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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응원하고 있다

by Jessie
@ 이런 생각을 하고 나면 사는게 꽤 위로가 된다


스무 살 언저리부터 시작된 타지생활은 나에게 외로움과 친구가 되고, 그 시간들과 익숙해지는 경험을 선물했다. 사랑을 시작하고부터는 그동안 홀로 있던 시간을 어떻게든 채우려던 욕심에서였는지 그에게 늘 사랑과 함께 있기를 갈구했다. 하지만 집에 누워 위키디피아 백과사전을 보거나 유튜브로 역사 강독 보는 걸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나는 강제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이 문제로 정말 5년은 끊임없이 투쟁하고 싸우고 눈물 흘리고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는 결국 바뀌지 않았고 이젠 내가 변해간다.


결혼 7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우리 사이에 적당한 거리가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결혼 생활 중 절반은 떨어져서 지냈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젠 그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나 자신을 알아가고 싶은 욕심이 더 커졌다. 아이가 말을 알아듣고 이해하는 다섯 살이 되고 나니 아이와 함께 나를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함께 자라났다. 스타트업에 다니며 하루하루가 챌린지인 남편도 자신만의 이유로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나 역시도 독립적으로 생활해야 함을 느낀 것이다. 어느 날은 클라이밍장에서 만난 친구가 건넨 ’ 너의 직업은 뭐야?‘라는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이마를 긁적인 적이 있다. 사실 엄마로 살아가는 지난 5년간 이런 일들이 꽤 여러 번 있었고, 그때마다 아이를 키운다는 작은 대답만 내뱉을 수 있을 뿐이었다. 엄마가 뭐 어때서!라고 하기엔 경제적인 부분은 늘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한국에 있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베트남에 왔다. 겉보기엔 남들과 같은 모습이겠지만 내가 바라보는 나는 호치민으로 돌아오지 못한 2년 전의 과거와 확연히 달라져있음을 느낀다. 돌아갈 퇴로가 없어서 더 단단한 마음으로 오기도 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그리워서, 또 미치도록 원망스러워서 꺼내보지 못한 호주에서의 시간들을 이제야 조금씩 감정을 털어내고 마주하는 중이고, 호치민에 머무는 동안 꼭 한 번은 다시 그곳에 가보자는 약속도 스스로에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해놓은 것도 없고, 앞 길이 그저 막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허상을 쫓으며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꿈을 따라가는 중이지만, 그래도 눈을 가만히 감고 미래를 그리다 보면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긴다. 이런 시간들도 다 글감이 될 것이고, 누군가를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한 발돋움판이 되리라 생각하면 어려운 시간들도 견디고 인내할 수 있게 된다. 14년 전, 영어를 더듬더듬 말하던 내가 거짓말처럼 미국 디즈니월드 인턴십 티켓을 얻게 된 것도 눈을 감고 간절하게 꿈을 꾼 덕분이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5년간 갈망하다 결국 그 길 위에 서게 된 것도 선명하게 머릿속으로 그리던 덕분이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안되면 말고’라는 옵션은 없었으니까. 그러니 10년 후의 내가 그때처럼 못할 이유도 없지 않겠냐고 스스로의 어깨를 두드려본다. 미래의 내가 나를 응원하고 있다. 결국,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거야 라면서.


우리, 모두 좋은 방향으로 갈 거예요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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