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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Nov 15. 2021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아이를 품고 돌아온 친정에서의 시간들 


 샛별이를 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서울은 코로나가 점점 깊어가는 중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남편이 베트남으로 파견을 가고 나면 빈 집에서 외로움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이유에서였다. 직장은 이미 그만둔 상태였기에 신혼집을 채우고 있던 물건들만 정리하면 될 터였다. 4년의 서울 생활이 정리되는 데는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짧지 않은 서울 생활에서 외로움을 채우는데 생각보다 많은 물건들을 사모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아무리 버리고 버려도 고향으로 들고 내려갈 물건은 용달차 한 대를 고스란히 채웠다. 용달차는 새벽을 뚫고 네 시간 남짓을 달려 내가 살던 고향으로 짐을 실어다 줄 것이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은 울산역이 자리하고 있는 언양이라는 동네이다. 고향을 물어보는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아~ 언양 불고기?"라고 되묻는 곳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불고기집에서 고기를 먹은 경험이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자주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생각보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굳이 사람이 많은 식당보다 더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샛별이가 뱃속에 자리 잡은 지 10주 차였기에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이 꽤 부담스러웠지만 베트남 파견을 앞둔 남편과 조금이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이삿짐과 함께 차에 올랐다. 남편이 운전해주는 차에 비스듬히 누워 연애 시절처럼 오래된 노래를 함께 부르며 고속도로를 달렸다. 그것이 우리가 샛별이와 함께 보낸 첫 크리스마스의 기억이다.  



 친정집 현관을 열고 익숙한 냄새를 맡자 몸이 스르르 녹았다. 스무 살 때부터 주인이 부재중이었던 방은 어제 내가 떠난 것처럼 이부자리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내가 언제 돌아올지 모를 이유에서였다. 엄마는 자식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부자리와 함께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나 보다.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던 내 방에는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아 온 정성 어린 손편지 두 박스와 오래된 스티커 사진, 초등학교 시절 써 내려간 일기장까지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주인은 떠난 지 오래인데 세월의 흔적이 담긴 물건들은 나를 따라오지 못하고 친정집에 그대로 남아 어른이 된 내가 펼쳐봐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그 오래된 물건들이 마치 보물인 것처럼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만히 품어주고 있었다. 유행이 한참이나 지나 더 이상 입지 않는 티셔츠들도 이제 모두 엄마의 몫이 되었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서랍 깊숙한 곳에 밀어 넣어둔 옛 남자 친구와의 커플티 역시도 엄마의 서랍장으로 옮겨간 지 오래. 잊고 있던 남자 친구들의 안부도 엄마가 입고 있는 티셔츠를 보다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카카오톡에 남아있는 프로필을 보며 엄마에게 그들의 안부를 어설프게 전해준다. 누구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또 다른 누구는 몇 년째 연애만 하고 있는데 준비하던 시험이 아마 잘 안 된 것 같다고 말이다. 이미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시절들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방은 그 시절 그대로인데 나만 훌쩍 자라 돌아온 것 같았다. 내가 어른이 되어 떠난지도 10년이 넘었는데 엄마는 내가 두고 간 추억들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나는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갔다. 엄마는 늘 내가 가지고 돌아온 것들을 따스하게 품어주었던 이유에서였다. 그래서였나보다. 샛별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건 말이다. 어설프게 엄마가 되어버린 나 역시도 엄마는 늘 그렇듯 가슴으로 품어주었다. 아이를 안고 집에 돌아간 날에도 엄마는 기꺼이 안방을 내어주고 얼굴이 발개져서 울음을 우는 샛별이를 몇 번이고 안아 달래며 재웠다. 나를 낳던 시절엔 아이 키우는 법 하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책으로, 어깨너머로 육아를 했던 엄마였는데 

막상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홀로 이 모든 시간들을 겪어낸 그녀가 새삼 다르게 보일 뿐이다. 하루하루 커가는 샛별이를 보며 엄마가 나를 키우던 모습을 조심스레 상상해본다. 가슴이 괜히 울렁거리는 것만 같아서 엄마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을이 깊어가는 논길 사이를 엄마 그리고 샛별이와 함께 걸으며 나도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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