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티아고를 처음 걸었던 순간을 돌아보면 그 시작점에는 어김없이 아빠가 있었다. 물 흐르듯 잘 지내다가도 술에 만취해서 들어온 아빠를 보는 일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심장에서 비롯된 미움의 첫 번째 장면을 언제고 선명하게 떠올렸다. 네다섯 살 무렵, 친구가 놀러 왔을 때 무언가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빠는 밥을 먹던 식탁에서 내 뺨을 아주 세차게 내리쳤다. 순식간에 뒤로 넘어간 식탁의자 그리고 양쪽 코에서 흐르던 코피까지. 코피를 흘린 경험은 그날이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날의 기억은 곁에 있던 친구도 여전히 기억할 만큼 아주 선명하게 남았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순례길을 걷기로 마음먹으면서 나는 나를 찾아가겠다는 당찬 포부를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온전히 나의 힘으로 떠난 여행이었기에 먹고 싶은 것들을 꾹 참고, 보고 싶은 것들을 아껴가며 오롯이 순례길에 스스로를 쏟아부었던 시간들이었다. 33일의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걸음을 옮기며 결국 내가 도달한 결론은 아빠라는 존재에 쌓인 미움이었고 그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그 미움은 곧 나 자신이기도 했으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꼬박 800킬로미터의 순례길을 걸었지만 어렵게 꺼낸 나의 마음은 괜찮은 듯했으나 아이를 낳고 술을 마시는 아빠와 자주 마주치며 다시 갈등이 시작되었다. 결국은 할머니집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을 함으로써 애써 미움을 덮어둔 상황이었다.
매일 강아지와 산책하며 신기하게도 선명하게 두 눈에 보이는 네잎클로버를 자주 집으로 들고 오곤 했는데,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아빠의 공책에 빼곡하게 꽂혀있는 네잎 클로버를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부지런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예쁜 엄마를 닮길 바랐는데, 지금에서야 나를 돌아보니 거울 속의 나는 그토록 미워했던 아빠를 가장 많이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