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호치민에서 보내는 그림일기

by Jessie



사진으로 돌아본 나의 어린 시절은 연탄으로 방을 덥히고 천기저귀를 두르고 자라온 소박한 모습이다. 기저귀가 비싼 시절을 지나온 터라 어린 시절의 나는 하의실종의 모습으로 자주 사진을 찍었다.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놓고 뜨거운 여름의 더위를 식히던 모습은 80년대 후반을 지나온 이들의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아빠의 넉넉지 않은 월급으로 제일 먼저 분유를 사서 채워놓았다던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는 지금의 나에게서야 비로소 깊게 와닿는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갈 때면 종종 커다란 양철통에 담겨 있던 텐텐(약국에 파는 영양제)을 부러워하곤 했다. 우리 집은 텐텐을 사줄 만큼의 여유가 없던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아이에게 텐텐 사주는 일을 정말 좋아한다.)

엄마는 종종 그 시절의 가난을 미안해하시지만 나는 엄마 덕분에 꽤 괜찮은 사람으로 자랐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며 눈물 흘리는 엄마라던지, 전화 ARS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모금하던 모습, 이웃들이나 어른들께 늘 인사를 시키던 엄마는 나를 딱 그만큼의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가진 것이 많아서 넉넉했다면 다른 것들을 물려줄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내가 그런 모습이 아니기에,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아이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알려주는 것은 인사를 잘하는 모습이다. 그랩 택시를 잡아 탈 때도, 유치원 차량 선생님께도, 아파트 로비에서 문을 열어주시는 경비 아저씨에게도, 리셉션 데스크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직원에게도 인사를 시킨다. 늘 가지런한 모습으로 인사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일이고, 타인에게 친절한 일이고, 그것이 곧 내 얼굴이 되는 일이다.


인사만 잘해도 먹고는 산다는 말은 요즘 꽤나 공감하는 말이 되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은 성격이기도 하고 인사를 잘하고 지내는 덕분에 동네에서 안부를 주고받는 이웃들이 꽤 생겼다. 강아지 산책을 나갔다가 마주치면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사는 일의 고단함을 다독이기도 하면서. 집에서는 원체 집중을 못하는 성격이라 근처 카페에 컴퓨터를 들고나가곤 하는데 그럴 때면 이웃들이 커피를 사주는 행운이 종종 찾아온다. 아이 역시도 인사를 잘해서 어린 시절부터 초면인 어른들께 1000원의 용돈을 받거나 간식을 선물 받는 일들이 자주 있곤 했다. 아이가 귀한데 키우느라 고생이라며 건네주시는 작은 격려가 혼자 아이를 돌보던 그 시절의 나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가게, 인상에 남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공통점을 들여다보면 모두 따뜻하고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네주었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런 사람은 얼굴을 한번 더 들여다보게 만든다. 만원 버스에서 씩씩하게 기사님께 인사를 건네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다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인사란 것은 따뜻함을 전염시키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런 따뜻함을 받아 들고 돌아온 날에는 사는 일이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3초도 안 되는 그 짧은 인사에 힘을 얻기도 하고, 내가 받은 그 마음을 다시 누군가에게 건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함께 행복해지는 일은 어쩌면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고 사소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정함이 필요한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