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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May 03. 2023

떠나는 마음, 기다리는 마음

부부가 떨어져 산다는 것 



 새벽 다섯 시. 텀블러에 카누 하나를 털어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평소보다 일찍 눈을 뜬 건 남편을 배웅하기 위함이었다. 일주일의 짧은 휴가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흔들어 깨워도 미동조차 없는 아이를 안아 든 채 카시트에 앉혀 공항에 가기로 했다. 어린이집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아침에 만들어 둔 커피를 들고 조수석에 앉는다. 아이가 잠든 덕분에 공항으로 가는 동안 남편과 나 사이에는 고요가 찾아왔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잠들었을 때에야 겨우 찾아오는 여유를 채 즐기지도 못한 터였다. 매일 밤 술잔을 앞에 두고 저녁을 먹었지만 대게는 육아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예전 같았으면 서로의 일상과 미래 혹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가 되었을 텐데 아이를 낳은 것만으로도 대화의 주제가 크게 달라졌다. 일주일의 시간 동안 우리는 베개에 눕기만 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을 잤다. 늘 불면증에 시달리던 남편이 나보다 먼저 잠드는 모습을 본 건 꽤 오랜만의 일이었다.




 두 달 반의 공백은 꽤 길고 깊은 시간이었다. 그 공백은 부부사이도 예외가 아니었는지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달렸다. 새벽 시간이라 고속도로는 그리 붐비지 않았다. 양산, 부산, 김해공항을 가리키는 표지판들을 보면서 나는 어제 상담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곱씹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출국 전 날, 우리는 부부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소아과에 다녀오느라 남은 시간은 겨우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그 계기로 우린 서로에게 직접 건네지 못한 속내를 그곳에서 조금 털어놓을 수 있었다. 불현듯 온 가족이 베트남으로 떠나게 된 일,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낯선 곳에 막연히 떨어진 기분, 뒤늦게 찾아온 우울과 육아의 고단함 같은 것들이 문장이 되어 쏟아졌을 때 서로가 느끼는 감정은 부끄러움이기도 안쓰러움이기도 했을 것이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대화와 서로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잘 되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가 감정을 솔직하게 꺼내놓고 그 감정들이 '왜' 생겨났을까를 고민하고 해결책을 함께 찾아보는 일이라고 조심스레 조언을 건네셨다. 선생님이 나에게 물으셨던 것들을 떠올려본다. 선생님은 처음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냐고 나에게 물으셨다. 




"처음으로 꿈이 궁금해지는 사람이었어요. 

지금껏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내일이 궁금해지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남편의 꿈은 무엇인 것 같으세요?"



 질문을 듣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그에 대한 물음을 듣고 울음이 터지다니 나로서도 당황스러웠지만 한번 터진 눈물샘은 좀처럼 마르지 않았다. 울음을 참고 나는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했다. 



"지금 남편의 꿈은.. 잘 모르겠어요."


"그럼 왜 눈물이 나는 것 같으세요?"


"늘 다 주기만 하고 정작 본인을 위해서 살지 않는 남편이 안쓰러워서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그가 남편이 된 이후로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는 늘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물어왔는데 돌이켜보면 나는 한 번도 그에게 질문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가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꺼내놓는 말들을 들으며 으레 짐작만 할 뿐이었다. 책임감 하나로 모든 것들을 어깨에 짊어진 채 한 해, 두 해 나이 먹어가는 그를 보면서도 나는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작 본인을 위해서는 싸구려 옷 두어 벌로 살고 있으면서 아이에게는 더 좋은 것들을 사주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떠올리다 보니 미안함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상담을 받고 돌아와 다음 날 출국을 하기 전까지도 몇 번이고 시큰해지는 콧등을 쓸어내리느라 부쩍 자주 창 밖을 봤다. 




 공항으로 가는 길,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은 각자 다른 생각을 머금은 채 서로의 자리로 돌아가게 될 터였다. 아마 남편을 다음에 만나게 될 때까지 나는 오랫동안 선생님의 질문을 떠올리며 그를 지금의 남편이 아닌 처음 만났던 모습으로 자주 회상해 볼 것만 같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거리던 사람이 지금 꾸고 있는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남편이 벗어두고 간 옷 위에 그와 함께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강아지가 엎드려 있었다. 내가 없는 두 달 반의 시간 동안 그와 한참이나 가까워진 강아지는 그의 부재를 벌써 예상하고 있었나 보다. 예기치 못한 장면에서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가 벗어두고 간 옷을 치우지도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다 이제야 남아있는 사람의 마음이 어땠을지를 떠올려본다. 우리가 떠나고 아기냄새가 묻어있는 곳에 누워 종종 잠들었다는 그 마음이 얼마나 허전했을지를 말이다. 늘 떠날 줄만 알았던 철부지를 오랫동안 보듬고 아껴준 마음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이렇게 깨닫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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