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 #안도감
남편에게는 두드러지는 습관 하나가 있다. 그것은 '무한도전'을 켜두고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머무르는 일이다. 이미 10번은 넘게 돌려봐서 대사까지도 몽땅 외울 정도일텐데 공백이란 공백을 무한도전으로 메우고 있는 남편을 볼 때 가끔 나는 고개를 작게 젓곤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후 나 역시 그를 조금씩 닮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혼자 영화관에서 보고 돌아온 후 나 역시도 이유없이 허기가 느껴질 때면 습관처럼 그 영화를 켜놓고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늘도 역시 그런 날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느라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던 나는 인생의 1/3을 낯선 도시, 낯선 나라에서 살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바삐 결혼을 해버렸으니 집에 돌아가 쉴 겨를조차 없이 새로운 가정을 꾸린 셈이었다. 외로움을 느낄 때면 운동화를 신고 해질녘 어딘가를 걷거나 뛰면서 감정의 허기를 털어내곤 했는데 코로나가 온 뒤로 반 년 가까이 감정을 털어내지 못하고 나는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성향이 바뀌어가는 것인지 성격이 바뀌어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을 만나는 일도 더 이상 나에게 에너지나 즐거움을 주는 일이 아니어서 나는 강아지와 보내는 시간을 조금 더 선호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의 예고편을 보고서 나는 조금은 예상을 했었던 것 같다. 내가 분명 저 영화를 통해 위로를 받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이렇다 할 러브신이나 성공 혹은 유쾌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극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밋밋하고 몇 번을 꺼내 보아도 질리지 않을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를 이 영화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도로를 벗어나는 장면이나 배추를 뽑고 사과를 따는 추수의 장면, 태풍이 지난 후 누워버린 벼를 볏집으로 묶어주는 모습들은 시골에서 오늘 날까지도 부모님이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잠시 경험했던 농촌에서의 삶을 이토록 그리워하게 된 것은 극 중 류준열의 말처럼 가식적이고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을 살지 않기 위해, 또 노력한만큼 결실을 맺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 지도 몰랐다. 시골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영농 후계자가 된 한 선배는 리틀 포레스트에 집착하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야. 여기에는 농촌 살이에 대한 낭만은 없을지도 몰라"
선배의 말이 맞다. 구멍 가게도 주변에 없어 차를 타고 나가야하는 작은 마을을 떠올리면 말이다. (마을에 아이들이 사라진 후로 구멍가게는 문을 닫았다.) 태풍이 지나고 나면 꼭두새벽부터 논으로 나가 지난 밤의 거친 비바람을 수습해야하는 것도 그러하지만 사방에서 날아들어오는 벌레에 무던해져야하는 것도, 마카롱을 사먹을 수 없다는 것도, 로켓 배송이 없는 것도 모두 익숙해져야 한다.
제주에서 대학까지 나온 한 친구는 서울 살이를 하다 서울에 질려 제주로 돌아갔지만 반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서울에 다시 올라오고 말았는데 그녀를 다시 서울로 회귀시켰던 것은 로켓 배송이 되지 않는 배송 시스템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를 웃으며 들은적이 있었다. 평소에 쇼핑을 잘 하지 않는 나여서 배송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모두가 나에게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것은 '큰 물에서 놀던 고기는 작은 물에서는 놀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를 건네는 선배나 친한 소꿉친구들 역시도 시골은 가식이나 꾸밈없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양파는 모종 심기에서 시작된다. 가을에 씨를 뿌려 두었다가 발로 잘 밟고, 건조와 비를 피해 멍석을 열흘 정도 덮어 두었다가 싹이 나면 걷는다. 싹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키워서 미리 거름을 준 밭에 옮겨 심는데 이것이 '아주 심기'이다. 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이다
/ 리틀 포레스트 중에서
내가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보며 가장 위로 받았던 부분은 바로 양파를 '아주 심기'하는 장면이었다.
어렵게 싹을 틔운 양파 모종은 그렇게 겨울을 지내는데 혹독하게 겨울을 난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더 단단하고 맛있는 양파가 된다는 독백을 한다. 실제로 겨울이 되어 서리가 내리고 영하의 기온이 되면 양파 모종들은 거의 성장을 하지 않고 죽은 듯한 모습이 되어버리는데 봄이 완연해지면 양파는 다시 급격하게 성장을 한다.
마치 죽은 것처럼 성장을 멈춘 모양으로 살아가는 나의 모습 혹은 우리의 모습과 아주 심기는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조금의 시간도 주지 않고 결론을 내리는 사회에 지쳐버린 내가 자꾸만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꿈꾸는 것은 내 모습이 아주심기를 하는 양파와 닮아있는 것 같아서였다. 나는 몇 번이고 이 영화를 돌려보며 잠시 멈춰버린 나의 모습을 위로했다. 다음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와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했지만 그 것이 너무 미미해 여전히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을 때 또 그런 내 모습이 답답하게만 느껴질 때 나는 습관처럼 리틀 포레스트를 켠다.
오늘도 아빠는 이른 아침부터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아주심기에 대해 카톡으로 물었을 뿐인데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온 것이었다. 아빠는 이미 산 중턱에 엉성하지만 집을 짓고 지내고 계신데 양파를 비롯해 고추, 무우, 배추 그리고 해바라기나 복숭아 나무까지 고루 심어둔 나름 프로(?) 농사꾼이다. 갑자기 아주심기를 물어오는 딸이 의아했던 모양이셨다.
그러고보니 어쩌면 아빠도 나를 위해 흙이 고운 그 곳에서 나를 키우며 단단한 열매가 되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자주 나에게 전화를 거는 부모님을 또 할머니를 떠올리며 지금의 내 삶은 아주심기를 한 싹이라는 생각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겨울 언 땅 아래서 조용히 성장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오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외주 작업으로 첫 급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기도 했다.
일상 계정 @fightingsz
그림일기 @jessie_evenfo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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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철들지 않은 30대. 걷고 마시고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손으로 써 내려가는 것들은 모두 따뜻한 힘이 있다고 믿는 사람. 그래서 여전히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