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사는 아줌마의 그림일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한국인에게 꽤 친화적인 장소이다. 바로 아래에는 한국 음식을 파는 한인마트가 있고 카페도 근처에 10개가 넘게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점도 많아서 멀리 발품을 팔지 않아도 삶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집이 넓진 않고 지어진지도 꽤 되긴 했지만 친절한 경비 아저씨가 계시고 무엇보다 근처에 공원이 있어서 강아지와 산책하기엔 이만한 장소가 없어서 삶의 만족도가 꽤 높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지만 나는 작업을 할 때면 늘 오토바이를 타고 20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카페로 향한다. 너무 가까운 카페는 나약한 정신력을 가진 나로서는 집에 언제든 돌아오기 쉬울 뿐만 아니라 익숙한 얼굴들을 만나게 되는 바람에 집중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런 나를 위해 자주 가볼 만한 곳들을 검색하고 추천해 준다. 남편이 추천해 준 장소들은 꽤 만족스러운 편인데 지난 연말에 남편이 발견해 준 보물 같은 카페는 아직 한국인이나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터라 나는 작업이 필요할 때면 주저 없이 그곳으로 향한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지막이 대화하는 소리는 적당한 백색소음이 되어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건축회사에서 만든 이 카페는 밖에서 벨을 울려야 들어올 수 있는데 프라이빗한 느낌 덕분에 이곳에 올 때면 늘 비밀의 정원에 초대받은 기분이 든다. 정원에는 자유롭게 식물들이 자라고 햇살이 내리쬐면 초록빛의 잎사귀가 반짝이는 소리를 낸다. 이곳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손님이 많지 않은 날이면 정원을 자유롭게 거닐며 일광욕을 하고 낮잠을 자는데, 작업을 하다 문득 내다본 정원에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 다니는 풍경은 그야말로 지상낙원. 동물을 아끼고 좋아하는 나로서는 동물에게 친절한 공간에 늘 마음이 끌린다.
오늘도 역시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릴 겸 카페에 도착해 늘 그렇듯이 라테를 주문했는데 익숙한 얼굴의 바리스타 친구가 “너는 늘 라테만 마시는구나”라고 말했다. “나를 기억하고 있어?”라고 물었더니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너를 알고 있어”라고 대답한다. “이 공간이 너무 좋아서 작업을 할 때마다 오게 되는 것 같아. 덕분에 글 작업도 너무 잘했어”라고 말하자, 찾아주어서 또 카페를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준 덕분에 오늘은 좋아하는 공간이 더 살가워지는 경험을 했다. 늘 묵묵하게, 별 다른 대화 없이 나에게 커피만 전해주던 친구들이었는데 말없이 카페 한편에 앉아 작업하는 나를 또 나의 취향을 기억해 줘서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나에게 여행이라는 건,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일이다. 취향에 맞는 것들을 찾아내고 익숙해질 때까지 자주 찾아가고 결국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여행이자 삶이고 또 가고 싶은 삶의 방향이기도 하다. 호치민이라는 곳에서 익숙한 곳들이, 반가운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얼마나 오래 이곳에 머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주어진 시간들 동안 이렇게 따뜻한 순간들을 더 많이 주워 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