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bermorey Station
여행자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곳. 호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당신이 얼마를 가지고 있든, 인종이 어떠하든 최소한의 조건만 만족시킨다면 그들은 너그러이 당신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대륙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커다랗고 외딴섬에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오랫동안 머물다 떠나곤 한다. 열심히 땀을 흘려 번 돈으로 여행을 즐기고 떠나라는 의미에서 ‘워킹 홀리데이’가 생겨났지만 내가 만난 중에는 정작 그런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푸른 눈을 가진 이들뿐이었다.
호주의 주요 도시들은 세계의 여느 도시 못지않게 저마다의 감성을 뽐내며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곤 하지만 바다를 등지고 깊은 호주의 내면으로 들어갈수록 진짜 호주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모험심을 안고 긴 여행을 떠난 몇몇의 여행자들뿐. 푸른 파다가 일렁이고 머리를 아무렇게나 기른 서퍼들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그건 호주의 아주 일부분만 만나고 돌아간 것임에 분명하다. 진짜 호주는 철이 산화되어 불그스름하게 변해버린 흙먼지를 뿜어내는 사막이 대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들을 만났던 것은 도심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었다. 케언즈에서도 한참을 달리고, 세상의 중심 울룰루에서도 하루를 꼬박 달려야 하는 황망한 사막 위.
도시를 잇는 길들은 매끄러운 모습을 자랑하며 어느 여행자든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아웃백의 길들은 그리 너그럽지가 못했다. 길어봐야 1년 혹은 2년을 머무는 여행자들이 오프로드를 달리기 위해 타고 온 차는 얼핏 보기에도 그들의 나이만큼은 되어 보였는데 낡디 낡아버린 타이어가 얼마나 오래 길을 달렸는지 짐작케 할 뿐이었다. 그들은 사막 한가운데 덩그러니 멈춰있었다. 우리가 막 길을 떠나온 캠핑장에서도 십여 킬로는 족히 달려야 하는 곳, 사막을 지나는 차도 드문드문해서 차마 멈춰있는 그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차를 세웠다. 멈춰 선 차의 본넷을 열어두고 다소 해탈한 모습으로 길을 바라보던 청년 그리고 차에는 그의 여자친구로 보이는 이가 있었다. 시동을 걸면 연기가 난다는 그의 말에 아마도 엔진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며 일단 열이 식을 때까지 운전을 하면 안 되겠다는 결론을 조심스레 내렸다. 해가 저물 즈음에 천천히 거북이걸음으로 차를 끌고 가장 가까운 인가로 가서 구조 차량을 기다리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는 우리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는 그들. 주섬주섬 콜라를 챙겨 건넸지만 괜찮다고 대답하는 그녀는 팔이 있어야 할 자리가 유독 허전했다. 해가 떠오를수록 달궈지는 사막의 열기를 어찌할 바가 없을 텐데도 그들은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 있었다. 멈춰서 준 것만으로 이미 고맙다며 인사를 건네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지레 도움이 필요할 거라 짐작해 버린 내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들은 가장 외롭고 황망한 곳에서도 서로에게 기대어 힘이 되고 있었으니 정작 외로운 것은 어쩌면 내 마음이었을지도.
아마 그들은 그 여행이 끝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지금쯤이면 사막에서 멈춰 섰던 추억을 떠올리며 근사한 삶을 살고 있겠지. 언젠가 서로가 가장 미워지는 날에도 뜨거운 사막을 떠올리며 미운 등을 몇 번이고 쓸어내려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