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ssie Jun 30. 2022

112화. 제주, 한 달 살기

제시의 어설픈 육아 그림일기


 같은 외향형이지만 확연히 다른 그와 저의 성향. 커피를 워낙 좋아해서 마음에 드는 카페는 자주 드나들며 사장님과 어느새 르포를 형성하는 저와는 달리 남편은 아는 척을 하면 더 이상 방문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 저는 꽤 놀랐는데 알고 보니 남편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감성적이고 작은 일들에 마음을 쓰며 사는 저와는 달리 남편은 논리적이고 계획적인 성격이라 서로의 다른 점을 보완하며 결혼 3년 차의 삶을 무사히 보내는 중입니다. 그런 저희가 제주에 가게 된 건 바로 지난 연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였습니다.


“우리, 제주 한 달 살기 하러 갈래?”

“…. 갑자기?”


 전셋집을 구한 지 채 몇 달이 되지도 않았고 우리에겐 돌도 안된 아기가 있었으며 심지어 강아지도 함께 였기에 걱정이 앞서는 저와는 달리 남편은 덤덤하게 준비를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주행 배를 예약하고 준비물 리스트를 작성해 함께 공유하고 애견 동반이 되면서 아기와 함께 묵을 수 있는 환경의 에어비앤비를 찾느라 일주일 동안 고생을 했지만 숙소와 교통편 예약을 끝내고 나니 여행은 그렇게 하나 둘 준비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20대 그리고 결혼을 하고서도 늘 떠나는 일에 적극적이었던 저였지만 아기를 가진 이후로는 여행에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엄마가 되는 것도, 100% 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를 돌보게 된 것도 제 인생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 매사에 조심스럽고 어렵기만 하더라고요. 편한 곳이 아니면 외출도 어렵고 아기를 가진 친구가 아니면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워지는 엄마의 삶을 살다 보니 여행에도 꽤나 소심해져 버린 저를 발견하곤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모릅니다. (다들 저의 이런 모습에 물음표를 그렸죠. 엄마가 되고 난 후 찾아오는 변화는 모두에게나 낯선 것만 같습니다) 아이 뒤치다꺼리에 잔뜩 쌓여있는 집안일을 끝내고 나면 하루가 훌쩍 흘러가는 거짓말 같은 일들이 매일 펼쳐졌고 수면 부족으로 잔뜩 나이 든 얼굴을 보면서 속상해하는 동안 남편은 ‘제주 한 달 살기’라는 깜짝 선물(?)을 준비해주었습니다.


 무튼, 코로나가 한창 심했던 지난 4월! 재택근무가 가능했던 남편 덕분에 저희 가족은 청보리가 가득 일렁이는 제주에서 한 달을 꼬박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육아를 하면서 잔뜩 지친 마음에 바람을 쐬어주었더니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지기도 했고 글을 쓸 체력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답니다. 아직은 일주일에 한 번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 최선이지만 아이가 조금 더 자라고 저에게도 마음의 근육이 생긴다면 더 많은 것들을 하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제주에서 보낸 한 달의 시간이 저에게 준 건 어쩌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한 달 살기 _ 현실은 어마어마한 짐과 함께

좋아요 ‘구독’ 그리고 따뜻한 댓글을 남겨주시는 모든 분들 덕분에 오늘도 글을 씁니다:) 


인스타그램

그림일기 @jessie_evenfolio

http://www.instagram.com/jessie_evenfolio/


아직 철들지 않은 30대.

걷고 마시고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손으로 써 내려가는 것들은 모두 따뜻한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

그래서 여전히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




매거진의 이전글 111화. 출산이 내게 준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