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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하루를 견뎌낸 뒷모습

가족을 지키는 가장의 고단한 하루를 바라보며

by Jessie
@ 우리는 모두 사표를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사람의 인생처럼 인간관계도, 삶의 성취도 또 직장생활도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있다. 그 고비들을 어떻게 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도 하니 허투루 그 시간들을 흘러 보낼만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그 과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혼자일 때와는 달리, 책임져야 하는 존재들이 생기고 나면 삶의 무게가 곱절로 늘어난다. 아빠가 술에 기대어 사는 게 너무 버겁고 힘들다고 눈물을 흘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내 곁에 있는 남자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남편은 꽤 진중한 사람이다. 나서서 말을 해야 하는 곳에서는 강단 있게 분위기를 이끌어가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동굴의 시간을 가지는 성격이랄까. 예전에는 그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매일 밤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요즘은 그도, 나도 하루동안 있었던 이야기나 아이육아에 대한 고민이 끝나면 각자 육아와 강아지 산책, 설거지와 아이 목욕을 시키고 지쳐서 잠이 든다. 이제 각자의 고민은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 하는 숙제가 되었다. 회사의 이야기를 굳이 집으로 가지고 오지 않는 남편이기에 이제는 억지로 이야기를 꺼내려하지 않는다. 나 역시도 스스로 정해둔 것들을 해내고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그제야 남편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는 결혼 7년 차가 되어서야 부부이면서도, 룸메이트이면서도, 나란히 걷는 동료 같은 사이가 되었다.



점점 스스로의 시간을 잘 보내고 해야 할 일들을 찾아서 하게 된 것은 가끔 바라보는 남편의 뒷모습이 유난히 고단해 보일 때가 있어서였다. 미래가 선명하지 않은 스타트업에 의지해 가족들을 모두 베트남으로 데리고 온 것은 순전히 그의 용기였다. 씩씩하게 가족들을 데리고 왔으니 약한 모습이나 불안한 상황들을 나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고 속으로 인내하는 듯이 보일 때가 있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그런 날이었다. 소파에 앉아 멍하게 허공을 보다가 한숨을 깊이 내쉬고 일터로 나가는 뒷모습이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아빠라는 역할을 짊어졌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사람들을 만나며 담배 몇 개비로 참아내는 퇴사의 욕구. 언젠가 그 모든 것들을 참아낼 수 있는 건 퇴근길에 “아빠”하고 달려와서 안기는 아이와 “수고했어” 말 한마디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오늘은 따뜻한 저녁밥과 수고했어라는 말을 잘 준비해서 고생한 그에게 꺼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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