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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sie May 10. 2023

부부상담을 다녀왔습니다.

더 나아지기 위해 우리가 했던 일들



 부부상담을 다녀왔다. 언젠가 남편과 술을 마시면서 서로 선을 넘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었는데 다툼이 있던 어느 날, 남편이 꺼낸 ‘그만하자’는 말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상처가 되었다. 책임질 존재(아기와 강아지)가 둘이나 있는 우리였기에 이런 냉전 상태로 계속 지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야기와 함께 제 3자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이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현명하게 지나가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남편이 휴가로 와있던 일주일 중에 절반은 육아를 하랴 어색한 관계를 적당히 무마하랴 데면데면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남편의 출국 하루 전날,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두었던 센터에 상담을 받으러 갔다. 이른 아침부터 아이의 소아과 진료로 한 시간 반이나 병원에서 진을 뺀 상태라 우리는 약속 시간이 꽤 지난 후에야 상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연락을 드리긴 했지만 오래 우리를 기다려주신 선생님께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낯선 공간과 적막이 다소 나를 긴장하게 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괜찮다는 격려를 건네셨다. 그리고 곧 우리는 상담서 작성을 시작으로 상담에 본격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유선으로 나를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을 꺼내놓으시며 나에게 언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를 물으셨다.



남편분과는 언제 처음으로 결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셨나요?”



함께 일을 하던 동료들과 프로젝트가 끝나고 꽤 자주 모였었는데 그때 호주에 오기 전에 다들 무슨 일을 했는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남편은 세월호 참사와 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길거리로 나가 노래를 부르며 버스킹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것 외에도 마트 비정규직 어머님들을 위해 광화문 광장에 투쟁을 하러 나가고 그로 인해 경찰서 유치장에 갔던 이야기를 들었어요. 누구나 막연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걸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때 이 사람의 꿈이 무엇일까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인생에서 만나왔던 사람 중에서 가장 반짝거리고 내일이 궁금해지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럼 지금은 남편분의 꿈이 무엇일까요?”


“…..”



갑자기 울음이 터진 나를 조용히 기다려주시던 선생님과 그런 나를 곁에서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금 남편의 꿈은 모르겠어요. 늘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사느라 정작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은 본 적이 없어요…”



부인께서 이런 대답을 하셨다는 것은 말씀하셨던 것처럼 부부가 평소에 많은 대화를 하고 서로를 많이 생각하고 계시기 때문이에요. 남편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들을 이미 예전부터 고민해 오셨다는 의미네요. 그렇다면 이번엔 남편분께 질문을 좀 드려볼게요. 남편분은 어떤 부분들이 힘드셨나요?”



저는 제 연고가 없는 동네에서 와이프를 위해 내려와서 지냈어요. 친구도 없고 동료도 없는 곳이었고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와이프가 호주에 있을 때 저는 와이프를 어려운 상황에서 구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처가댁에서 인정해주시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부모 자식 간에 관계는 어떻게든 다시 해결되는 것이라고 장인어른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제 노력에 대한 인정이 없는 것 같다고 여겨졌던 것 같아요.”



그럼 이번에는 부인분께 질문을 드려볼게요. 남편분이 호주에서 부인을 구하셨다는 표현을 하셨는데 부인께서는 이 부분에 동의하시나요?”



“… 네. 그 당시의 저는 제 의지로 그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그만두고 싶었지만 가출을 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러 나갔던 저였는데 모아둔 돈 한 푼 없이, 이뤄둔 것 없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상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곳에서 더 머물러봐야 딱히 답이 나오는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저 역시 거기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했던 것도 아니었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어른이지만 대표님과 소리를 지르면서 싸우기도 했어요. 대표님이 제 얼굴에 와인을 쏟으셔서 저도 참지 못해서 똑같이 와인을 쏟아붓고 나오기도 했어요. 어른께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그동안의 폭언과 경제적인 문제 등이 저를 점점 지치게 만들었어요”



그렇군요. 그럼 이번에는 두 분의 가정환경에 대해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부인분께서는 어떠세요? 아까 호주에 갈 때 가출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 얘기를 좀 더 들어봐도 괜찮을까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돈’을 쫓지 말고 ‘의미’ 있는 일을 하자고 다짐을 하고 돌아왔어요. 그리고 그때 마침 호주에서 함께 일을 했던 회사에서 과학탐사 일행을 가이드하는 역할을 제안받았었고요. 그땐 제대로 된 페이가 없었지만 주거와 끼니를 해결해 줄 테니 들어와서 도와달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비행기 티켓팅을 하고 출국 일주일 전에 집에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아빠는 노발대발하시며 제 뺨과 여기저기를 때리셨고 저는 방에 숨어있다가 새벽 4시에 캐리어와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와서 출국을 했었어요. 그리고 가족과 5년 동안 데면데면하게 지내며 집에도 거의 오지 않았었고요. 남편을 만나고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해주러 와서 처음으로 아빠와 다시 한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아까 남편분께서 부인을 호주에서 구해다 가족에게 데려다줬다고 생각하셨던 것이군요. 그럼 이번에는 남편분께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었고요. 어머니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마트 비정규직 아주머님들을 위해 광화문으로 투쟁을 갔던 것도 어머니가 비정규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일을 보며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남편분께서는 책임감과 그에 따른 인정이 삶의 동력이 되시기도 하고 본인을 지치게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겠네요. 아까 남편분은 쉬실 때 누워서 위키디피아 백과사전 읽거나 유튜브 강독 보는 것을 즐겨하신다고 했는데 사실 그건 쉬시는 개념과는 조금 거리가 있거든요. 쉰다는 것은 오롯이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지만 지금 남편분께서는 계속 두뇌를 쉬지 않게 하고 계시기 때문에 부인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늘 피곤하신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두 분과 짧은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은 두 분은 여기에 상담을 오시는 다른 분들보다 서로 대화도 많이 하시고 이해가 높은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도 깊으시고요. 그런데 두 분에게 부재되어있는 건 ‘감정’을 공유하는 일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내가 오늘 이 부분은 좀 섭섭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라고 하면 ‘왜 그런 감정이 드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같이 그 감정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보는 거예요. 남편분께서도 그럴 필요가 있는 걸 조금 느끼시죠? 두 분은 외향적인 부분을 두고 보면 굉장히 닮은 듯하지만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식에서는 확연히 달라요. 그래서 서로의 다름을 염두에 두고 이해하고 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죠. 아까 상담지 작성하시는 두 분을 보고 있으니 필기하시는 모습이 너무 닮아있더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상담을 받으러 오셨으니 더 나아지실 거예요.”



 한 시간의 짧은 상담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며 우리는 숙제를 하나 받았다. ‘감정을 공유하고 대화를 하는 일’이 바로 그것. 연애 3년 차에 결혼을 하고 올 해로 7년 차가 되어가는 우리지만 상담실에서 대화를 할 때의 남편은 굉장히 낯선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매우 잘 안다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은 그를 하나도 모르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아마 그도 내가 꺼내놓지 않은 이야기를 제 3자인 선생님께 털어놓는 걸 보면서 나를 다르게 바라보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편이 떠나고 나면 혼자라도 상담을 받으러 가겠다고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잘 돌봐야 결국 ‘가족’이 행복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며 다음 주에 만나자고 인사해 주셨다. 오랜만에 기다려지는 일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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