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 #진심과 우정
말보다는 손이 전하는 진심을 먼저 알아차리는 편이다.
가벼운 이야기들에 숱하게 상처를 입은 날들을 지나고서 가장 많이 바뀐 건 아마 지키지 못할 약속을 쉽게 말로 내뱉지 않는 것과 정말 소중한 진심은 손 끝으로 전하게 된 일이 아닐까. 오랫동안 여행을 하며 내가 생각하던 삶의 영역 너머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7년 남짓의 시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를 흘러 다니며 언어의 장벽을 넘는 진심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빛으로 차마 나누지 못한 이야기는 아니 너무나 깊어서 그 울림이 미처 전해지지 않는 진심은 때론 꾹꾹 눌러담은 글씨에서 전해지곤 한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은 진심은 시간을 지나면 점점 더 짙어지곤 했다.
국가 인턴으로 호주라는 나라에 도착해 6개월의 계약을 끝내고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1년의 호주 생활을 끝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서는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기에 사장님께 두터운 신뢰를 쌓은 후 평일에는 오픈부터 클로징까지 그리고 주말엔 9시간의 근무를 자처해서 해내던 때였다. 사장님께서 주문하신 것처럼 단골 손님들의 취향을 파악해 가던 어느 날,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항상처럼 파인트로 총 8통(3통의 초콜렛칩 쿠키도우와 3통의 쿠키앤크림, 1통의 녹차와 1통의 스트로우베리 치즈케이크)의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할머니께 아이스크림을 건내 드리며 대화를 건냈다.
"Mrs.PAM!
아이스크림을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매일 같은 맛만 드시네요. 이번에 새로나온 셔벗 종류도 드셔보시겠어요?"
"아니 괜찮아요. 내가 먹을 게 아니라 우리 딸이 먹을 거예요. 사실 우리 딸이 많이 아프거든요.
걔는 이 아이스크림만 매번 찾아서 내가 사다주지 않으면 안되요"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
할머니의 딸에게는 병이 있다고 했다. 할머니께서 몇 번이고 병의 이름을 알려주셨지만 태어나서 처음 듣는 병 명 앞에서 귀머거리가 된 나에게 할머니는 영어 단어를 손수 써서 건내 주셨다. 우리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무기력과 우울증을 동반한 거식증이라 했다. 그녀가 18살이 되던 해부터 갑작스럽게 발병한 후 그녀는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고 어둠 속에서 생활하며 점차 시력이 퇴화되기 시작했다는 것. 간간히 집으로 찾아오는 의사와 가족 외에는 그녀가 소통할 수 있는 통로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엄청난 거식증에 시달리다가 갑자기 폭식증으로 돌아서고 다시 거식증에 시달리는 일이 반복되던 중 그녀가 유일하게 찾은 것은 베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이라 했다.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고 몇 스푼을 떠 먹은 뒤 다시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요구하는 그녀의 정신적인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법은 그 어디에도 없는 듯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 대한 감정을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날 이후로 할머니가 오시는 날엔 미리 아이스크림을 준비해 아이스크림 뚜껑 위에 작은 메시지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나에게 처음으로 간절했던 미국행 인턴쉽 이야기, 미국에서 내가 배운 것들 그리고 다시 호주행을 결심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알을 깨고 나가긴 어렵지만 그 속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어딘가에서는 포기하지 않고 꿈을 꾸고 이뤄가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녀가 살고 있는 호주도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걸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반 년이란 시간동안 할머니와 나는 서로의 일상과 생각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할머니는 딸과 나의 소식을 전달해주는 우편 배달부 역할을 해주셨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한국인과의 대화가 어색하고 쑥스러워 보였지만 그녀는 이따금 책 속의 혹은 영화 속의 나누고 싶은 글귀를 적어 보내는 내게 삐뚤삐뚤한 한국어로 짧막한 감사의 쪽지를 할머니를 통해 보내왔다. 누군가에게는 한낱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일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누군가의 삶에 작은 기쁨을 전하는 일이었고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내 스스로의 자존감과 기쁨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호주를 떠나기 3일 전,
나는 할머니께 식사를 초대 받았다. 어쩌면 그녀와 같은 지붕 아래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라 나는 조금 더 설레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식사를 하기로 한 당일 날 아침, 할머니의 아들에게서 한 통의 연락이 왔다.
"Jessie,
나 지금 집 앞인데 잠시 내려올래? 줄 것도 있고 해줄 말도 있어"
조금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내려간 그 곳에서 할머니의 아들은 나에게 하나의 꾸러미를 내밀었다. 내 이니셜의 스티커가 가지런히 붙어있는 상자 하나를 가운데 두고 그는 이야길 했다.
"지금 어머니가 누굴 만날 상황이 안되셔서 대신왔어.
너무나 보고 싶었는데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 정말 미안해"
그가 돌아가고 조금 뒤 페이스북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안해, 아까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사실 내 동생이 오늘 아침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어머니가 발견하셨는데 상심이 너무 크셔서 만나지 못할 것 같다고 하셔서 내가 대신 인사를 하러 간거야. 상자 안에 있는 목걸이와 카드 그리고 상자는 어머니와 동생이 함께 주문해서 만든거야. 가끔 목걸이를 보며 그녀를 생각해주길 바라.. "
얼굴을 본 적도,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그녀였지만 글로 나눠 담은 진심은 그녀에겐 세상을 향하는 통로가 나에게는 삶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떠남을 앞두고 나는 홀로 울었지만 한 달 후 떠난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그녀가 조금 더 자유롭고 행복하길 기도했다.
몇 년 후, 다시 찾은 호주에서 만나뵌 할머니는 조금 더 늙으셨지만 예전처럼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셨고 갈 곳이 없으면 언제든 집에서 지내도 좋다는 이야길 하셨다.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방 안의 박스 안에서 나의 글자가 담긴 아이스크림 뚜껑들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살아 생전 그녀가 나에게 주기 위해 손 끝으로 눌러 쓴 편지 한 장을 건내셨다. 책과 영화 속 구절들을 이따금씩 적어 보내던 나를 위해 좋아하는 노래 속 가사들을 손 끝으로 눌러 쓴 그녀의 답장을 받아들고 나는 잠시 울지 않기 위해 할머니가 건내주신 커피를 후후 불어 슬픔을 삼켰다. 얼굴 한번 마주하지 않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나의 글과 진심이 닿았던 누군가의 마음을 오랫동안 떠올렸다. 그 마음이 쉬이 잊혀지지 않아 나는 그 날 이후로 이따금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입이 전하는 마음 보다 손 끝으로 전하는 진심의 여운이 더욱 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