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을 잊은 부부에게 찾아온 작은 행복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어제는 우리가 만난 지 9년째 되는 날이었다. 워낙 둔한 성격이기도 하고 기념일을 챙기기엔 정황이 없거나 여유가 없었던 터라 우리 부부는 기념일이라는 것을 잘 챙기지 않는 편이었다. 떨어져서 산 시간이 오래인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이가 생기면서부터는 기념일을 챙기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결혼기념일은 적당히 괜찮은 식당에서 온 가족이 밥을 먹는 것으로 대신하기 시작했고, 10월이 되면 남편과 나의 생일을 같이 묶어서 작은 케이크를 앞에 두고 초를 불었다. 그 정도의 축하면 충분히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일상이었다.
호치민에서의 삶이 이제야 안정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특별하거나 굉장하진 않지만 하루하루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아이와 강아지가 편안하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이 정도의 모습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지내는 시간들이었노라고.
어젠 남편이 퇴근길에 갑자기 꽃을 사서 돌아왔다. 저녁을 준비하던 중이라 가스레인지 앞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두 손에 쥐어주는 꽃다발에 거짓말처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우리 만난 지 9년째 되는 날이야. 호치민에 잘 적응해 줘서 고마워”
덤덤하지만 따뜻하게 꽃을 건네는 남편을 보며 행복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고맙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지금의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지금 목표하고 있는 일들이 잘되기를 바라서 해바라기를 사 왔다고 이야기해 주는 따뜻한 사람. 아이가 나보다는 섬세하고 따뜻한 아빠를 닮아가기를, 따뜻하고 다정한 장면들이 우리의 앞에 더 자주 놓이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