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에서 보내는 그림일기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꽤 인상 깊게 읽었다. 다정함이라는 따뜻한 단어를 토대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지구상에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유를 설명해 주는 책이었다. 나처럼 감성을 한껏 장착하고 태어난 사람에게 과학이라는 딱딱한 분야를 거부감 없이 입문하게 해 준 고마운 존재였다고나 할까.
요 몇 달은 뉴스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무겁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해외에 있을 때 더 애국자가 된다는 누군가의 말에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에서는 홀로 육아를 하며 사는데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관심을 쏟기가 쉽지 않았는데 호치민에 오고 나서는 남편과 식탁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 티브이가 없어도 유튜브와 인터넷으로 한국의 소식을 빠르게 읽어내며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상을 걱정한다.
정치적인 이슈로 시끄러웠던 시간들이 채 잠잠해지기도 전에 무안의 제주항공 사고 소식과 이젠 꺼지지 않는 산불 소식으로 마음이 젖어있다. 공감을 잘하는 성향의 인간이라서 누군가의 아픈 소식을 들으며 자주 눈물 흘리고 슬퍼하는데, 요즘은 그 빈도가 잦아져서 마음을 털고 일어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운동을 갈 기력이 없어서 멍하니 창 밖을 보다가, 책이라도 읽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세 쪽을 채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남편의 외벌이 생활 6년 차라 넉넉하진 않지만 커피 마실 돈을 아껴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를 했다. 위험에 맞서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님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 갈 곳을 잃은 동물 친구들의 구조 작업 중인 단체를 위해서.
불 탄 집 앞에서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웃들의 모습이 잊히지가 않는다. 목줄에 묶여 탈출하지도 못하고 까맣게 그을린 네 발 친구들의 눈빛이 아른거린다.
지금 우리는 다정함이 필요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아주 작은 다정함으로도 우리는 곁에 있는 이를 일으켜 세워줄 수 있다. 시끄러운 세상을 잠시 뒤로하고 울고 있는 이의 어깨를 토닥거려 줄 시간이 우리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