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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개육아를 한다는 것은

우울이 찾아올 겨를도 없이 바지런히 보내는 하루

by Jessie
20년생 강아지와 21년생 아들



코로나 시대와 1인 가구의 증가, 생명을 돈으로 사고팔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지독한 자본주의 등의 이유로 버려지는 동물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곤 한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도 관심 있게 본 콘텐츠와 연관된 것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알고리즘 덕분에 나는 유기견 친구들에게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우리의 시작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신혼 1년 차, 지나치게 바쁜 남편 그리고 유기동물센터에 봉사활동을 가던 내가 있었다. 어느 날, 그런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남편이 준비나 사전 지식도 없이 덜컥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심지어 남편은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깔끔한 성격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강아지를 식구로 들이고 우리의 삶은 꽤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이를테면, 여행을 가는 일을 줄이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던지, 밖에서 무얼 먹는 일보다 집에서 먹는 시간이 많아졌다든지 하는 것부터가 작은 변화였다. 남편은 나에 대한 면죄부를 얻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내 곁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는 사실은 남편이 조금 더 회사에 머무르고도 미안함을 덜 수 있게 했다.


신혼 1년을 알차게 보내고 남편과 비로소 2세 계획을 세웠을 때, 운이 좋게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바로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뱃속에서 자라는 동안은 강아지가 아기와 잘 지낼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고향으로 내려가 시골살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끊임없이 위협을 하는 서울의 도로와는 다르게 시골의 거리는 시야가 시원하게 트여있었다. 가족들은 나와 함께 돌아온 털북숭이를 나만큼이나 아껴주었고, 뱃속에서 아이가 커가는 동안 강아지와 함께 논두렁을 걷던 시간들은 지금 돌아보면 살면서 가장 행복한 장면 중 하나였다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작은 털북숭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았고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지출이 있었다. 하지만 감히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작은 털북숭이 덕분에 그 누구도 채워주지 못한 감정의 결핍을 채울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지난 6년 간 강아지를 키우며 나는 인내와 기다림 그리고 양보를 배웠다. 갈 수 없는 여행이 많았고, 강아지 사료를 사며 내 옷을 사 입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지만 그 옷이 없다고 해서 내가 초라해지는 것도 아니었고 책임의 값으로는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지출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으레 반려동물에게 쏟는 마음이 줄어들기 마련이지만, 나는 모든 체력과 마음을 짜내서 두 녀석을 키웠다. 아이를 낳고 보름 즈음부터 다시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고 홀로 두 녀석을 키우면서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산책을 나갔으니 생각해 보면 이 시간들은 내가 얼마나 독하고 고집스러운지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곁에 있는 이들은, 심지어 친하다는 친구들조차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어했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산책을 하루 빼먹는 일이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임을 너무나도 깊이 공감할 것이리라. 하루 종일 산책을 기다리는 그 눈망울을 생각하면 나의 20분을 녀석에게 나눠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책임이자, 의무 같은 것이었다. 사실 이 정도의 시간과 체력을 나눠줄 수 없다면 강아지를 키우는 일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독일에서는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매년 강아지 세금을 지불해야 하고, 매일 강아지를 산책시키지 않으면 동물 학대로 처벌을 받는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기 위해 어느 정도의 세금을 지불하고 매일 산책을 시키는 의무가 있어야 우리나라의 반려동물 문화도 조금 더 성숙해질 것이고 아직은 갈 길이 한참이나 멀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아이가 어릴 땐 유모차를 끌며 강아지 리드줄을 잡고 산책을 나갔다.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의 미팅에 방해가 되지 않게 집을 나서곤 했는데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 집 안에서 씨름을 하다가도, 산책 길에 서면 계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선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금계국이 피어나고, 매미가 울고, 도토리와 네 잎클로버를 주우며 아이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걷는 시간들은 나에겐 보물 같은 시간들이었다. 두 녀석을 위해 나를 바지런히 움직이고 나면 하루가 깜짝할 새 흘렀다. 자투리 시간에 클라이밍과 도서관을 집어넣고 나면 우울이 찾아오다가도 금세 흩어졌다.


아침 여섯 시, 여전히 나는 호치민의 작은 동네로 산책을 나선다. 녀석을 위해 걸음을 옮기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 역시도 매일 아침 반짝이는 장면과 생각들을 주워 담는 시간이다.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줌바를 연습하는 아주머님들,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눈인사를 나누게 된 이웃들 그리고 어느새 단골이라 부를만한 노천카페까지. 산책이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작고 선명한 행복의 모습들이다. 다섯 시간이나 떨어진 이 낯선 나라에 마음을 붙이고 살 수 있었던 건 털북숭이 강아지와 떠나는 작은 산책 여행 덕분이었노라고 이제야 고백을 해본다. 처음 보는 꽃과 나무 그리고 새벽 여섯 시부터 부지런히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삶이 매일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는다. 기분 좋게 흔들리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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