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요가를 시작한 건 스무 살 언저리였으니 햇수로 치면 근 17년이 다 되어간다. 초년생일 때는 친구들과 노는 일이 즐거워서 수업을 빼먹고 밖으로 향하곤 했고, 더 어른이 된 지금은 아이를 봐야 한다는 이유로 자주 요가매트에 서진 못한다. 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요가를 놓지 않고 다시, 또다시 시작하게 되는 건 요가가 주는 마음의 평화를 아끼고 또 사랑하기 때문이다.
동네 요가원에서 시작된 요가와의 인연. 첫 스승님을 어떤 분을 만나는지에 따라 요가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짐을 느낀다. 내가 배운 요가는 명상과 호흡 그리고 자세를 이어가는 동안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깨우치는 훈련이었기에 정적이고 차분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에 요가를 하고 돌아오면 그날 하루 종일 내가 마주했던 사람들과의 일들, 마음에 쌓여있던 상념 같은 것들이 옅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바아사나(죽은 사람의 자세라는 뜻으로 온몸에 힘을 빼고 누워서 이완하는 자세)가 끝나고 나면 스승님은 짧게 하루를 돌아보고 흘려보내라는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그 말들은 실제로도 울림이 있어서 삶에 대한 나의 시선을 교정하는 시간이 되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요가는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신대방역과 신림역에 있는 요가원의 수업은 꽤나 비쌌고 피크인 시간대는 늘 사람으로 붐볐다. 기존의 내가 받아오던 명상 위주의 수업과는 달리, 서울에선 우선 요가의 종류가 다양했고 명상보다는 다이어트나 체형교정이 주를 이루었다. 플라잉 요가는 다소 재미있었지만 다른 요가들은 다닥다닥 여유 없이 붙어있는 사람들 속에서 부딪힘을 생각하느라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서 늘 아쉬움이 있었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나는 본격적으로 요가를 다니기 시작했다. 홀로 임산부라 수업을 참여하는 것이 괜찮은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스승님과 함께 하는 수업은 믿음이 있어서인지 늘 편안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임신 4개월 차부터 아이를 낳기 3일 전까지 요가를 했으니 나의 태교는 요가와 함께 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는데, 덕분에 자연분만으로 두 시간 만에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무통주사를 맞지 못해서 온전한 정신으로 아이를 낳은 시간이었는데 요가 수련을 하지 않고 낳았더라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겠노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고 키운 뒤에도 남편이 베트남으로 넘어간 시점부터 다시 요가원으로 돌아가 반년 동안 수련을 이어갔다. 요가 3급 자격증 반에 들어가 수업을 듣고 인체의 뼈와 근육의 명칭을 외우며 어떤 동작들이 어디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들여다보고, 명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호흡은 어떻게 들여다봐야 하는 지를 공부한 시간들이었다. 남편과의 관계, 홀로 육아를 해야 하는 편안하지 못한 마음으로 수업을 들었지만 그 시간들이 없었더라면 나의 흔들림이 얼마나 오래 또 깊게 이어졌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호치민으로 넘어올 준비를 하고 낯선 곳에 적응을 하느라 잠시 요가를 잊고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피곤해져 올 때면 늘 습관처럼 요가매트를 꺼내곤 한다. 내가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주변의 바람에 흔들릴 때면 더 자주 요가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린다. 요즘은 다시 요가 매트를 꺼내어 동이 트는 시간에 맞춰 그곳에 몸을 뉘인다. 누워있기만 해도 그 시간들이 너무나 평온해서 나를 아주 먼 곳으로 데려다주는 기분이 든다. 클라이밍을 이어가면서도, 요가를 계속 놓지 못하고 있는 건 두 운동이 주는 매력이 너무나도 다르고 밖에서 분출하고 난 에너지를 내면으로 채우는 시간들이 분명히 필요함을 깨달은 이유에서다. 다시 요가 매트를 꺼내들 시간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