 나와 면접을 보러 들어왔던 그의 첫 만남이 결혼으로 이어질 줄은 아무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동거 기간이 그중 절반이었으니 아마 쉽게 헤어지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신대방역의 아주 작은 원룸에서 시작해 신림역의 1.5룸에서 다시 일 년 그리고 7호선 상봉역 방 두 칸짜리 집에서 다시 2년의 시간을 보내고 우린 서로의 알몸을 보는 것이 너무나 익숙해진 사이가 되었다.


 작은 원룸에서 방 두 칸과 작은 거실이 있는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을 때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처음 원룸을 계약하던 당시에도 그는 서울대입구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자리하고 있는 고시원에 살았고 나는 친구의 집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살 때였으니 어두컴컴한 방 한 칸에 편안히 몸을 뉘일 수 있다는 사실이 하루하루 작은 감동이었다. 무일푼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해 하나하나 살림을 늘려가는 재미를 느끼느라 사실 우리에게 아이를 가진다는 생각은 조금 먼 미래의 일 같기도 했다. 통장 잔고를 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더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월급날이 되면 조금 희망을 가지게 되다가도 카드 결제일에 맞춰 순식간에 사라지는 숫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먹고사는 일이 거대한 산처럼 다가왔다. 




 그렇게 결혼생활이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보다 크게 넉넉해지지도 않았고 사는 형편은 비슷했지만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어느 날부터 우리를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삶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시험관이나 인공수정을 하는 부부들을 자주 보게 되기도 했거니와 임신 실패로 마음고생을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준비가 되는 때를 기다리다 보면 되려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유에서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자궁 수술과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며 임신을 일찍 권장했던 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남편과 이야기하면서부터였다. 그 시기에 나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복싱을 다니던 중이었다. 하루 두 시간씩 줄넘기와 복싱을 하던 어느 날부터 갑자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에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생리주기가 워낙 불규칙하던 터라 '혹시...' 하는 마음으로 약국에서 사 온 임신 테스트기에는 아주 연하게 두 개의 선이 보였다.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임신 테스트기에는 연하게 두 개의 선이 자리하고 있었다. 


 평소에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었기에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저녁상을 준비해 남편과 밥을 먹으며 임신 테스트기를 조용히 건냈을 때 남편은 생각보다 더 설레는 얼굴을 하고 태명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빠라는 역할도 썩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호주의 도시 이름을 따서 '퍼스'라고 부를지, 아이가 처음 생긴 동네의 이름인 '상봉'으로 할지, 우리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동이'라고 부를지를 한참 동안 고민했다. 퍼스도 상봉도 입에 썩 붙지 않아 한참을 고민하다 나란히 누운 침대에서야 우리는 마침내 아이의 태명을 정했다. 이른 새벽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별, 저녁밥 짓는 시간이 되면 어스름히 밀려오는 어둠 속에서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개밥바라기별처럼 길잡이 역할을 하는 아이가 되길 바라며 개밥바라기별의 예쁜 우리말인 '샛별'로 아이를 부르기로 했다. 남편이 "샛별아"하고 부르며 배를 쓰다듬자 아랫배 어딘가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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